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와의 대화 | 문보영 작가의 이야기를 듣다

 

바쁜 20대를 보내고 있는 문보영 작가. 어린 시절에 글쓰기보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다는 문 작가는 대학교에 진학하고 문학의 매력에 빠지게 됐다. 그는 1년 동안 도서관을 오가며 등단을 위한 준비를 거쳤고 2016년 중앙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이후 그는 시집 『책기둥』(2017)을 출간해 제36회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하는 등 작가 생활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지난 13일(금), 작은 카페에서 문보영 작가를 만나 그의 작품과 인생관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시를 향한 조심스러웠던 발걸음

도서관에 하루 종일 앉아 주변 사람을 관찰하다 보면, 문보영 작가는 시간이 멈춘 것 같다는 생각에 종종 잠기곤 한다. 문 작가는 대학 시절 많은 시간을 보냈던 공간에서 영감을 받아 첫 시를 썼다. 스스로를 ‘공간에 영향을 많이 받는 사람’이라고 설명하는 문 작가에게 ‘도서관’은 등단작을 쓰기까지 그의 생각의 폭을 넓혀 줬던 장소였다. 대학시절 교내 활동을 활발하게 하기보다 책 읽기를 즐기던 작가는 도서관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는 “책을 읽으면서 마음에 드는 구절을 필사하며 시를 짓기 위한 소재를 찾았다”라고 말했다. 작가는 “도서관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상황에서 작품의 아이디어를 얻어 시를 창작했다”라며 시를 쓰기 시작하게 된 계기를 밝혔다. 이렇게 탄생한 시 「책기둥」에서 그는 “난쟁이들은 맨 아래 깔린 책을 얻기 위해 기둥을 무너뜨린다”, “책기둥은 어딘가 기울어 있다”라는 자신만의 표현으로 도서관의 서가를 생생하게 그린다. 

문 작가는 이날 인터뷰에서 “등단작이 맘에 들진 않는다”라고 종종 말하기도 했다. 대학 시절부터 친구에게도 시를 보여주기 두려워했다던 그는 혹시라도 심사위원이 자신의 시를 싫어할까봐 걱정했다. 그래서 등단을 위한 투고에 자신에게 1순위였던 시가 아닌 2순위 시를 보낼 정도였다.

그는 『책기둥』이라는 자신의 시집에 모인 작품의 창작 배경에 대해 문 작가는 “만족스럽지 않았던 등단작보다 더 좋은 작품을 만들고자 기존과 다른 창작 방식에 도전하게 됐다”라고 설명했다. 익숙한 공간에서 벗어나 작가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과 사물에 가까이 다가가려는 느낌의 시들이 모이면서 『책기둥』이라는 작품집이 완성된 것이다.

 

난 물먹고 싶고

어떤 애가 쓰러져 있어요

난 물이 먹고 싶은데

어떤 애가 쓰러져 있어요

(중략)

경우에 따라 나는 물이거나 쓰러진 애인데

쓰러지더라도 그 애는 물처럼 쓰러지지 말자고 하며

- 「쓰러진 아이」 중에서

 

문보영 작가는 자신의 삶을 외면하거나 왜곡하지 않고 담백하고 정직한 문장으로 삶을 시로 풀어낸다. 시어에는 작가의 솔직함과 명랑한 성격이 어우러져 있어, 독자의 평범한 일상까지도 즐겁게 만든다. 20·30대를 보내는 젊은이들은 많은 어려움을 감내하며 살아간다. 주위 사람과의 대화 속에서 행복을 찾으면서도 마음 속으로는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스스로를 챙기지 못하기도 한다. 하지만 삶을 즐기려면 억지스럽더라도 주어진 현실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문 작가는 그것이 자신의 삶을 정직하게 받아들이는 태도라고 말한다. 김나영 문학평론가는 문 작가의 작품이 “자기 앞의 삶을 직시하고 내면의 외침을 진솔하게 풀이한 자전적 이야기”라고 평가했다.

문보영 작가의 작품을 읽다 보면 결말이 명확하지 않은 시 내용에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 느껴진다. 박상훈 문학평론가는 문 작가의 작품이 “미완결된 이야기로 독자에게 여운을 남긴다”라고 말했다. 작가는 시의 매력이 “소설보다 더 과감하고 창의적인 도전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점에 있다”라며 “서사의 결론을 봉합하지 않은 채 작품을 마무리함으로써 오히려 작품의 주제의식이 환기되는 시의 ‘무책임함’에 매료됐다”라고 묘사한다. 

 

‘불안’을 이야기하는 방법

“내가 오늘 버린 것은 달력이다”

“연내가말만 되면 번아웃되는 나를 위해 미리 태국 행 비행기 표를 끊어 놓는다.”

(중략)

“2020년의 실제 시작은 2019년 12월인지도 모르겠다. 사실 1월은, 새 출발의 느낌은 커녕 공허하고 춥고 쓸쓸하다.”

- 「번아웃 증후군」 중에서

 

살아가다 보면 슬픔은 다양한 감정으로 우리 앞에 나타난다. 공황, 불안, 우울감 등 여러 가지 모습으로 변형되는 슬픔의 감정을 작가는 ‘종합 선물 세트’라 표현하기도 한다. 지난 7월 문보영 작가는 새로 출간한 에세이 작품집 『불안해서 오늘도 버렸습니다』에 대해 “올해 불안의 감정을 둘러싸고 새롭게 경험했던 것들을 담은 책”이라고 설명했다. 에세이의 처음과 끝에서 작가는 어떤 것을 버리고 그것을 다시 찾는 행위를 되풀이한다. 문 작가는 이런 설정을 통해 자신의 불안을 마치 하나의 놀이를 하듯 손쉽게 해결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작가의 불안은 사람과의 관계, 미래에 대한 생각, 외로움 등 삶을 이루는 여러 가지 요소들에 보이지 않게 숨어 있다. 이런 불안을 알아내기 위해 쓰레기통을 뒤지고, 문 작가는 자신이 불안해서 무심코 버린 물건들을 들춰내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적는다. 

이때 문보영 작가는 ‘반복’이라는 소재를 통해 불안을 포착한다. 그는 “햄스터가 쳇바퀴를 돌리듯 굴레를 반복하되, 굴레의 구체적인 형태를 매일 조금씩만 다르게 바꿔 놓은 것이 우리의 일상”이라고 설명하면서 자신의 일상에서 반복되는 행동으로 무언가를 ‘버리는’ 습관을 제시한다. 그는 자신이 버린 물건에 조금의 영혼이라도 남아있을 것이라 믿으며 버린 물건에 담긴 자신의 불안을 찾아낸다. 지금까지 자신이 버린 물건들을 회상하는 내용의 에세이 『불안해서 오늘도 버렸습니다』가 그 예시다. 작품집 속 「번아웃 증후군」이라는 시에서 문 작가는 자신이 버렸던 2019년 달력을 떠올린다. 새해를 맞이하며 버린 달력은 박제된 슬픔을 상징한다. 한 해가 또 다시 쏜살같이 지나갔다는 무상함과 부질없이 시간을 보냈다는 불안감을 표상하는 것이다. 그래서 달력은 ‘거기에 있지만 거기에 없는 사물’이 됐다.

“우리 행복 앞에서 좀 배은망덕해집시다!” 그럼에도 문 작가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불안감을 극복하고자 노력한다. 문 작가는 슬픔과 불안을 있는 그대로 풀어내기보다는 ‘유머’를 이용해 뒤집는다. 슬픔이라는 감정을 최대한 가볍게 여기려는 것이다. 그는 “예전에는 작품에서 슬픔의 감정 자체를 설명하는 것이 중요했지만, 지금은 슬픔의 권위를 깨는 작업이 더 중요하다”라고 짚었다. 문보영 작가의 작품은 이처럼 유머라는 장르에 안착해 독자가 부담 없이 작품을 읽게 한다는 점에서 인상적이다. 박상순 시인의 표현처럼 문보영 작가는 “슬픔에 목매달기보다는 슬픔을 해결할 탈출구를 작품에 만들어 둔다.”

 

“오늘은 목요일이었다. 수면제를 정말 끊어야지. 다음날 일찍 일정이 있어서 먹을 때는 괜찮은데, 침대에서 뒤척이는 시간이 괴로워서 먹으면 다음날 아침, 잠이 너무 너무 달아서 쭈욱 자게 된다.

(중략)

친한 친구들은 나를 그냥 미국인이라고 생각하며 산다. 새벽 네 시에 제일 연락이 잘 되므로.”

- 「두꺼운 이불」 중에서

 

“당신은 나에게 투명 보호막 같은 존재”

문보영 작가는 독자에 대한 애정이 유별난 작가로 유명하다. 시와 소설 등 자신의 작품뿐 아니라 블로그와 인스타그램 등 SNS 소통망, 그리고 브이로그 앱과 유튜브 등 영상 플랫폼에 이르기까지 작가는 어느 것 하나 빼놓지 않고 이용하며 독자와 적극적으로 소통한다. 이처럼 독자와 만남을 갖는 활동이 많아지자 문 작가는 “내 글을 좋아해 주는 독자가 누구인지 몰라 막연하게 불안감을 느꼈는데, 요즘에는 독자와 만나는 시간이 많아져 나를 감싸주는 투명 보호막이 생긴 듯해 기쁘다”라고 말했다.

자기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는 방법으로 선택한 ‘블로그 일기’는 문 작가를 대표하는 독보적인 창작 방식이 됐다. 대학 시절, 불안정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시달렸던 문 작가는 내면의 아픔을 숨기기보다 일기를 통해 눈앞에 보임으로써, 자신의 일기를 재밌게 읽어 주는 독자들의 반응으로 자신을 치유했다. 그는 “다른 사람이 나를 좋아해 주는 것이 스스로를 지키는 것보다 더 좋았다”라고 말했다. 문 작가는 “내가 느낀 슬픔을 일기에 옮겨 적어 블로그 게시물로 업로드했을 때, 사람들이 그 글을 즐겁게 읽어 주면 어느 순간 슬픔이 휘발된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밝혔다.

일기뿐만 아니라 문 작가는 2018년 12월부터 독자와 소통하기 위한 자신만의 이색적인 방법으로 ‘일기 딜리버리 프로젝트’도 진행하고 있다. 자신이 직접 쓴 일기를 독자에게 직접 우편으로 전달하는 방식이다. 문 작가는 “내 글을 읽는 사람은 나와 비슷한 가치관을 공유하는 사람일 것”이라며 “비슷한 공감대를 형성하면서도 저마다의 세계를 가지고 있을 사람들에게 한 발 가까이 다가가고 싶었다”라고 프로젝트의 취지를 설명했다. 그는 “내가 보낸 시를 읽은 독자가 내 자택 주소가 적힌 곳으로 답장을 줄 때 행복하다고 느낀다”라고 덧붙였다. 

문 작가는 본인의 글을 매개로 독자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시간을 가졌던 한편, 피로감을 느끼기도 했다. 문 작가는 이런 상황을 두고 자신이 ‘일기 파산’에 처했다고 표현했다. 그는 “가볍게 시작했던 딜리버리 프로젝트의 규모가 어느덧 일상의 중심부를 차지할 정도로 커지니 부담감을 느낄 때도 많았다”라며 자신의 삶보다 글이 앞서가는 경험을 했다고 털어 놨다. 부담감을 해소하고자 문 작가는 최근 소설 창작에 도전하는 중이다. 그는 “나 자신을 숨기기 위한 가상의 스토리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라고 말했다. 

 

문보영 작가의 작품은 오늘날 젊은 세대가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피로감과 불안을 문학의 언어로 생동감 있게 그려낸다. 독자는 삶에 드리운 그늘을 밝게 헤쳐나가는 작가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를 받게 된다. 앞으로의 작품 활동에 대해 문 작가는 새롭게 시도해 볼 작품들을 떠올리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는 “다음 시집을 아직 생각해 보지는 않았지만 산문시에도 도전해 보고 싶고, 실제 사건을 작품에 녹여내는 논픽션 장르로도 저변을 확대하고 싶다”라고 얘기했다. 슬픔을 안기는 어두운 이야기마저 밝고 친근감 있는 이야기로 색칠하는 작가의 상상력이 다음 작품에서도 발휘되길 기대해 본다. 

사진 제공: 문보영 작가
사진 제공: 문보영 작가

 

오지형 기자

jhohjane@snu.ac.kr

삽화: 김지온 기자

kion27@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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