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취정 객원연구원(박물관)
김취정 객원연구원(박물관)

예로부터 우리 선조들은 독서와 여행을 통한 인격 수양과 경험의 가치를 중시해 왔다. ‘독만권서 행만리로’(讀萬卷書 行萬里路)라는 말이 있다. 가슴 속에 독만권서(讀萬卷書)의 학식과 행만리로(行萬里路)의 기상을 담고서야 인생의 참뜻을 깨달을 수 있다는 의미다. 

우리는 여행을 통해 일상에 갇혀 있던 눈과 귀와 가슴이 활짝 열리는 경험을 하게 되고, 이로부터 옹색한 생각이 넓어지고 정신이 맑게 트이는 창신(暢神)의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 인문학 연구를 수행함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내가 박사논문을 쓸 때부터 관심을 갖게 된 인물이 있다. 바로 세리자와 케이스케(1895~1984)다. 당시 내가 파악한 세리자와 케이스케에 대한 정보는 그가 조선을 오가며 서화골동을 구입해 간 인물이라는 것 정도였다. 그에 대해 알 수 있는 정보가 거의 없었지만, 일본 현지 조사를 통해 많은 것을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을 갖고, 언젠가 그에 대해 연구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세리자와 케이스케에 대한 연구를 본격적으로 하게 된 것은 2016년 겨울이었다. 세리자와 케이스케의 조선의 회화 수집과 그 의미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기 위해, 2016년 12월 22일부터 25일까지 일본 현지에서 관계자와 인터뷰를 하고, 관련 자료를 수집했다. 이를 바탕으로 연구한 내용을 2017년 4월 학회에서 발표했다. 그리고 세리자와 케이스케와 관련된 논문을 작성했다. 계획만 하고 있던 연구를 적극적으로 수행할 수 있게 된 것은 한국연구재단에서 (서울대)박사 후 국내연수자로 선정돼 연구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박사 후 국내연수 과정에서 내가 수행하려는 연구는 ‘한국 근대기 화단(畵壇)의 후원자(後援者)와 서화(書畵) 수요 연구’다. 근대기 서화 후원에 있어서 특기할 만한 요소는 외국인 후원자의 활약이다. 이들의 후원 방식은 매우 다양하며, 이들이 구입한 서화의 작가층 또한 폭이 넓다. 외국인 서화 수집가 가운데, 예술가 출신도 적지 않았는데, 이들의 한국 회화의 구입과 수집의 주된 목적 중 하나는 본인의 작품 세계를 정립시키는 것이었다. 그 중 대표적인 예가 바로 세리자와 케이스케다. 그는 총 세차례에 걸쳐 조선을 다녀갔다. 세리자와 케이스케는 1927년 봄 조선으로 여행을 온 이후 민화 76점을 구매했으며, 약 200여 점의 공예품을 수집해 갔다. 그는 이렇게 수집한 조선의 작품들을 재해석해 자신의 작품에 반영했다. 이 같은 사실은 일본으로의 답사와 작품 실견, 관계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알게 된 사실이었다. 만일 직접 가서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면, 세리자와 케이스케에 대한 실상을 알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2016년 12월 일본 답사와 현지 관계자와의 인터뷰를 통한 새로운 자료 발굴을 바탕으로 밝혀 낸 세리자와 케이스케 외에도 다른 일본인 후원자에 관해 밝혀내야 할 관련 과제가 많기 때문에, 추후 일본 현지 답사를 한 차례 더 다녀올 계획이다. 이에 2017년 8월경부터 연구할 계획이던 일본인 서화 수집가 및 후원자 관련 연구가 좀 더 밀도 높게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벌써부터 새로운 연구 자료 발굴과 현지 답사를 통한 배움의 즐거움에 대한 기대로 마음이 설렌다. 

여행의 즐거움은 여행을 계획하고 준비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우리는 여행을 통해 일상에 갇혀 있던 눈과 귀와 가슴이 활짝 열리는 경험을 하게 되고, 이로부터 옹색한 생각이 넓어지고 정신이 맑게 트이는 창신(暢神)의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 좁은 생각으로는 삶도 온전히 누리기 어렵고, 학문을 함에 있어서도 진정한 발전을 이루기 어렵다. 갇힌 공간에서 책 속에 갇혀만 있어서는 제대로 된 연구 수행이 어렵다. 책을 통해 정보를 얻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만큼 중요한 것이 바로 여행을 통한 자신만의 깨달음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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