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의 소설 『휴스턴, 휴스턴, 들리는가?』는 태양계 탐사를 나선 우주선(선버드호)이 우연한 사고로 인해 시간 이동을 겪게 되는 모험을 서사화한다. 선버드호에 탑승하고 있던 (남성)주인공들은 또 다른 우주선(글로리아호)과의 교신에서 그들이 있던 시간으로부터 300년이 지난 미래의 어느 시점에 당도해 있음을 깨닫는다. 선버드호와 글로리아호가 서로 응답하는 장면은 짧지만 강력하다. 왜냐하면 선버드호에 탑승해 있던 (남성)주인공들이 갖고 있던 통념이 산산이 깨지는 모습을 독자에게 펼쳐 보이기 때문이다. (남성)주인공들은 우주선을 조종할 수 있는 것은 응당 남성(군인 또는 과학자)이고, 우주선 내의 분위기는 상명하복을 기본으로 한 군대식이며, 그들 남성들은 지구에 아내와 자녀가 있다는 것(이성애적 실천)을 기정사실화했다. 그러나 선버드호의 남성들은 글로리아호와 연루되는 순간 자신들의 우주적 좌표와 더불어 구조적 위치를 파악한다. 나는 이 부분이 위 소설의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라 생각한다. 나와는 전혀 다른 구조 속에 위치한 타자를 상상하고 받아들일 준비를 시작하는 마음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진실은 도래되지 않은 존재들의 목소리에 주파수를 맞출 때 수신된다.

이번 2014호는 (비)인간의 목소리를 가시화하는 데에 집중한다. 배제당한 자(‘“당신들의 학교에 우리는 언제까지 배제돼야 하는가”’, ‘피해자 배제한 밀실 징계위원회 규탄 긴급 기자회견 열려’), 자연환경(‘학내 연구소를 파헤치다 3. 환경 – 지속가능발전소, 대기환경연구소, 환경계획연구소’), 인공지능(‘융합예술의 미래: 장르를 넘어, 경계를 넘어’) 등을 주체(agency)로 내세워 독자와 관계 맺게 한다. 정치적 배제는 (비)인간을 만드는 대표적인 장치이다. 현대의 생명정치(biopolitics)를 고찰한 조르조 아감벤은 정치적으로 배제된 사람들을 “벌거벗은 생명”, “희생될 수 없지만 그럼에도 살해 가능한 생명체”라고 칭한다. 따라서 정치적 역량을 더 이상 발휘할 수 없기에 사회구성원으로서 배제/박탈당한 우리 주변의 ‘벌거벗은 생명’에 대한 관심과 그들의 목소리를 복권시키려는 노력은 온당하다. 한편, 인간의 형태를 갖고 있지 않은 (비)인간 자연과 인공지능을 잠재적 정치 주체로 호명한 기사가 눈길을 끈다. 

주체가 제 몫의 권리와 책임을 갖고 정당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기획된 이번 호는 인간의 계보 속에 포함될 미래적 존재를 기다린다. 이런 기다림의 자세는 ‘인권헌장 공청회, 어떤 발언 나왔나’와 ‘여성의 웃음소리, 여성의 이야기’ 등의 기사에서 알 수 있듯 새로운 정치 주체를 향한 적극적인 환대로 표현된다. 선버드호의 남성은 처음 여성 우주인과 맞닥뜨렸을 때 당황했다. 지금까지 우주 개척은 ‘남성’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는 타자를 받아들이는 일은 분명 혼란스럽고 어지럽고 고통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페미니즘 사상가이자 운동가인 에이드리언 리치는 『우리 죽은자들이 깨어날 때』에서 이러한 혼란을 ‘깨어남’으로 본다. 해방의 역사가 이런 소란스러움을 틈타 이뤄졌다고 말하는 리치는 “전통의 장악력을 깨뜨려야” 함을 서술한다. 그러므로 학생, 피해자, 자연, 인공지능, 여성 등과 연대를 실천한 이번호는 해방의 퍼즐 한 조각을 독자에게 보여준다.

 

김재건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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