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해짐 속에서 익숙해지지 말아야 할 것은
익숙해짐 속에서 익숙해지지 말아야 할 것은
  • 채은화 기자
  • 승인 2020.11.15 06: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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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이 되면 괜스레 설레는 마음이 든다. 한해를 잘 마무리했다는 안도감과 새로운 학기에 대한 기대로 남은 겨울방학을 보내다 보면, 어느샌가 추운 날씨도 풀려 가고 얼어붙은 땅도 조금씩 녹기 시작한다. 슬슬 겨울옷을 정리하고,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보지 못한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어느샌가 2월은 끝나고 3월이 시작된다. 그런데 그렇게 기다리던 2월이, 2020년에는 한없이 잔인하기만 했다. 예상치 못하게 찾아오는 꽃샘추위처럼 올해 2월 느닷없이 찾아온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는 우리의 일상을 완전히 뒤바꿨고, 어딘가에 방치돼 온 사람들에게 가장 잔인한 방식으로 찾아가며 곳곳에서 우리 사회의 민낯을 드러내곤 했다.

지난 2월 경북 청도대남병원 정신과 보호 병동에서 집단감염 사태가 발생했다. 보호 병동의 환자 102명 중 단 둘을 제외한 100명이 모두 코로나19에 걸렸고, 처음으로 우리나라에서 코로나19 사망자가 나왔다. 청도대남병원 집단감염사태로 우리 사회에서 비가시화됐던 정신병동의 열악한 현실이 드러났다. 침상도 없는 작은 온돌방에서 사람들은 날마다 붙어살아야 했고, 탈출의 위험이 있다는 이유로 창문은 열리지 않아 늘 환기가 부족했다. 또 환자 인식표도 제대로 구축돼 있지 않아 환자의 진료 확인을 하는 것조차도 어려웠다. 무엇보다도 더 문제인 것은 환자들의 건강 상태였다. 부족한 영양 섭취로 인한 열악한 영양 상태와 내부에 갇힌 생활로 인한 면역력 감소. 그들은 코로나19라는 새로운 바이러스를 이겨낼 수 있을 만큼의 건강 상태에 있지 않았다.

보호시설의 집단감염은 청도대남병원만의 일은 아니었다. 대구 제2미주병원, 도봉구 다나병원 등에서도 코로나19 집단감염 사태가 잇따라 발생했다. 가장 돌봄이 필요한 곳에서 사람들은 가장 약한 상태로 코로나19를 맞았다. 일각에서는 정신의료기관에서 집단 감염사태가 발생한 것은 ‘예견된 사태’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9~10명이 함께 사용해야 하는 좁은 병동에서 함께 살아가며, 혹여나 정신과 외 다른 의료진이 없을 병동의 경우에는 환자들의 건강 상태를 확인하고 검사를 하는 것조차 어려웠기 때문이다. 2015년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이 유행할 당시 일반 의료기관은 감염병에 취약한 구조를 인식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면적 확대 및 병상 간 이격 거리확보, 4~6인실 초과 금지 등의 조치를 취한 반면, 정신의료기관의 시설에 대한 관심과 대책은 전무했다. 이는 한국사회에서 정신질환자를 사회로부터 격리하는 데만 관심을 둘 뿐, 그들의 생활과 복지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않아 온 현실을 조목조목 우리에게 짚어준 것이다.

지난 12일(목) 국가인권위원회는 코로나19 등 감염병에 취약한 정신의료기관의 시설 기준을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을 보건복지부에 전달했다. 1개의 병실에 환자가 9~10인이나 되는 과밀한 환경이 치료에 적절한 환경이라 보기 어려우며, 감염에도 매우 취약해 정신질환자의 치료받을 권리가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에 왜 우리 사회에서 그것이 당연하게 보장되지 않았는지에 대한 회의가 들었다. 그리고 지금 바뀌지 않는다면 또다시 이런 상황이 반복될 것 같아 두려웠다. 

시간은 흘러가고, 야속하게도 코로나19는 끝나지 않았다. 9개월이 지난 지금, 그들의 삶은 이제 코로나19로부터 안전한지, 보호시설의 열악한 환경은 개선됐는지 그들의 삶에 귀 기울이는 후속 보도는 찾아보기 어렵다. 코로나19로 인한 일상의 변화에 익숙해져 갈수록 ‘코로나19가 왜 정신병동 속 환자들에게 더욱 잔인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관심은 줄어만 가는 듯하다. 

이제 2020년도도 한 달 남짓 남은 상황에서, 점점 우리는 코로나19로 인한 삶의 변화에 적응해 가고 있다. 또 누군가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변화를 외친다. 하지만 우리가 적응해 가는 삶과 우리가 외치는 변화에 감염 취약계층의 변화도 포함되는지 의문이 남는다. 여전히 사회 어느 곳에서 누군가는 열악한 구조와 환경 속에서 감염의 불안감에 떨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기다리기에 앞서 코로나19가 누군가에게 가져온 잔인함을 기억하고, 이들에게 더욱 잔인할 수밖에 없었던 그 이유에 대해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코로나19에는 익숙해지더라도, 그로 인해 드러난 실태에는 익숙해지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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