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서울대의 빛깔은?
2020년, 서울대의 빛깔은?
  • 이현지 부편집장
  • 승인 2020.11.29 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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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서울대 연말 정산

한 달 남짓 남은 2020년이 생경하기만 한 연말이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이 대학 생활의 근간부터 뒤흔드는 한편 끊이지 않는 부조리와 그것보다 질긴 저항, 더 나은 서울대로 나아가려는 노력이 모여 잊지 못할 한 해가 됐다. 지난 1년, 다사다난했던 서울대에서 미동하던 다양한 빛깔들을 『대학신문』이 모아 봤다.

 

 

파랑: 전염병의 색, 코로나19가 지나간 자리

2월 12일 학사운영위원회에서 개강 2주‧종강 1주 연기가 결국 확정됐다. 1월 들어 코로나19의 확산세가 심상치 않은 양상을 보이며 학생사회가 불안에 휩싸인 끝에 나온 결과다. 입학식은 물론이고 20학번 신입생을 위한 단과대별 새내기 새로배움터와 새내기 3차 OT까지 줄줄이 취소됐다. 각 단과대는 학교생활 관련 정보를 카드뉴스나 오픈채팅방, 안내 책자 등으로 공지했지만 새로운 시작을 손꼽아 기다려왔던 신입생들의 아쉬움을 달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3월에는 총학생회(총학) 보궐선거의 비대면 진행이 본격화됐다. 작년 11월 제62대 총학 선거가 무산된 뒤 공석으로 남아 있던 자리를 메우기 위함이었으나, 4월 9일 단독 출마 선거운동본부(선본)였던 「파랑」이 소속 선본원의 성추행 가해 논란으로 사퇴하며 학생사회는 총학 없는 한 해를 보내야 했다. 이에 ‘2020 단과대학생회장연석회의’(연석회의)가 총학 대신 본부와 학생들을 잇는 가교 역할을 성실히 수행해 왔다. 하지만 단과대 학생회장이 의장을 겸직하며 의장의 임기 또한 정해져 있지 않은 체제 특성상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각종 설문 조사를 제외하면 뚜렷한 사업을 추진하지 못했다는 한계 또한 존재했다. 한편 지난달 27일 제62대 총학 선거가 예비후보 등록조차 이뤄지지 않은 채 또 한 번 무산돼 이듬해 3월 중 열릴 보궐선거까지 연석회의 체제는 계속될 전망이다.

비대면 수업은 이제 일상이 됐다. 4월 2일 교무처가 1학기 비대면 수업 무기한 연장을 발표하면서 1학기에는 강좌 대부분이 ZOOM을 통한 실시간 온라인 수업으로 진행됐다. 초반에는 아직 ZOOM 이용이 익숙하지 않거나 녹화 강의를 ‘악용’하는 교수자 및 학생이 속출해 예년처럼 수업을 진행하는 데 어려움을 겪은 경우가 많았다. 대면 지도가 필수적인 실험·실습·실기 과목은 5월 6일부터 제한적으로나마 대면 수업을 강행하기도 했다. 이에 2학기에는 대면 지도의 필요성에 따라 각 과목을 A~D군으로 분류한 뒤 대면/비대면 수업 주수를 지정하는 방식이 도입됐다.

성적평가 방식도 논란이 됐다. 학생들의 건강권 문제를 놓고 대면 시험 시행 여부가 도마 위에 오르는 한편, 상대평가로 학기 성적을 부여하는 것에 대한 불만이 잇따랐다. 교무처가 상반기 실시한 비대면 강의 만족도 조사에 따르면 학부생 응답자 중 상당수가 평가 기준이 불명확하고 온라인 시험 시 부정행위 방지가 어렵다는 이유로 절대평가 및 S/U 평가 전환을 요구했다. 이후 본부가 전공 교과목 평가 방식을 S/U나 절대평가로 변경할 수 있도록 지침을 내리기도 했다. 2학기의 경우 다음 달 4일까지 대면 시험을 치르는 것이 권고된 가운데, 최근 코로나19가 다시 급속도로 퍼지며 이번 기말고사 진행 양상의 귀추가 주목된다.

비대면 수업으로 인한 학습권 침해 문제가 불거지면서 4월부터 음·미대 학생회는 ‘공동 등록금 보상 요구 TF’(등록금 TF)를 결성해 학생사회 내 등록금 반환 요구의 선두에 나섰다. 음·미대는 실습 강의가 주를 이루고, 시설 사용료가 등록금에 포함돼 불만의 목소리도 클 수밖에 없었다. 연석회의 또한 등록금 반환 요구 기조를 설정하고 전체 학생 의견을 대리했다. 이들은 6차례의 간담회를 거친 끝에 특별장학금(긴급학업장려금, 긴급구호장학금) 형태의 등록금 반환을 본부와 협의했다. 긴급학업장려금은 음·미대 학생에게 더 높은 지급 비율을 적용하는 차등 반환 원칙을 따랐고, 긴급구호장학금의 지급 범위에는 대학원생까지 포함됐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인해 대학원생도 랩 세미나 감소 및 연구실, 돌봄 시설의 사용 제한 등 여러 불편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긴급학업장려금 지급 범위에서는 제외됐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됐다. ‘특별장학금’으로 명명된 이번 등록금 반환이 시혜적인 인상을 주고 있다는 비판도 등장했다.

 

빨강: 분노를 말하는 목소리

이번 해에도 불명예스러운 알파벳이 이름 대신 붙은 채 지면에 오르내린 교수들이 있었다. 작년 7월 음대 B교수가 대학원생 제자를 상대로 성희롱 및 인권 침해를 저지르고, 피해자가 이를 인권센터에 신고하자 의도적으로 연구과제에서 배제했다는 사실이 지난 6월 공론화됐다. 그는 인권센터 조사 과정부터 지금까지 관련 의혹을 전면 부인했으나 인권센터는 지난 4월 B교수에게 정직 12개월 이상의 중징계를 내릴 것을 징계위원회(징계위)에 요청한 바 있다. 교수와 대학원생 조교라는 위계질서 속에서 우월적 지위를 이용했다는 점이 인권센터의 사건 결정문에도 명시됐다. 음대 C교수 또한 과거 성추행 가해로 검찰 조사를 받고 있는 것이 드러나 학생들의 공분을 샀다. 

따라서 ‘서울대학교 B교수 사건 대응을 위한 특별위원회’는 ‘서울대학교 음대 내 교수 사건 대응을 위한 특별위원회’로 이름을 바꿔 활동을 이어 나가야 했다. 학생들은 행정관 앞 총장잔디에서 서울대입구역까지 행진하고, “B, C교수 파면하라”, “서울대학교 정신 차려” 등의 멘트를 행정관 외벽에 빔프로젝터로 쏘며 권력형 성폭력을 규탄하는 목소리를 높여 왔다. 본부에서도 현재 C교수 관련 징계위가 진행되고 있는 만큼 가해 교수의 징계 수위를 둘러싼 학생들의 요구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비슷한 꼴로 반복되는 권력형 성폭력 개선에 본부가 적극적으로 동참할지 구성원 전체의 날카로운 시선이 필요한 시점이다.

서어서문학과(서문과) 교수 6명이 2014년부터 2018년까지 대학원생 강의지원금 및 일부 장학금을 공동 관리금으로서 학과 운영에 사용했다는 서문과 특별 감사 결과가 드러나기도 했다. 이에 인문대 학생회(인학)는 7월 “관행이라는 이름의 갈취 이제는 중단하라”라는 현수막과 함께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8월 24일에는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 피해자 일부와 함께 당시 서문과 교수진 및 일부 시간강사, 전(前) 조교를 보조금법 위반 및 횡령 혐의로 형사고발했다. 이에 서문과 교수진의 해명이 이어졌으며 9월 17일에는 서문과 대학원 재학생 15인이 입장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인학과 소통이 원활하지 못했던 점과 형사고발 때문에 학과 운영이 마비됐음을 지적했으나, 근본적으로 학과 운영이 교수진에 의해서만 돌아가지 않도록 체계를 바꿔야 한다는 것에 양측 모두 동의했다. 이 같은 관례가 그동안 전체 교수사회 내에서도 묵인돼 온 만큼 그릇된 관행을 뿌리 뽑기 위해 본부의 강력한 제재 역시 요청됐다. 한편 서문과의 한 교수가 인학 회장단을 명예훼손으로 인권센터에 신고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올해 초 전국민적 분노를 모았던 ‘텔레그램 n번방 성폭력 사건’(n번방 사건)에 대해 학내에서도 규탄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연석회의를 비롯한 총 13개 단과대와 동아리연합회가 관련 성명을 발표했다. 한편 농생대는 연석회의 성명문 중 “(n번방 사건을) 가능케 한 것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여성혐오와 성차별적 사회구조” 등의 주장에 타당성이 부족하고 아동 청소년 대상 성폭력 근절이 명시적으로 언급되지 않았다는 점을 근거로 들어 성명문을 전면 수정할 것을 제안했다. 해당 안건은 연석회의 제18차 운영위원회에서도 발의됐으나 연석회의의 성명문이 절차대로 작성됐다는 반박에 따라 의결되지 못했다. 다만 향후 활동에 대해서는 농생대의 제안을 일부 받아들이는 절충안이 채택됐다. 이에 공대나 의대 등이 학내 합의를 위해 농생대의 수정 제안에 부분적으로 찬성한다고 밝힌 한편 미대나 사회대를 비롯한 여러 단과대는 n번방 사건과 성차별적 사회구조의 관련성을 짚는 연석회의의 기조에 동의했다.

지난 4월에는 약 한 달간 학내 시설관리직(청소‧경비원) 휴게시설 총 200곳을 대상으로 점검이 진행됐다. 작년 8월 청소 노동자 A씨가 휴게실에서 휴식 중 사망한 뒤 열악한 학내 노동 환경이 가시화됐고, 이후 이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점검 결과 6곳을 제외한 나머지 휴게시설은 작년 마련된 ‘서울대학교 시설관리직 휴게시설 가이드라인’을 지키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으나, 기계‧전기 노동자나 생활협동조합(생협)의 카페, 매점 노동자 등 다른 노동자 휴게시설 개선은 미흡하다는 비판도 따랐다. 7월에는 본부의 생협 직영화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리기도 했다. 코로나19로 인해 생협 재정이 더욱 악화한 상황에서 노동자 처우 및 학생들의 복지 후퇴를 막기 위해서는 본부의 근본적인 재정 책임이 필요하다는 요지다. 서울대를 이루는 무수한 주체들이 각자의 지향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2021년에도 선명한 색을 띠고 터져 나올 전망이다.

 

초록: 새로운 시도, 결점과 희망 사이

2020년은 앞으로의 서울대를 위한 새로운 시도들이 이어진 해이기도 하다. 우선 2018년부터 논의됐던 수강신청제도 개선안이 올해 4월 ‘혼합형 수강신청제도’라는 이름으로 최종 확정됐다. 1차 수강신청에서는 수강희망교과목을 장바구니에 담고, 2차 수강신청에서는 정원이 초과한 강의에 한해서만 선착순으로 수강신청을 하는 이 제도는 이번 달 5일(목) 진행된 동계 계절학기 수강신청부터 도입됐다. 고질병이었던 강의 거래나 아이디 도용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 장점으로 지목됐으나 인기 강의는 여전히 선착순으로 신청해야 해 효율성은 그대로라는 목소리도 있었다. 수강신청이 시작된 8시 30분부터 34분까지 수강신청 사이트에 서버 문제가 발생해 일부 학생들은 수강신청에 실패하기도 했다. 원활한 수강신청을 위해서는 제도를 다각적으로 보완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캠퍼스 환경도 변화를 맞는다. 우선 간호대가 연건캠퍼스에서 관악캠퍼스 내 공대 부지(△31동 △31-1동 △32동)로 이전하는 것이 9월 마침내 확약됐다. 코로나19의 확산세로 서울대병원의 치료 시설 확충이 긴요해지며 서울대병원이 연건캠퍼스 간호대 건물을 사용하기 위해 재원을 보탠 것이 사업 추진의 돌파구가 됐다. 간호대 설문 결과에 따르면 과반수의 학부생과 대학원생이 사업에 찬성했지만 해당 설문이 하루도 안 되는 시간 동안 급하게 이뤄졌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원래 31, 32동을 사용하던 공대(원자핵공학과, 재료공학부) 학생들의 의견 역시 반영되지 않아, 의사 결정 중 학생 의견 수렴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외에도 사범대 9동과 인문대 7동의 리모델링이 완료됐다.

2016년부터 논의됐던 ‘서울대 인권헌장(안)’(인권헌장)의 원안이 올해 공개되며 인권헌장 제정이 본격화된 점도 주목할 만하다. 인권헌장은 학내 구성원의 인권 존중을 명문화하기 위해 기획됐으며 그 자체로 구속력을 갖지는 않는다. 연석회의를 비롯한 여러 학생 단체가 인권헌장 제정에 힘을 싣기 위해 지난 9월 말부터 헌장의 전문과 조문을 페이스북에 하나씩 게시하는 ‘인권열차’ 사업을 진행했다. 그러나 ‘진정한 인권을 위한 서울대인 연대’를 비롯한 일부 구성원의 반대가 논의에 제동을 걸었다. 이들이 중앙도서관 터널에 게시한 성명서는 인권헌장 제3조 1항 중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 차별 금지 조항이 동성애 문제에 대한 ‘올바른’ 해결을 요원하게 할 것이라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이후 서울대 인권헌장 학생추진위원회(학추위), 성소수자 동아리 ‘큐이즈’(QIS: Queer In SNU) 등 여러 단체가 반박 성명문을 게시하며 공방이 이어지기도 했다.

작년 5월부터 논의가 선행됐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교수진이 공청회 개최를 요구하면서 지난달 16일에는 ‘서울대 인권헌장‧대학원생 인권 지침 제정(안)’ 공청회가 유튜브 라이브로 중계됐다. 공청회에서는 남승호 교수(언어학과)가 “이번 인권헌장이 자유라는 대학의 가치를 억압한다”라고 반대 의사를 표명한 한편 학내의 다양한 소수자 인권을 폭넓게 포괄하기 위해 헌장의 보강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지난 20일에는 학추위 주최로 인권헌장을 지지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들은 “지난 공청회에서 쏟아진 혐오 발언을 잊지 못한다”라며 인권헌장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가시화된 혐오에 맞서 인권헌장 제정을 향한 학내 구성원의 지지를 공표했다. 인권열차 사업을 통해 모은 학내‧외 지지 서명을 학생처와 인권센터에 전달하기도 했다. 제21대 국회에 또다시 차별금지법이 발의된 가운데 서울대에서도 인권헌장이 제정되는 것이 가지는 의미는 뜻깊다. 이미 변화는 시작됐고 우리는 뒷걸음질치지 않을 것이다.

 

하양: 서울대의 또 다음 1년

“2020년이 이상하니 환불해 주세요”, 코로나19로 시종일관 삐걱거렸던 2020년을 압축하는 유행어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 온 시간은 ‘환불’되지도 사라지지도 않는다. 파랑과 빨강, 초록까지 온갖 빛깔의 좌충우돌은 결국 또 다른 시작의 발판이 됐다. 지난 시간들이 만들어 준 새하얀 전환점 아래, 미흡함은 고치고 탁월함은 새로이 성취하는 2021년의 서울대로 접어들기를 기대한다.

 

삽화: 김지온 기자 kion27@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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