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화: 유지원 기자 uz10913@snu.ac.kr
삽화: 유지원 기자 uz10913@snu.ac.kr

조교가 되고 나서 매년 이맘때면 하는 것이 있다. 한 해 동안 잊어버리고 있던 교직원 복지포인트를 쓰는 일이다. 매해 내년에는 복지포인트를 미리미리 써야지 하고 생각하다가도 언제나 11월이 되어서야 부랴부랴 사이트에 들어가서 차감 신청을 하게 된다. 그런데 차감 신청을 하려고 카드 결제내역을 불러오니 지금 나오는 결제내역에 따르면 복지포인트의 반도 채 쓰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작년 이맘쯤엔 부랴부랴 차감 신청을 해도 복지포인트를 다 쓸 수 있었는데 올해는 왜 이럴까. 잠시 생각해 보니 작년보다 그만큼 인터넷 쇼핑을 통해 산 물건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복지포인트는 인터넷 쇼핑으로 산 물건은 쓸 수가 없는 경우가 많아서 그것이 안 잡히니 쓸 수 있는 곳이 거의 없었던 것이었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로 인해 인터넷 쇼핑으로 사는 물건과 그에 따른 택배량도 급증하면서 택배노동자의 처우 문제가 최근 불거지고 있다는 언론의 이야기를 내가 올해 지출한 내역을 보고 새삼 실감했다. 앞서 말한 차감 신청이 가능한 지출내역으로 잡히는 것은 거의 교통비 정도로, 그렇다면 최근 내가 샀던 물건들 대부분은 인터넷을 통해 구입했고 그만큼 택배노동자가 우리 집에 배달한 물건도 작년에 비해서 상당히 늘었다는 말이다. 나를 코로나19 시대에서 버티게 해준 것은 그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코로나19 사태의 장기화로 인한 택배 수요의 폭발적인 증가로 택배노동자의 과로사 사건이 급증했다. 이로 인해 택배노동자의 열악한 처우에 대한 개선 요구가 높아지는 상황에서 정부는 지난주 택배노동자 과로방지 대책을 내놓았다. 정부는 택배노동자 근무 일수를 주 5일로 줄이고 밤 10시 이후 심야 배송을 제한해 달라는 권고를 내렸다. 또한 정부는 택배비 인상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반색을 표하는 사람들도 있으나 한편으로는 대부분의 조치가 권고 정도의 내용이라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라는 반응과 함께 실제 택배노동자에게 돌아가는 건당 수수료의 비율과 택배비 중 일부를 판매자에게 되돌려주는 리베이트 관행 등을 개선하지 않는 한 눈 가리고 아웅 식의 대응이라는 의견도 있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택배비 인상과 같은 조치에 소비자의 반발은 그렇게까지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이다. 여러 언론에 따르면 국민권익위원회가 최근 1,628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대상자의 73.9%가 “택배기사의 처우 개선을 전제로 가격 인상에 동의한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저녁에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올 때쯤이면 집 주변엔 거의 매일 택배 차량이 세워져 있고 분주하게 짐을 꺼내고 정리하는 택배노동자의 모습을 일상적으로 접할 수 있다. 직접 대화를 나누거나 하지 않아도 지나가는 길에 흔히 접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그들의 일이 고된 것이라고 미뤄 짐작할 수 있다. 택배노동자에 대한 처우 개선에 대해 택배비 인상에 찬성할 만큼 많은 사람이 공감을 표하는 것은 우리 생활에 있어서 이제 인터넷 쇼핑과 그를 뒷받침하는 택배가 필수적인 요소가 된 것도 있겠지만 우리가 일상 속에서 그들의 삶을 쉽게 접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앞으로가 걱정된다. 언택트가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는 시대, 우리의 일상의 폭은 점점 좁아진다.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노동자도 점점 줄어든다. 우리의 편리함을 위해 부당한 처우를 받는 사람들을 접하는 것도 점점 줄어들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금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택배노동자들에게 공감하는 것처럼 편리함을 위해 희생당하는 이들에게 우리는 공감할 수 있을까? 이어짐이 점점 희박해지는 시대가 애석하다.

 

여동하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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