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자의 편에 서는 기자가 되고 싶었다. 새내기 시절, 어찌나 겁이 없었던지. 하지만, 기자가 약자의 편에 서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었다. 내 기사로 문제가 생기고 클레임이 들어오고. 다짐했다. 다시는 괜한 정의감 부리지 않겠다고. 그냥 적당히 취재하고, 적당히 남아있기로. 그렇게 마음먹은 한 학기가 지나 지금은 신문사 마지막 학기, 다른 말로 ‘꼰대’가 돼 가고 있다. 신문사 첫 번째 학기와 두 번째 학기, 이 두 학기를 비교해 보면 이번 학기는 참 남은 게 없다. 적당히 취재하고 적당히 쓰고 적당히 기사를 냈던 것은 편한 일이었지 내가 하고 싶었던 일, 해야 하는 일이 아니었다. 작렬하게 타고(burn) 부서진(out) 번아웃 증후군(burnout syndrome)이 온 것이 이번 학기였다. 주변을 둘러보면 참 화나는 일들이 많았는데 그것을 다 담을 그릇이 되지 못했다.

제2공학관(302동)에서 근무하던 청소 노동자 한 분이 휴게실에서 휴식 중 돌아가셨다. 사인은 평소 앓던 심장질환으로 밝혀졌지만, 그가 휴식했던 휴게 공간이 무척 열악했음이 알려지며 학내외로 공분을 샀다. ‘비정규직 없는 서울대 만들기 공동행동’에 따르면 8,000평이 넘는 건물에서 그에게 허용됐던 공간은 단 1평짜리 휴게 공간이었다. 그 사고 이후 캠퍼스관리과 주도하에 학내 휴게실 전수조사가 이루어지는 등 복지 개선을 위한 노력이 이뤄졌다. 전수조사 결과 학내 청소 노동자 휴게실 146개 중 36개가 지하나 계단 하부에 설치된 것으로 밝혀졌다. 취재차 그분의 추모식에 갔다. 학내 곳곳에 추모 리본을 설치하고 추모 현수막을 게시해 고인을 애도하고 있었다. 추모 공간에는 포스트잇을 붙이도록 마련된 자리가 있었다. 거기에는 “우리는 모두 서로가 있기에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 누구도 인간답지 못한 대접을 받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공부하는 이유는 우리 모두 잘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함임을 잊지 않겠습니다” 등의 포스트잇이 붙어있었다. 무척 분노에 찬 포스트잇들도 눈에 띄었다. 후에 참여한 추모식에서는 그의 동료였다는 사람이 한 명씩 앞에 나와 발언을 했다. 그는 돌아가신 청소 노동자분을 추억하며 또 그분이 돌아가실 수밖에 없었던 환경을 조성한 학교를 규탄하며 분노를 참지 못했다. 학교의 작은 무관심이 약자에게는 크고 날카로운 칼날이 됐다.

‘성폭행 교수를 파면하라’라고 주장하는 시위만 세 번 넘게 간 것 같다. A교수가 나오면 B교수가 나왔고, 처음 들었을 때 익숙하지 않았던 음대 C교수가 귀에 익숙해졌다. 교원 성폭력이 잇따르는 학교에서 학생들은 인권을 보호받지 못한 채로 학교에 다녀야 했다. 지난 11일(수) 음대 B, C교수 파면과 본부의 약속 불이행에 대한 사과를 촉구하는 보라색 우산 집회가 열렸다. 집회 참여자들은 보라색 우산을 들고 인권센터(153동)로 행진했다. 이러한 집회가 열린 것은 한두 번이 아니다. 7월 28일 행정관 앞 총장잔디에서 끊이지 않는 교수의 권력형 성폭력과 인권침해를 규탄하는 긴급행동이 열렸다. 학내 실태를 대외로 알리기 위해 행정관 앞 총장잔디에서부터 서울대입구역까지 방송차량을 동원해 행진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비 오는 날 이 집회의 취재를 맡은 기자님께서 굉장히 고생하셨다는 소식을 들은 기억이 난다. 학생들은 학교에 대책과 사과를 요구하고 학교는 이러한 요구들에 늘 묵묵부답이다. 약자에게 강하고 강자에게 약한 학교. 학내의 사건을 취재하며 내가 받은 인상은 이것이었다.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내가 왜 이 벗어날 수 없는, 정든 신문사에 남아있는지. 새내기 시절 쓴 열정 가득한 취재수첩과는 너무 다른 칼럼이라 부끄럽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패기’에서 ‘꼰대’가 아닌 ‘성숙’으로 나아갔다고 보고 싶다. 학내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다루면서 또 이를 기사화하면서 여러 실수를 하고 패기는 조금씩 꺾여갔다. 하지만, 배움은 조금씩 늘어났고 실수도 조금씩 줄어갔다. ‘미네르바의 부엉이’인지 푸념인지 다짐인지 모르겠을 글이 마무리되고 있다. 취재부 차장으로 남아 있을 신문사 마지막 학기, 실수 없이 또 후회 없이 마지막으로 타오르고(burn)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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