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목) 정의당 류호정 의원이 ‘포괄임금제 금지법 공동발의 요청’ 기자회견을 열고 포괄임금계약 금지와 위반 시 형사 처벌을 골자로 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공개했다. 그는 “장시간 노동과 공짜 야근을 유발하는 포괄임금제 폐지로 임금 착취를 멈춰야 한다”라며 동료 의원들의 동참을 호소했다. 포괄임금제는 연장, 야간근로 등 매월 일정액의 시간 외 근로 수당을 미리 급여에 포함해 지급하는 임금 산정 방식이다. 문재인 정부는 포괄임금제 개선을 대선공약 및 국정과제로 제시했지만 2017년 포괄임금제 지도지침 초안을 마련한 지 3년이 지나도록 실태조사 단계에 머물러 있다. 이에 내년부터 주 52시간 근무제(주52시간제)가 중소기업으로 확대되는 시점과 맞물려 더는 포괄임금제 폐지를 미룰 수 없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포괄임금제는 기업이 노동자들에게 ‘공짜 야근’을 부추기는 편법으로 악용돼 왔다. 법원의 판례는 포괄임금제를 운수업 등 노동 시간을 계산하기 어려운 직종에만 예외적으로 허용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광범위한 분야에 적용되며 노동자들의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이 2월 발표한 ‘포괄임금제 실태조사’에 따르면 포괄임금제 도입 기업 중 94.7%가 일반 사무직에 포괄임금제를 적용하고 있다. 근로시간 계산이 쉬운 대다수 일반 사무직은 법원에서 인정하는 포괄임금제 요건에 부합하지 않음에도 많은 기업에서 이를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남용하는 것이다.

이렇게 자리 잡은 포괄임금제는 근로자가 산정된 시간보다 더 많이 일해도 급여에 추가 노동 수당이 포함돼 있다는 이유로 공짜 노동을 하게 하는 근거로 작용한다. 2018년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웹디자이너 장민순 씨의 연봉 계약서에는 월 69시간의 연장근로수당과 29시간의 야간근로수당이 포함돼 있었는데, 이는 근로기준법상 연장근로제한시간인 주 12시간을 훨씬 넘는 수치다. 또한 사업주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로 인한 위기가 닥치자 인건비 절감을 위해 포괄임금제를 악용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금속노조는 귀금속 사업주들이 코로나19로 물량이 감소하자 근무 일수를 줄여 임금을 삭감했지만, 물량이 회복되자 포괄임금제를 핑계로 추가 수당 없이 연장 노동을 시켜 이전과 비슷한 주문량을 소화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포괄임금제는 주52시간제와 양립할 수 없는 장시간 노동의 잔재다. 현재 종업원 300인 이상의 사업장에서 적용되고 있는 주52시간제는 연말까지의 계도 기간을 거쳐 내년부터 종업원 50인 이상 300인 미만 사업장에도 적용되며, 내년 7월에는 5인 이상 50인 미만의 중소기업까지 확대될 예정이다. 주52시간제는 주 40시간의 근무와 최대 12시간의 시간 외 근로를 엄격히 지켜서 한 주당 근무시간이 52시간을 넘지 못하게 하는 것으로, 기업은 시간 외 근로에 대한 수당도 따로 지급해야 한다. 그런데 포괄임금제를 통해 추가 수당 없는 시간 외 근로가 가능해지면, 주52시간제가 시행된다 해도 이를 초과하는 근로를 무급으로 시킬 수 있는 사각지대가 생겨 정책이 유명무실해질 수 있다. 

특히 중소기업의 경우 초과근무수당 제도를 도입한 곳이 전체의 절반 이하에 그치고, 그마저도 자유롭게 쓸 수 없는 경우가 많아 장시간 노동을 부추기는 포괄임금제부터 손봐야 한다는 요구가 거세다. 포괄임금제를 폐지해 주52시간제가 실효성 있는 제도로 발돋움할 수 있도록 하고, 노동자의 권리를 박탈하는 제도와 관행이 유지되는 것을 막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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