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 50주기: 우리 사회의 사각지대를 조명하다
전태일 50주기: 우리 사회의 사각지대를 조명하다
  • 김가연 기자,김별 기자
  • 승인 2020.11.15 0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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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11월 13일, 전태일은 22세의 꽃다운 나이에 온몸이 타들어 가는 고통 속에서 생을 마감했다. 일생 동안 빈곤과 노동자 착취에 맞서 싸운 그는 이후 노동운동의 상징으로서 수많은 노동조합의 탄생과 근로 조건 개선에 기여했다. 전태일 동상과 전태일재단을 건립하는 등 그의 외침을 잊지 않고자 하는 노력도 지속돼 왔다. 그러나 50년이 지난 지금 우리 사회가 과연 진정으로 그의 정신을 반영하고 있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대학신문』에서는 전태일의 삶이 남긴 발자취를 따라가며 2020년 교육과 노동, 노동운동의 현주소를 짚어내 그의 정신을 계승하는 법을 고민하고자 한다.

 

배움에는 제약이 없어야 하기에

“하루하루 나의 생활 속에서 배움을 빼버리면 무슨 희망으로 살아가겠습니까.”

전태일은 배움에 대한 열망이 강했다. 그는 가난한 형편 때문에 학교를 중퇴하고 아무런 교육적 구제를 받지 못한 자신의 인생을 “벌레보다 못한 인생”이라고 자조했다. 이처럼 전태일을 포함한 많은 청년이 생계 문제로 교육의 사각지대에 처했으나, 시간이 흐르며 점차 교육받을 기회의 보장이 ‘권리’로 인정됐다. 국가적 차원에서도 의무교육과 무상교육의 범위를 확대하려는 노력이 이뤄졌다. 그러나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중등교육까지 보장받고 있는 지금도 매년 6~7만 명의 청소년이 학교를 그만두고 있는 실정이다.

◇학교 밖에서도 홀로 설 수 있도록=전태일은 학업에 대한 강한 열망을 품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학교 밖 청소년을 구제해 줄 제도가 전무했기 때문에 배움을 이어나가지 못했다. 이런 사각지대를 보완하기 위해 2015년 ‘학교 밖 청소년 지원에 대한 법률’이 제정됐고, 이에 근거해 학교 밖 청소년 지원센터 ‘꿈드림’이 지역별로 운영되고 있다. 꿈드림은 학교 밖 청소년의 학업 복귀나 사회 진입을 돕기 위해 검정고시 및 자격증 교육 지원과 직업체험 및 직업교육훈련 지원, 상담 지원, 자립 지원 등 다양한 사업을 진행 중이다. 관악구 꿈드림의 지원을 받은 한 청소년은 “꿈드림은 사회의 따가운 인식과 다르게 ‘자퇴생이어도 괜찮은 곳’으로 위안이 돼 줬을 뿐만 아니라 검정고시 멘토링, 집단 심리상담, 공연 관람 프로그램 등을 통해 무엇이든 해낼 수 있는 용기를 갖게 해줬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학교 밖 청소년이 센터의 지원 없이 홀로 어려운 상황을 감당하고 있다. 관악구 꿈드림의 신미정 실무자는 센터가 더 많은 학교 밖 청소년을 돕지 못하는 원인으로 홍보 및 신뢰도 부족을 지적했다. 신 실무자는 “최근 SNS 위주로 홍보 방식을 확대하고 있지만 지원센터의 존재를 모르는 청소년, 학교 교사, 지역기관이 여전히 존재한다”라고 토로했다. 이어 그는 “자퇴 이후로 방황하는 청소년이 많지만, 꿈드림에서 먼저 연락하면 거부감을 표시하기도 한다”라며 학교 밖 청소년에게 제공되는 사회적 보호의 한계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했다. 또한 신미정 실무자는 학교 밖 청소년 지원사업의 인력적·재정적 지원 부족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직원 1인이 담당하는 학교 밖 청소년 수가 100여 명에 가까운데, 충분한 지원을 받지 못한 채 사업 성과를 내야 하는 까닭에 인력의 소진이 염려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꿈드림이 본래의 목표를 다하기 위해서 “꿈드림 종사자들의 적절한 처우 개선 및 전담인력 배치를 통해 학교 밖 청소년이 건강한 사회 구성원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라고 덧붙였다.

관악구 꿈드림에서 진행한 진로체험 현장
관악구 꿈드림에서 진행한 진로체험 현장
사진 제공: 관악구 꿈드림

◇그때와는 다른 의미의 포기=전태일을 학교 밖으로 내쫓았던 것이 ‘가난’이었다면, 학생들이 교육받을 권리를 스스로 포기하고 있는 현재는 그때와 다른 양상을 보인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에서 실시한 「서울시 학교 밖 청소년 실태조사」(2019)에 따르면 전태일처럼 ‘집안 경제사정이 어려워서’ 학교를 그만둔 청소년은 약 3.5% 뿐이었다. 오히려 ‘학교에 다니는 게 의미가 없어서’ 그만뒀다는 청소년이 45.9%로 가장 많았다.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검정고시에 응시한 이은지 씨(19)는 “고등학교 교육이 부질없다고 느끼고 스트레스를 받아서 자퇴했다”라며 “학생들에게는 지금처럼 고등학교에서 대학교 입시를 준비하는 데 열중하는 것보다 다양한 경험을 쌓는 수업이 더 의미가 있을 것 같다”라고 안타까워했다. 

학생들의 학업 중단을 막기 위한 방안으로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부설 ‘학업 중단 예방 및 대안교육 지원센터’(꿈지락)가 운영되고 있다. 꿈지락은 학업 중단 예방과 대안교육 관련 실태조사 및 연구를 바탕으로 학교에서 활용 가능한 대안교실 프로그램을 개발하며 학교 업무자 대상의 연수, 컨설팅, 포럼을 진행한다. 꿈지락의 오해섭 센터장은 학업 중단 예방을 위해 “담임교사가 관심 어린 관찰로 학생의 학업 중단 조기에 개입해 학교 내 전문상담교사와 지역사회 아동·청소년 관련기관에게 의뢰하는 등 해결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대안교육의 다양한 실험과 접근방식이 학교의 정규교육과정에 접목돼야 한다”라며 “우리나라의 교육도 개별학습, 학생주도학습, 협동학습, 토론학습, 현장체험학습 등을 통해 학생들의 창의성과 자기주도성을 확립하는 방향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라고 교육 전반의 변화 방향을 제안했다.

 

가려진 노동자의 비애

“인간을 필요로 하는 모든 인간들이여. 그대들은 무엇부터 생각하는가? 인간의 가치를? 희망과 윤리를? 아니면 그대 금전대의 부피를?”

전태일은 하루 하숙비가 120원이었던 때에 한 달에 1500원을 받아가며 일했다. 매일 같이 먼지 구덩이 속에서 쉼 없이 일해도 돈이 부족해 아침에는 구두를 닦고 밤에는 껌과 휴지를 팔았다. 이때의 노동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여겨졌으며 기업의 효율성 극대화를 위한 분업 때문에 단순 반복 노동이 일반적이었다. 대부분의 노동자는 생계를 위해 지루하고 똑같은 노동을 ‘해야만’ 했다.

◇변화하는 노동의 가치=여전히 노동은 생계 유지 수단으로 기능하지만 노동자들은 과거와 달리 노동을 통해 임금 이상의 가치를 성취하고자 한다. 요리에 대한 꿈을 안고 고등학교를 자퇴해 요식업계에 종사하고 있는 김준영 씨(20)는 “지금은 정해진 레시피만을 따라가야 하지만 나중에 가게를 차려 내가 하고 싶은 요리를 할 수 있기를 원한다”라고 말했다. 김수영 교수(사회복지학과)는 “산업화 시대의 노동자들은 경제적 안정을 위해 그 외의 불만족을 감수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현대인들은 경제적 가치와 함께 자율성과 자아실현의 기회 등 관계적·존재적 가치를 고려해 자신의 일자리를 선택”한다고 밝혔다.

◇노동자 분류가 드러낸 문제=노동의 가치가 관계적·존재적 가치로 확대되고 산업구조가 분화됨에 따라 노동의 형태도 다양화됐다. 그러나 이는 제도적 반영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예를 들어 프리랜서, 플랫폼 노동자 등 새로운 형태의 노동자들이 등장했으나 이들은 비정규직으로 분류되며 노동자의 전통적 구분에 따른 노동법 사각지대 문제를 더욱 가시화할 뿐이었다. 조돈문 명예교수(가톨릭대 사회학과)는 고용형태와 고용보험 가입 여부에 따라 “임금 노동자가 정규직, 고용보험 가입 비정규직, 고용보험 미가입 비정규직으로 구분된다”라고 설명했다. 조 교수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고용 안정성과 소득 안정성 수준에서 양극화된 가운데, 고용보험 미가입 비정규직은 사회적 보호에서 배제될 가능성이 크다"라며 이는 “사회보험의 적용은 물론이고 최저임금법, 근로기준법 등 노동관계법의 보호조차 온전히 받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는 현재의 노동자 분류가 결국 “고용보험 미가입 비정규직은 노동기본권 사각지대”라는 문제를 드러낸다고 주장했다.

고용형태별 고용보험 가입 여부 (2019.8 통계청 경제활동부가조사)

고용보험 미가입의 원인에는 사업주의 고의적인 신고 회피나 노동자의 고용보험 관련 정보 부족도 있지만, 분명 노동자임에도 불구하고 고용보험 의무가입 대상에 해당되지 않아 제도적 보호에서 배제되는 이들도 상당수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윤지영 변호사는 “정부의 정책은 모든 노동자가 법상 근로자*임을 전제로 하는 노동 정책에 그친다”라고 말했다. 이는 법상 근로자로 입증 받지 못한 노동자는 사업주가 고용보험 가입 신고를 하지 않아도 불법이 아님을 의미한다. 그는 “현행 제도상 미용사나 프리랜서 학원강사와 같이 고정된 시간과 고정된 장소에서 원장의 지휘·감독을 받으며 일하고 있더라도 이들 스스로가 국가기관에 법상 근로자임을 추가 입증해야 한다”라며 “법상 근로자 판단 절차와 판단 요건 중 상당수가 실제적이지 않고 형식적인 점”을 비판했다. 윤 변호사는 “다양한 노동의 형태가 등장하는 사회에서 법상 근로자의 개념을 엄격하게 따질 게 아니라 실질을 가지고 판단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노동자가 노동자로서 보호받을 수 있도록=제도의 불완전성으로 인한 노동자들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민간단체들이 출범하고 있다. 그중 ‘직장갑질 119’는 ‘노동인권실현을 위한 노무사 모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민주노총 법률원’, 공익인권변호사 단체 ‘희망을 만드는 법’까지 총 140명에 달하는 노동전문가, 노무사, 변호사의 자원활동으로 이뤄지는 민간공익단체이다. 직장갑질 119에서는 노동자들이 겪는 체불 임금이나 부당해고 등의 문제를 호소할 수 있도록 카카오톡 오픈채팅과 이메일을 통해 상담을 받고 있다. 또한 직종별 온라인 모임이나 노동법 강의 등을 열어 노동자들에게 용기를 주고, 우리 사회의 갑질 실태를 조사해 법과 제도가 개선돼야 할 방향성을 제안하기도 한다. ‘공감’의 윤지영 변호사는 직장갑질 119에서 “개별 사례들을 직접 해결하지는 못하지만 당사자가 해결할 수 있도록 돕는 방식”으로 법률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고 답했다. 그러나 직장갑질 119와 같이 노동자를 돕고자 하는 민간단체의 노력이 빛을 발하려면 노동자 내부의 목소리를 직접적으로 반영하는 노동조합(노조)의 적절한 역할이 요구된다.

 

노동조합은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가나

“우리는 당당하게 인간적인 대접을 받으며 살 권리가 엄연히 있는데도 불구하고, 여태껏 기계 취급을 받으며 업주들에게 부당한 학대를 받으면서도 바보처럼 찍소리 한번 못하고 살아왔다. 그러니 우리 재단사들의 모임은 바보들의 모임이다.”

평화시장의 불공정한 노동 조건 아래에서도 초기의 전태일은 사장에게 은혜를 갚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일종의 노예 의식을 지녔다. 그러나 노동의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는 억울함은 곧 분노와 각성으로 이어졌다. 전태일은 인간으로서 마땅한 권리조차 주장하지 못했던 스스로를 바보라고 자조하며 동료들과 ‘바보회’를 결성했다. 바보회는 근로자들의 노동 실태를 조사하고 노동청에 진정하는 등 평화시장 공장들의 근로기준법 준수를 촉구했다. 진정과 호소에 한계가 있자 전태일은 ‘삼동친목회’를 조직해 노동 현실을 언론에 폭로하며 본격적인 투쟁을 시작했다. 

◇누구를 위한 노동조합인가=전태일의 산화 후 1970년대에 약 2500개의 노조가 결성되며 노동운동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특히 군부독재와 민주화의 혼란 속에서 노동자들의 단결은 사회 전반의 변화를 이뤄냈다. 그러나 아쉽게도 현재의 노조는 각종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먼저, 노조는 전체 노동자들을 충분히 대표하지 못하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18년도 노동조합 조직현황」에 따르면 전국적 노조 조직률은 11.8%에 불과했다. 어떤 노조에도 속하지 못한 미조직·취약노동자들을 위해 소통과 단결의 장을 만들고자 설립된 ‘권리찾기유니온 권유하다’(권유하다)의 정진우 사무총장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이 취약계층을 위한 사업을 시도는 하지만 결국엔 인적·물적 자원의 한계로 조합원 수 확대와 가시적인 성과를 위한 사업으로 전환한다”라고 말했다. ‘가짜 5인미만 사업장 고발 운동’ 등을 펼치며 취약노동자들의 목소리에 집중해 온 권유하다 또한 지난달 노동단체에서 노조로 발전했으나 여전히 인력적·재정적 한계를 지니고 있다. 

노조의 대표성 부족은 기성 노조가 과거와 다른 형태의 노동자들인 프리랜서, 플랫폼 노동자 등을 포함하지 못하고 있는 데서도 드러난다. 김수영 교수는 플랫폼 노동자들의 조직화 움직임이 “사회적 캠페인으로 그치지 않고 실질적 지원단체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학계와 정부의 지원, 시민사회와 노동시장 자체의 혁신이 필요하다”라고 지적했다. 나아가 2018년 고용노동부의 「미조직·취약노동자 권익보호 연구: 지방자치 단체 중심으로」 학술사업의 일환으로 제출된 전북대학교 산학협력단 보고서(고용노동부 보고서)는 “변화하는 노동시장 내의 구조와 고용형태의 다변화 속에서 일하는 사람 모두를 포괄할 수 있는” 새로운 기구의 필요성이 대두된다고 지적했다.

이에 고용노동부 보고서는 인적·물적 자원의 부족과 노동자 대표성 불충분 등 노조의 만성적 한계에 대한 해결책으로 ‘노동회의소’를 제시한다. 노동회의소는 미조직·비정규직·특수고용노동자 등 모든 노동자의 이해를 초기업 단위에서 대변하는 지역·전국적 기구이다. 이는 개별기업이나 업종을 대변하지 않는 점에서 권유하다와 유사하지만 ‘법정민간노동단체’라는 점에서 구별된다. 법적으로 규정된 노동자 강제 가입 원칙 외 모든 사업과 운영을 자치행정의 원칙에 따르기 때문에 노동회의소는 월등한 주체성을 가지며, 새로운 형태의 노동자들도 제약 없이 포함한다는 점에서 노동자 대표성을 확보한다. 또한 노동회의소는 임금 조정과 사회정책 등을 협상하는 사회적 협의에서 전체 노동자의 이해를 대표하며 초기업 수준의 사회적 협의 활성화 및 협의 영역의 확대를 도모할 수 있다.

주요 지방자치단체에서 노동회의소 도입을 논의해 온 결과 기존의 노동자 지원시설을 연계·활성화해 노동회의소 역할을 대행하는 현실적 방안이 제시됐다. 2019년 설립된 경기도 노동권익센터는 노동권 교육 지원, 정책연구 제안 등을 실시하며 노동자의 전문성과 정책 역량을 강화하는 노동회의소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다만 노동자 자치운영이 아닌 시·도 주도 운영이기 때문에 노동회의소의 본래 모델과는 차이가 있다. 고용노동부 보고서는 이런 한국형 노동회의소가 “노동자들의 초기업적 연대를 위한 기초적인 인적, 물적 자원을 서비스”하고 있다는 점에서 유의미하지만 노동자 자치행정적 측면이 보완돼야 지속가능하다고 지적했다. 

경기도 노동권익센터에서 지난달 진행된 플랫폼 배달노동자 정책토론회 모습
경기도 노동권익센터에서 지난달 진행된 플랫폼 배달노동자 정책토론회 모습
사진 제공: 경기도 노동권익센터

◇모두의 권리 보장을 위해=기성 노조는 노동자 대표성이 부족할 뿐 아니라 노동자 내부의 격차를 심화해 이익집단적 성격이 지나치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김대일 교수(경제학부)는 “기존 대기업·공기업 노조들이 자기 이익을 지키느라 중소기업 근로자와의 임금 격차 및 청년 실업 문제를 악화시키는 ‘내부자-외부자 문제’*를 유발해 왔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공동 운명체인 노사 관계의 본질을 망각하고 성과 개선 없이 임금만 올리려 하면 기업과 하청업체 근로자, 취업을 원하는 구직자 모두에게 피해를 준다”라고 말했다. 고용노동부 보고서 역시 “조직노동의 경우에도 정규직-비정규직, 대기업-중소기업, 남성-여성 근로자간의 임금·근로조건의 격차가 축소되지 않고 있다”라며 노조가 노동자 간 평등에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와 같은 오명을 벗기 위해서는 노조가 소수의 이해를 넘어 진정한 ‘모두’의 권리 보장을 추구하는 장기적 안목이 필요하다. 정진우 사무총장은 “노동운동이 역할론에 빠지지 않고 거시적인 관점에서 사회 발전을 도모할 필요가 있다”라며 “궁극적으로는 사회 구성원 모두의 권리를 찾는 운동으로 진화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노동자에 국한되지 않은 사회 구성원 모두의 권리 찾기를 위한 답은 사회적 협의의 본질을 인식하는 데서 찾을 수 있다.

고용노동부 보고서는 “기업별 노조체제에서 대변되기 어려운 청년, 여성, 비정규직의 이해는 사회적 협의를 통해 시정할 수 있다”라며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불공정한 원·하청구조의 문제점 또한 사회적 협의를 통해 해결방안을 모색할 수 있다”라고 기대한다. 또한 이때의 협의 의제는 단순히 임금 인상과 불공정거래 시정에 머무르지 않고 사회적 협의의 본질이 ‘협력’임을 상기하는 것이어야 한다. 김대일 교수는 예컨대 “노조가 기업에게 근로자의 트레이닝을 요구하는 등 노사의 공통 접점을 찾아 모두에게 이득이 되는 방면을 찾아야 한다”라고 역설했다.

시대적 변화에 맞춰 노동운동에는 투쟁을 넘어선 ‘협력’의 목표가 필요하다. 전태일 정신에 대한 진정한 논의는 이처럼 모방이 아닌 발전에 대한 의지에서 출발할 수 있다.

 

전태일 정신의 참된 계승을 위해

“그는 생각한다. 그리고 환멸과……자기 자신의 나약한 소리를 증오하면서. 인간의 둘레를 얽어매고 있는, 인간이 만든........인간 본질의 희망을 말살시키고 있는, 모든 타의적인 구속을......”

◇전태일 정신이란=스물 두 해의 삶이 남긴 정신은 대체 무엇이었나. 50년이 지난 지금까지 전태일의 정신은 그의 삶을 읽은 이들에게 저마다 다르게 다가온다. 전태일재단은 전태일 정신의 핵심을 ‘풀빵정신’으로 해석한다. 자신의 차비로 시다들에게 풀빵을 사주고 본인은 두 시간을 걸어 귀가하는 전태일의 연민과 나눔 정신을 기리기 위해 전태일재단에서는 ‘풀빵나눔사업’이라는 여러 장학지원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한편 전태일 정신의 핵심을 ‘불꽃정신’이라 주장하는 견해도 있다. 서울남부노동상담센터 문재훈 소장은 전태일 열사 50주기 토론회에서 “근로기준법 화형식을 거행하는 불꽃, 제 몸에 불을 지르며 싸워야 했던 그 절박함의 표현이야말로 계급적 단결과 결사 투쟁을 상징하는 전태일 정신의 중핵”이라고 말했다.

전태일이 단순히 정신의 차원을 넘어 사상을 만들어냈다고 보는 시선도 있다. ‘전태일을 따르는 민주노동연구소̓ 전 소장이었던 박승호 강사(경제학부)는 “전태일 사상은 ‘인간 해방 사상’”이라고 주장했다. 차별과 억압이 반복되며 고착화된 노예 의식을 극복하고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쟁취한 전태일의 의지가 존재적 해방을 담아냈다고 보기 때문이다. 공사판 노동자의 무감각한 삽질을 본 전태일은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에 “그 사람이 삽질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때에 (땀에) 절은 모자가 하고 있는” 것이라 표현하며 자본주의하의 인간 소외를 통찰해 냈다. 또한 그가 일기에 토해낸 “너인 나, 나인 너”의 어구에 대해 박승호 강사는 “인간이 사회적 관계의 총체라는 마르크스의 철학과 일견 닮아 보인다”라고 말했다. 박 강사는 “전태일 정신을 단순한 투쟁 정신으로 보기보다는 무얼 위한 투쟁인지를 생각해야 한다”라며 “계급 철폐와 자유로운 개인의 공동체를 꿈꾼 그의 ‘인간 해방 사상’을 확장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한편 『전태일 평전』(2009)에서는 전태일 사상을 “모두가 용해돼 있는 상태”를 꿈꾸는 “완전한 거부, 완전한 부정의 사상”이라고 칭한다. 그리고 전태일 사상이 “한 인간이라도 ‘부스러기’로 밀려나는 일이 없는, 한 인간도 남김없이 그 인간적인 관심을 존중받는 질서”를 목표하기에 의의가 있다고 밝혔다. 

◇외부적·내부적 차원의 계승=관념적 담론을 넘어 전태일 정신을 사회적·제도적 변화에 녹여내는 방법은 무엇일까. 우선 평화시장의 근로 조건 개혁에 대한 그의 의지를 본받아 취약 노동자들의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 박승호 강사는 ”모든 노동자가 근로기준법을 보장받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노동자들 중 20%는 여전히 무권리 상태로 방치돼 있다”라며 답답한 현실을 지적했다. 예를 들어 영세 자영업자와 특수고용노동자 등은 대부분 종속적 관계에서 엄연히 노동력을 제공하지만 현행법상 근로자로 인정되지 않는다. 박승호 강사는 “비정규직이 ‘Working Poor’라면 영세 자영업자는 ‘Self-employing Poor’, 즉 ‘자연 빈민’”이라며 “고전적인 ‘블루칼라’*만을 노동자로 분류하는 것에서 발전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새롭게 등장한 플랫폼 노동자 또한 기업과 고용관계가 아니라는 이유로 노동법과 고용보험의 사각지대에 머물러 있다. 윤지영 변호사는 결국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고용이 아닌 노동 중심의 정책 변화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노동자의 처우 개선을 넘어 사회 전체적 관점에서의 장기적인 대책 마련도 필요하다. 김대일 교수는 “단순히 노동자를 보호하는 방향으로 정책이 변화된다면 노동자들은 계속해서 허약해질 뿐”이며 “노동자 보호라는 명목 아래 기업의 규제를 늘려 성장을 억제하면 양질의 일자리를 줄이는 정책이 된다”라고 우려했다. 따라서 기업들의 혁신과 투자를 지원해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고, 그에 맞는 인재들을 양성하는 교육 및 훈련 여건 조성 방안도 충분히 고려돼야 한다. 또한 노동자의 직무 트레이닝을 넘어 사회 구성원 모두가 시대적 변화에 맞는 역량을 기를 수 있도록 교육 전반의 개혁도 시급하다. 김대일 교수는 “노동 수요는 상위권을 중심으로 확대되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 교육은 중위권에 밀집된 인재 배출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상위권 임금이 빠르게 올라 불평등이 확대되고 있다”라며 노동시장 내 이중 구조와 청년층 구직난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인 교육의 변화를 촉구했다. 

전태일의 일기에 담긴 고뇌의 흔적
전태일의 일기에 담긴 고뇌의 흔적

전태일 정신의 계승은 개인의 외부적 차원과 내부적 차원 모두에서 이뤄질 때 비로소 완성된다. 자본주의의 구조적 모순을 모든 문제의 근원으로 단정 짓는 대신 개인의 태도에 대한 내적 성찰과 주체성의 회복에도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박승호 강사는 전태일이 "부딪히는 모든 문제에 대해 왜 그런지를 끊임없이 질문하고 실천적 해결 방법을 모색했다"라며 "젊은 세대에게 전태일의 주체적인 삶의 자세와 대응, 진리를 탐구하고 실천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전태일은 평화시장의 동심(童心) 수호라는 본인의 이상을 지키고자 분신 후 넝마가 된 몸으로도 어머니에게 본인의 일을 포기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이와 같은 그의 행보는 구조가 만든 가치, 구조에 의한 경쟁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가치를 자발적 의지로 실천할 때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준다. 

2020년 현재 전태일 동상이 여전히 평화시장 앞을 지키고 있다.
2020년 현재 전태일 동상이 여전히 평화시장 앞을 지키고 있다.

 

50년 전 스물 두 살 청년의 삶에서 오늘날 이토록 많은 것을 읽어낼 수 있다. 그가 남긴 배움에 대한 열망, 노동자의 권리 자각,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존엄 쟁취는 주체적 삶을 꿈꾸는 모든 이들에게 뜨겁게 다가온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그를 본받고자 하는 이들이 전태일의 희생을 딛고 온전한 ‘주인의 삶’을 누리길, 그로써 진정한 구조적 개혁을 이뤄내며 전태일 정신을 현대적으로 계승해 나갈 수 있길 기대한다.

 

*법상 근로자: 근로기준법 제2조 제1항 제1호의 규정에 따라 “직업의 종류와 관계없이 임금을 목적으로 사업이나 사업장에 근로를 제공하는 자”로 정의된다.

*내부자-외부자 문제: 공공부문, 대기업 정규직 등의 ‘내부자’들과 비정규직 등의 ‘외부자’들 간 불평등 문제

*블루칼라: 생산직에 종사하는 육체 노동자. 푸른 작업복을 입는 데서 유래한다.

 

인포그래픽: 김채영 기자 kcygaga@snu.ac.kr

삽화: 김지온 기자 kion27@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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