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술사 돌아보기
구술사 돌아보기
  • 대학신문
  • 승인 2020.11.15 0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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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다은(국사학과 박사과정)
임다은(국사학과 박사과정)

기고문을 써 달라는 요청을 받고 무슨 글을 쓸까 고민하다가, 최근에 여러 방면으로 공부하고 있는 구술사 연구에 대해 써 보기로 했다. 올해 대학원 수업에서 한국전쟁 70주년을 맞이해 미군 기지촌과 한국전쟁기 학살에 관한 여러 연구를 접하기도 했고, 참여했던 구술사 연구사업단의 총서 발간을 보조하면서 구술사 연구들을 많이 읽고 배우는 중이다. 

한국에서 구술사는 연구방법론으로 도입되기보다 1980년대 후반 민주화운동 이후 시민 사회의 요구에 따라 ‘증언’을 수집하는 형태로 수행되었다. 한국 근현대사에서 제대로 기록을 남기거나 목소리를 내기 어려웠던 일본군 ‘위안부’나, 제주 4·3 및 광주 5·18과 같은 국가폭력의 피해자 등의 증언을 채록하여, 문헌 자료의 공백을 보완하고 역사적인 ‘진실’을 복원하고자 한 것이다. 구술사는 1990년대 중후반 이후 이론적, 방법론적으로 정립되기 시작했고, 2000년대 이후로는 구술 채록 사업이 크게 확장되며 구술사 자료와 방법론을 적극적으로 도입한 연구들도 제출되었다. 구술자료는 주관적이고 현재적이라는 특성으로 인해 문헌 사료와는 다른 방식으로 역사학과 긴장감을 형성하고 있지만, 그런 긴장 속에서도 여러 방식으로 구술사와 한국사는 가까워지고 있다는 인상이다. 

일본군 ‘위안부’ 여성들의 증언집인 『기억으로 다시 쓰는 역사』는 필자가 학부 때 처음 접한 구술사 연구였다. 해당 연구는 당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에서 2000년 일본군 성노예 전범 여성국제법정을 거치며 발간됐으며, 1993년부터 발간되기 시작한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위안부들』 증언집의 연장선에 있었다. 2011년 개정판 서문이 제기하듯, 이 증언집에서 재현된 생존자들은 피해자인 동시에 생존자이자 한 여성이고, 할머니이며, 이름을 가진 개인이다. 평범한 소녀들이 어느 날 갑자기 일본군 ‘위안부’로 강제로 끌려가 끔찍한 경험을 하게 됐다는 정도의 앙상한 이미지와 서사만을 알고 있던 필자에게, 피해로만 일관되지 않은 그녀들의 일상적인 삶과 감정, ‘위안부’ 경험으로만 치환될 수 없는 전체 생애에 대한 이야기들은 다소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일본군 ‘위안부’ 활동가와 연구자들은 이른 시기부터 인식론·방법론적 문제에 실질적으로 부딪히며, 구술사 연구를 통해 하나의 이미지로만 포괄할 수 없는 그녀들의 삶을 담아왔던 셈이다.

구술사 자료와 방법론에 기반을 둔 연구가 활발히 진행된 또 다른 분야로는 해방 직후부터 한국전쟁기까지의 분단, 전쟁, 학살 문제를 들 수 있다. 특히 2000년대 이후 국가가 아닌 대중과 시민의 입장에서 한국전쟁의 의미를 묻는 연구 방향의 전환과 과거사 진실규명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결합되면서 국가폭력과 트라우마, 집단학살 등의 문제가 본격적으로 제기됐다. 마을 단위의 학살 연구가 진전되면서 일제 식민지기 이전부터 존재해 온 마을 내의 계급 간, 친족 간, 이념 간 갈등구조가 집단학살의 한 원인으로 작동하였음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와 같은 역할을 해온 구술사 연구는 국사편찬위원회, 한국학중앙연구원 등 여러 기관에서 적극적으로 구술을 채록하고 아카이브로 만드는 작업을 통해 더욱 활발해질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여러 기관의 협조와 지원에도 불구하고 구술사는 만만치 않은 작업이다. 필자가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서 ‘한국현대사와 군’이라는 주제로 진행한 구술단 사업에 연구보조원으로 참여하면서 가장 크게 실감했던 점은, 구술자료 축적에는 많은 노동력이 투입된다는 것이었다. 구술자별로 편차가 크지만, 생애사 구술의 경우 수차례의 면담이 진행되고, 10분 분량의 구술 녹취문을 작성하는 데는 보통 1시간 이상 소요된다. 핵심 키워드를 추출하고 구술 내용을 정리하는 것은 또 다른 작업이며, 이를 아카이브로 만들어 여러 사람들이 접근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하는 일에는 또 다른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

주관성·현재성이라는 구술자료의 성격과 역사서술의 관계, 구술자료 활용의 윤리적 문제, 하위주체(subaltern)의 재현 가능성과 트라우마 등 구술사 연구는 여전히 많은 과제에 직면하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만큼 많은 가능성을 안고 있다. 고백하자면 필자는 구술 채록과정에 참여하고 구술사 연구를 계속해서 접하면서도, 다른 이의 기억, 경험, 트라우마를 들춰보고 ‘이용’하는 것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을 갖고 있다. 그러나 구술사의 출발점에 ‘아래로부터의 역사’, 즉 민중, 하위주체 등 역사의 중심이 되지 못했던 이들에 대한 관심이 놓여 있음은 분명하다. 그렇게 불안하고 흔들리면서도 듣고 읽고 쓰는 과정이 연구자의 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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