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9일 KBS 음악 프로그램 ‘유희열의 스케치북’이 ‘조선의 DNA, 내 안의 K흥’이라는 주제로 방송됐다. 아이유, 백지영, SuperM을 비롯한 스타들이 나오는 프로그램에서 이번에는 국악 퓨전으로 활동하는 밴드를 소개했다. 많은 사람이 국악을 어렵고 지루하다고 생각하는 요즘, 어떻게 이런 유명한 무대에 국악 밴드가 다섯 팀이나 출연할 수 있었을까? 최근 인기를 끌며 대중에게 이름을 알리고 있는 밴드들을 이 짧은 지면 안에 다 소개할 수는 없지만,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출연한 밴드들을 대표로 국악의 새로운 흐름을 한번 살펴보고자 한다. 

방송에 나온 밴드들은 저마다의 색깔이 있고, 인기를 끄는 방식도 다르다. 방송의 첫 번째 순서는 ‘이날치’였다. 현재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와 호응을 끌고 있는 밴드다. 이들은 판소리 소리꾼 4명, 베이스 2명과 드러머 1명으로 구성됐다. 음악감독 장영규는 원래 여러 영화에서 작곡을 맡았고, 경기민요 기반의 글램 록 밴드 ‘씽씽’과 활동하며 이미 널리 알려졌다. 다른 멤버들도 설령 나이 차이가 있더라도 각 분야에서 실력으로 인정받은 사람들이다. 이들이 만나게 된 계기는 2018년 11월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전통 판소리 중 〈수궁가〉를 재해석하는 프로젝트였다고 한다. 그들은 이를 더 깊이 있게 발전시키겠다는 생각으로 조선 후기 판소리 명창 이날치(1820~1892)의 이름을 가져와 함께 활동하기 시작했고, 올해 5월에는 앨범 『수궁가』를 발표했다.

이 팀이 제대로 이름을 알리게 된 계기는 유튜브 채널 ‘온스테이지’에서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와 함께 〈범 내려온다〉라는 곡을 부른 것이었다. ‘힙한’ 의상과 그루브 있는 춤의 조합이 가져다준 임팩트로 그들의 공연은 결국 한국관광공사 홍보영상으로 선택됐고, 서울, 부산, 전주 명소를 소개하는 영상은 어마어마한 호응을 이끌어 냈다. 반응에 힘입은 이들은 안동, 목포, 강릉에서도 홍보 영상을 찍었다. 국내와 해외를 막론하고 계속 호응을 얻은 끝에 홍보 영상 조회수는 총 1억 건을 넘었다. 국악은 이렇듯 다양한 곳에서 관심을 받고, 숱한 언론 보도와 방송 활동을 통해 더 넓은 향유층을 만들어 나가는 중이다.

방송의 다음 순서는 창작 판소리 소리꾼 이자람이었다. 그는 작가이자 가수였던 아버지 이규대와 함께 1984년에 낸 동요 음반 『내 이름 (예솔아!)』로 벌써 유명세를 날렸으며 8시간 길이의 〈판소리 춘향가〉 최연소 완창으로 기네스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또한 그는 인디밴드 ‘아마도 이자람 밴드’ 활동, 여러 가지 창작 판소리 작품으로 작창, 연출, 공연 등을 꾸준히 이어 나가며 모교 서울대 국악과의 명성을 드높인 예술가이기도 하다. 특히 그는 창작 판소리 활동으로 세계적인 인정을 받으며 이 장르를 계속 발전시키고 있다.

창작과 전통 판소리를 선보인 이자람에 이어, 기분을 전환할 겸 개량 한복을 입고 갓, 족두리에 선글라스를 쓰고 들썩거리며 신나는 곡을 부르는 ‘악단광칠’이 무대에 섰다. 2015년 광복 70주년에 결성됐기에 이름을 악단광칠로 정한 이들은 전부터 여러 국악 실험과 크로스오버 무대로 활동하는 ‘정가악회’에서 음악 유닛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이번에는 황해 굿과 서도 민요를 재해석한 음악 스타일을 ‘샤머닉 펑크’라고 명명한 이들은, 해외 및 국내 페스티벌에서 인기를 끌며 2018년 ‘KBS 국악대상’ 단체상을 받아 역량을 증명했다. 이들은 이날치와 마찬가지로 온스테이지 동영상을 통해 국내에서 인기를 끌었고, 온스테이지 10주년을 맞아 팬 사연을 토대로 한 응원가를 만들어 관객을 위로하는 음악을 선보였다. 정규 2집 앨범 『인생 꽃 같네』를 홍보하는 중인 이들은, 유튜브에서 공연 동영상과 브이로그(V-log)를 선보이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 나가고 있다.

밴드 '악단광칠' (사진 제공: 안나 예이츠 교수)
밴드 '악단광칠' (사진 제공: 안나 예이츠 교수)

다음 순서는 에스닉 퓨전 밴드 ‘두 번째 달’이었다. 드라마 〈궁〉, 〈구르미 그린 달빛〉, 〈푸른 바다의 전설〉 등의 OST를 맡으며 인정을 받은 이들은 2016년에 『판소리 춘향가』라는 앨범에서 유럽 민족음악과 퓨전된 국악을 선보이며 새로운 향유층을 만났다. 이들은 또한 국악계 아이돌로 알려진 소리꾼 김준수, 고영열과 함께 활동하며 〈판소리 춘향가〉를 선보여 공연들을 매진시키기도 했다. 특히 이들은 드라마 〈궁〉 OST 중 〈얼음 연못〉이라는 곡을 〈이별가〉와 함께 Mnet 프로그램 ‘너의 목소리가 보여’에서 김준수의 목소리로 보여주며 많은 호응과 관심을 받았다. 이미 유명세를 떨치던 두 번째 달은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처음으로 출연하는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하지만 처음으로 함께 출연한 소리꾼 김준수의 “저 무대는 원래 내가 설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내가 하고 있는 이 음악은, 이 소리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지 못하고 관심을 받지 못하는 음악”이라는 말은 대중과 만날 수 있는 무대를 그리워하는 젊은 국악인들의 마음을 표현하며 무대를 더더욱 뜻깊게 만들었다. 젊은 소리꾼과 그의 인생을 알 턱이 없을 관객에게 이를 친근하게 설명해 주는 김준수의 모습에서는 국악과 관객의 거리를 좁히려는 젊은 국악인들의 노력을 볼 수 있었다. 

밴드 '두 번째 달' (사진 제공: 안나 예이츠 교수)
밴드 '두 번째 달' (사진 제공: 안나 예이츠 교수)

유희열의 스케치북의 마지막 순서는 ‘상자루’ 밴드였다. 이들은 무엇을 넣어도 변하지 않는 상자와 무엇을 넣는지에 따라 변하는 자루의 모습이 전통과 창작에 대한 자신들의 태도를 나타낸다는 생각에 밴드의 이름을 상자루로 지었다고 말했다. 2014년에 팀원 3명으로 결성된 상자루 밴드는 기타, 거문고, 타악, 아쟁, 양금과 태평소 등의 다양한 악기를 연주하고, 고깔에 운동화를 신고 무대에서 신나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상자루 밴드는 전통 국악을 이용하는 것뿐 아니라, 전설적인 기타리스트 ‘Stevie Ray Vaughn’ 등의 연주를 토대로 색다른 스타일을 선보인다. 또한 이들은 유튜브 채널에 국악 악기를 들고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영상을 올리며 또 다른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다. 역시 온스테이지에서 볼 수 있던 상자루 밴드는, 라이징 스타로서 앞길이 밝다.

그러면 이 다양한 팀들이 어떻게 한 무대에 서게 됐을까?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 각 팀이 나온 이유는 확인할 수 없지만, 요즘의 국악 밴드가 다양한 색깔의 무대를 선보이며 대중에게 관심을 받고 있다는 사실만은 확실히 느껴진다. 특히 이날치와 그전에 활동했던 씽씽 같은 경우에는 민요나 판소리를 떼창하는, 홍대 클럽에서도 즐길 수 있는 음악으로 만드는 장영규 음악감독의 영향이 컸던 것 같다. 하지만 좋은 음악을 갖고 있더라도 뜨지 않은 국악 밴드는 한두 개가 아니다.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출연했던 밴드들의 가장 큰 공통점은 유튜브 채널 온스테이지인 것 같다. 이날치, 악단광칠과 상자루는 1년 전쯤 출연했고, 두 번째 달은 4년 전, 아마도 이자람 밴드는 7년 전에 온스테이지에 출연했다. 꼭 온스테이지에서 출연해야 출세할 수 있다는 말은 아니지만 이를 통해 동영상 공유 플랫폼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 생각해 볼 수 있다. 

언택트 시대 이전의 국악인들은 이미 트렌드에 따라 동영상이나 사진을 이용해 SNS에서 국악을 홍보하려고 많은 노력을 했고, SNS에서 주목받은 영상이 있으면 이를 기회로 더 많은 공연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두 번째 달 같은 경우에는 원래는 드라마 OST로 이름이 알려졌었다. 그러나 김준수와 함께 2016년 8월에 너의 목소리가 보여에 출연하는 영상은 현재 유튜브에서 200만 건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고, 이 영상에서의 음악을 이번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도 연주한 것을 보니 그 순간이 지금까지도 이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 확실하다. 이날치 같은 경우에도 이미 인기가 늘어가고 있었지만 언택트 시대에 임팩트 있는 홍보 동영상 시리즈가 이목을 끌었고, 심지어 수많은 패러디 영상까지 나오며 인기가 한층 더해지고 있다. 

아는 젊은 국악인 친구에게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시대의 국악계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물어보니 “공연 기회가 많이 없어져서 원래 인기 있는 사람들만 계속 무대에 서게 되고, 다른 사람들이 살길이 없어졌다”라고 말했다. 대면 공연이 많이 없고, 비대면 공연들도 많지 않아서 기획자들은 어느 정도의 시청자 수를 담보할 수 있는 팀을 섭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원래부터 국악 무대는 적었지만, 코로나19로 무대가 부족한 상황이 심화하며 알려지지 않은 팀들이 무대에 설 기회는 아예 사라졌다. 이렇게 무대가 부족한 환경에서 관객을 이끌고 인기를 얻을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영상 콘텐츠를 만들어서 그 영상을 띄우는 방법이다. 이는 국악계뿐만 아니라 대중음악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런 방식을 택하는 밴드들이 다 성공할 수는 없지만, 이날치의 사례는 다른 밴드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 사실 이런 방식으로 국악 밴드가 뜨게 되는 것은 어느 면에서는 실력이지만 어느 면에서는 우연이다. 결국 어떤 콘텐츠가 시청자의 마음을 얻게 될지는 미리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다음 트렌드는 국악 밴드가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일단은 국악을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지금 이 순간은 이렇게라도 사람들이 국악에 대해 알게 되고 즐길 수 있다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출연하는 밴드들은 각자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고, 연주 스타일도 천양지차다. 유튜브나 방송을 통해 많은 국악 밴드들을 접할 수 있다면 좋겠다. 그래야 앞으로 국악을 듣더라도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상한 눈초리를 받지 않을 수 있고, 다양한 국악 밴드의 음악을 취향에 따라 편견 없이 들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수 있다. 음악이나 국악에서 새롭게 무엇을 만들려고 하는 것이 꼭 다 좋은 것이 아니더라도 이러한 실험을 환영해 주는 환경이 있어야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다. 요즘 이런 환경이 조금씩 생기는 것 같아 앞으로 국악이 이어 나갈 새로운 도전이 많이 기대된다.

 

안나 예이츠 교수(국악과)
안나 예이츠 교수(국악과)

 

삽화:김채영 기자 kcygaga@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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