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민(아동가족학과 석사과정)
박정민(아동가족학과 석사과정)

언젠가부터 함께 학창시절을 보낸 친구를, 수업을 함께 들었던 학우를, TV에서 해맑고 멋진 모습만 보이던 연예인을 떠나보낸 일이 있었다. 처음에는 떠난 사람에게 조금 더 관심을 갖지 못했던 내가 미웠다가, 내게 소중한 사람들의 온전한 편이 되어주고자 다짐했다가, 이내 떠난 사람들의 마음을 더 알아보고 싶기도 했다. 

수많은 척도가 나를 평가하는 현대사회에서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사랑하는 일은 때론 굉장히 어렵다. 특히, 일정한 잣대를 가지고 타인을 평가하는 문화가 당연시된 한국 사회에서 누군가의 기준에서 ‘일정한 규범’을 준수하지 않는 개인의 이야기나 그 사람의 고유한 정체성은 쉽사리 무시되기 마련이다. 외부의 목소리들이 내가 어떤 사람이라고 객관적인 잣대를 들이밀며 나를 평가할 때, 내가 ‘그 정도’의 사람이라고 생각하기란 정말 쉽다. 객관적인 잣대 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부모님이, 존경하는 선생님이, 우정을 나눈 친구가, 사랑을 속삭이던 연인이 말하는 나의 모습은 꽤 절대적이다. 이렇듯 많은 눈이 나의 의사와 다르게 나를 규정하고 평가하는 세상에서 내가 나를 사랑하는 것, 그것이 있는 그대로의 나를 지키는 데 가장 중요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평소 ‘스스로를 사랑한다’고 단언하던 내가, 처음으로 바닥까지 나를 미워했던 적이 있다. 내게 너무 소중했던 사람이 나의 모습을 처음부터 끝까지 비난하고 모든 문제의 탓을 나에게 돌리며 돌아섰을 때였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이후 나는 나의 모습을 모두 부정하기 시작했다. 나에게 소중했던 사람이었기에 그 말들이 가진 힘이 너무 절대적이었기 때문이었을까. 나는 정말 내 모습 그대로 ‘별로’인 사람인가? 하는 생각에 몇 달을 스스로 의심하며 나도 모르게 나를 미워하고 있었다.

나의 모든 모습이 미워져, 나를 더 이상 사랑할 수 없을 것 같았을 그 때 생각했다. 스스로를 사랑하는 일은 생각보다 손쉽게 타인에 의해 흔들릴 수 있겠다. 내가 나를 지키려면. 그 누구도 아닌 내가 나의 모습을 사랑해줘야 하겠구나 하고 말이다.

그렇다면 나를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사랑’에 대해 생각해 볼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사람은 부모님이다. 언젠가 내 주변 사람들에게 ‘너는 나를 왜 사랑해?’라고 물었다. 누군가는 나의 어떤 모습, 누군가는 나의 어떤 성격 등의 이유를 들었지만, 부모님으로부터는 아직도 그 이유를 듣지 못했다. 나 또한 부모님을 사랑하는 이유를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부모님께서 몸이 아파도, 외적으로 못난 모습이어도, 괴팍하고 못된 성격이어도, 나를 미워한다고 해도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그날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 혹은 나를 사랑한다는 것은 존재만으로 있는 그대로 유일무이하고 소중한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사랑에는 이유가 없다.

소중했던 사람들의 말과 행동이 여전히 상처로 남아, 간혹 마음이 아파올 때 나는 그 속에서 나를 사랑하기 위해 애쓴다. 가만보면 나를 사랑하지 않거나, 다른 사람을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대개 우리에게 상처를 준다. 내가 다시 나를 사랑하게 되었을 때쯤, 내가 소중하다고 믿었던 그 사람 또한 나를 사랑하지 않았던 것임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말해주었다. 더 이상 아파하지 않아도 된다고. 너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충분히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고. 너를 사랑하지 않은 타인 때문에 있는 그대로의 너를 미워하지 말라고. 너는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있으니, 그걸로 됐다고. 

끝으로, 내가 한없이 초라해 보여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김난도 선생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의 몇 구절을 소개하고자 한다. ‘그 무엇’을 갖고 있지 못한 당신은 그 모습 그대로도 너무나도 아름답다. 사랑이란 ‘그 무엇’이 없는 당신 또한 사랑하는 것이다. 

 

‘그 무엇’이 네가 아무리 노력해도 갖출 수 없는 것일지라도, 너무 좌절하지는 말아. ‘그 무엇’이란 무척 상대적인 것이거든. 네가 언젠가 만날 다른 어떤 사람에게는, 지금 네가 가진 그것이 너의 가장 큰 매력이 될 수도 있어. 

그는 너를 사랑하기에 떠난 것이 아니야. 너보다는 자신을 더 사랑하기에 떠났어. 이기적인 사람이지. 하지만 너무 원망하거나 욕하지는 마. 우린 모두 이기적이잖아. 하지만 누군가, 서로에게 이기적이고 싶지 않게 되는 사람이 저 거리 어딘가에 분명히 있어. 우리는 그런 사람을 만났을 때, 사랑한다고 말하는거야.

자, 이제 잊고 일어나. 아무렇지 않게 끝낼 수는 없겠지만, 자학은 아무것도 만들어내지 못해. 너무 긴 힘듦은 아름다운 널 병들게 할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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