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 중화민족주의의 역사적 배경과 한국의 대응 방안을 살펴보다

지난달 7일 미국에서 열린 ‘밴플리트상’ 시상식에서 방탄소년단의 수상 소감이 논란이 됐다. 한국전쟁 70주년을 맞아 “우리는 양국이 함께 겪은 고난의 역사와 수많은 남녀의 희생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라고 수상 소감을 말하자 중국의 일부 네티즌이 반발한 것이다. 이들은 한국전쟁에 대해 미국과 한국만을 언급하는 것은 전쟁에서 희생된 중국 군인을 무시해 중국의 ‘국가존엄성’을 해치는 행위라 주장하면서, 소셜미디어를 비롯한 온라인 공간에서 중국과 한국 네티즌 간의 갈등이 불거졌다. 이처럼 중국의 ‘중화민족주의’에 대한 문제의식이 심화하는 가운데, 『대학신문』이 중화민족주의의 발전 과정과 그와 관련된 역사적, 사회적, 정치적 맥락을 알아봤다.

 

‘중화민족주의’의 과거와 현재

‘중화’의 범위는 본래 중국 사회의 다수를 차지했던 ‘한족’에 한정돼 있었다. 김한권 교수(국립외교원)는 “일부 시기에 북방민족의 지배를 받기도 했지만, 중국은 본래 한족 중심의 사회였다”라며 한족 사회에서 다른 소수민족은 이민족으로 받아들여졌다고 설명했다. 중국에서 한족과 55개 소수민족이 하나의 통일된 민족으로 여겨지기 시작한 것은 20세기에 들어서다. 신해혁명*으로 중국의 왕조 정치가 끝나고 중일전쟁, 국공내전* 등의 혼란기를 거치며 한족을 비롯한 56개 민족을 단일한 ‘중화민족’으로 상정하는 민족주의가 형성됐다.

특히 현대의 중화민족주의는 55개 소수민족의 독립을 저지해야 하는 중국의 국가적 과제와 깊숙이 연관돼 있다. 이에 2002년부터 중국 정부와 학계를 중심으로 중국 국경 내에서 전개된 모든 역사를 중국사로 편입시키려는 연구 프로젝트인 △탐원공정 △서북공정 △동북공정 등이 진행됐다. 특히 동북공정은 중국의 동북부에 해당하는 만주 지역의 역사를 모두 중국사에 포함시키려는 기획으로, 발해사와 고구려사를 중국사로 정의해 한국과 중국이 마찰을 빚는 결정적인 계기로 작용했다.

중화민족주의는 중국이 국제사회에서 외부 세력에 대응하기 위한 내부적 단합을 확보하는 정치적 수단으로 꾸준히 활용돼 왔다. 김한권 교수는 “아편전쟁 이후 서구 열강과 일본에 의해 중국의 주권이 침탈당하면서 중화민족주의 사상이 강화됐다”라며 “이후 탈냉전 시기에도 발전 담론이 부각되고 공산주의 사상이 약화하면서 정치적 특권과 정통성, 리더십을 유지하기 위해 중화민족주의 사상이 강조됐다”라고 설명했다. 현재 미·중 갈등 상황에서도 중국 정부는 중화민족주의 사상을 부추기기 위한 행보를 이어나가고 있다. 김 교수는 “미·중 간의 전략적 경쟁 구도가 심화하면서 시진핑 지도부나 당에 대한 국민의 충성, 당의 정통성을 높이기 위해 중화민족주의가 이용되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중화민족주의와 한·중 관계의 변화

중화민족주의는 1990년대부터 계속해서 한국과 중국 간의 갈등을 촉발하는 원인으로 작용해 왔다. 송기호 교수(국사학과)는 “2000년대부터 중국의 영향력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민족주의적 역사관이 본격적으로 외교적 갈등을 빚기 시작했다”라고 설명했다. 중국의 성장에 충분히 대비하지 않았던 국가들은 이에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특히 오랜 기간 중국 정부와 친선 관계를 유지해 온 한국은 2002년 동북공정을 계기로 중국과의 관계가 복잡해졌다.

한국의 ‘국수주의 역사관’이 중화민족주의를 자극해 이를 더욱 극단으로 몰고 갔다는 지적도 있다. 송기호 교수는 “한국과 중국, 일본에서 민족주의적, 국가중심적 시각이 득세해 서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라며 “한국에서도 발해와 고구려 역사를 국수주의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측면이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정훈 교수(중어중문학과)는 “소련 해체 후 중국 내에서 국가 해체에 대한 불안감이 증폭된 상황에서, 한국 사학계 일각은 만주 영토에 대한 정통성을 주장하기도 했다”라며 “이는 만주가 무너지면 중국 영토의 1/3이 연쇄적으로 날아갈 수 있는 중국의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못한 것”이었다고 덧붙였다. 

중화민족주의가 심화한 배경에는 한국에 대한 감정적 문제도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이정훈 교수는 “중국이 자랑하는 유교적 전통이 문화대혁명 이후로 중국 내에서 약해졌다”라고 짚으며 “한국이 이를 잘 보존하고 있는 만큼, 한국 드라마 등에 대해 중국이 선망을 보이기도 한다”라고 밝혔다. 이처럼 한국의 콘텐츠가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으면서, 중국에서는 그 문화적 기원을 자국에서 찾으려는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이 교수는 이에 대해 “중국의 일부 유튜버나 기자가 왜곡된 사실을 퍼뜨림과 동시에 한국에서도 이런 현상이 과장돼 보도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중 관계는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가

기존의 국가중심적 시각에서 한 발짝 떨어져 중국에 대한 맥락적 이해를 도모해야 한다는 진단이 있다. 이정훈 교수는 방탄소년단 사건에 대해 “미·중 간의 고조된 갈등 상황을 이해해야 한다”라며 “사드(THAAD) 배치 이후 중국은 한국이 위기 상황에 미국 편을 들 것이라고 생각하게 됐다”라고 설명했다. 즉 중국의 대응을 중화민족주의의 발로로 일반화하기보다는, 국제정치적인 맥락에서 중국이 한국전쟁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맥락을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전쟁을 가리키는 중국의 공식 명칭은 ‘항미원조전쟁’이며, 이를 미국을 비롯한 ‘제국주의 세력’에 대항해 조선(북한)에 도움의 손길을 보낸 전쟁으로 인식하고 있다. 중국의 관점에 동조할 필요는 없으나, 그 맥락을 파악해 불필요한 갈등을 예방하는 것은 가능하다. 이 교수는 “중국에 대한 편견이나 서로에 대한 열등감, 우월감 등을 버려야 한다”라며 “새로운 출발선에서 상호 존중을 통해 발전해야 한다”라고 역설했다.

중국과의 갈등 해소를 위해서는 학계의 노력도 필수적이다. 송기호 교수는 “중국의 역사 왜곡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2006년 정부 주도로 동북아시아 역사 정립을 위한 연구를 진행하는 ‘동북아역사재단’이 만들어졌지만 현재는 중국이 아니라 일본 문제에만 매진하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아울러 그는 “중국 관련 연구를 하는 학자를 꾸준히 양성하는 것이 중요하다”라며 “시민운동 또한 전문 학자와 연합함으로써 국수주의적 관점을 예방하고 운동의 본질을 지켜나가야 할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이정훈 교수 또한 “동북공정 이전까지 중국과 한국의 역사 문제에 관한 학술연구 기반이 부족했다”라며 “역사 문제를 뒷받침하는 학술적 연구가 더 필요한 실정”이라고 강조했다. 

공공 영역을 넘어 민간의 노력도 계속돼야 한다. 이정훈 교수는 “가장 효과적인 것은 유학생들 간의 교류, 주재원 파견이나 관광객 유치, 한류와 중류(中流) 소비자들끼리의 교류 등의 자연발생적인 노력”이라고 설명했다. 같은 맥락에서 김한권 교수는 “한류가 많은 관심을 받는 상태에서 온라인이나 소셜미디어를 통해 개인이 공공 외교관의 역할을 하고, 비정부단체의 활동이나 인적교류에 의한 공공외교를 성숙한 형태로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라고 주장했다.

 

한·중·일은 현재 동아시아 내에서 서로의 우열을 가려가며 싸우기 바쁘다. 중화민족주의로 중국이 감정적으로 고양돼 있을 때 한국은 그에 대한 성숙한 대응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지속적인 대화와 교류에서 한·중 관계 개선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신해혁명: 1911년의 중국에서 발생한 혁명. 그 결과 청조가 멸망하고 쑨원을 임시대총통으로 하는 중화민국이 탄생했다.

*국공내전: 중일전쟁 후 중국의 재건을 두고 공산당과 국민당 사이에 발생한 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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