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굳게 닫힌 심리치료의 문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의 확산으로 국민들이 겪는 정신적 문제가 대두되며 이들을 위한 체계적인 심리 치료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정부는 지난 8월부터 ‘대국민 심리지원 프로그램’을 활성화해 전국 보건소 및 정신 건강 복지 센터를 통한 심리 상담 과정을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전문가의 치료 권한을 인정해주지 않고 사설 자격증이 난립하는 등 제도 자체의 문제로 인해 효과적인 치료가 어렵다는 이야기가 오가고 있다. 법적·비용적 문제와 더불어 심리 치료 서비스의 공급이 제한되는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다. 『대학신문』에서는 심리 치료의 수요와 공급이 엇박자를 내는 이유를 살펴봤다.

 

받고 싶어도 받을 수 없는 심리 치료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국민관심질병 통계에 따르면 2015년에는 60만 1152명이던 우울증 환자가 지난해에는 79만 6364명으로 급등하는 등, 우울증을 비롯한 정신 질환을 앓는 인구는 가파르게 늘어나고 있다. 이처럼 정신 질환이 현대 사회에서 흔하게 발병할 수 있다는 인식이 확대되자 치료 과정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현재 국내의 정신 질환자 대부분은 △사회복지사 △임상 심리사 △정신과 전문의를 통해 치료 받는다. 세 영역의 전문가는 서로의 강점을 바탕으로 심리 치료 시스템의 세 톱니바퀴를 구성한다. 사회복지사는 환자의 상황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맞춤형 지원을 제공하고 필요한 경우 환자를 임상 심리사나 정신과 전문의에게 인계한다. 이때 심리 상담이 필요한 환자는 임상 심리사에게 심리 치료를 받는다. 심리 치료와 더불어 약물 치료까지 필요한 환자는 정신과 전문의에게 치료를 받는다.

이처럼 심리 치료가 필요한 수많은 사람을 치료할 수 있는 전문가 집단이 있지만 국내 정신 질환자가 도움의 손길을 받기는 굉장히 어려운 상황이다. 치료를 진행하는 기관의 수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대학생활문화원 김병수 전임상담원은 “심리 치료 서비스 공급과 공급 주체 모두 부족한 상황”이라며 제도적 미비함으로 인한 어려움을 토로했다. 김 상담원은 “2016년 보건복지부 정신 질환자 실태 역학조사에 따르면 전체 인구의 약 1%인 50만 명이 중증 정신 질환자로 추정되지만 이 중 약 33만 명이 서비스를 원활히 받지 못하고 있다”라며 치료 인력 공급이 부족해 환자가 방치되는 현실을 지적했다. 

중증 정신 질환자가 아니라면 적절한 심리 치료를 받기 어려운 상황도 문제다. 최진영 교수(심리학과)는 “중증 질환자가 아니라면 의료법이 보호하는 영역의 사각지대에 놓이는 상황”이라며 “중증 질환자를 어떻게 치료할지에만 방점이 찍혀있는 현재의 정신 보건법 상으로는 중등도 이하의 정신 질환자에게 적절한 치료를 제공할 수 없다”라고 지적했다. 2013년 OECD도 한국의 의료법은 중증 질환자에게만 집중된다는 점을 지적하며 전 국민을 대상으로 심리 치료의 접근성을 강화하라는 권고를 내린 바 있지만 아직 개선된 지점은 없다. 최 교수는 “중증 정신 장애자를 위한 법만 있는 현행 의료법이 과연 정신과 환자를 제대로 치료하는 데 적합할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부족한 예산 불법이 된 치료

전문가들은 심리 치료의 공급이 어려운 가장 큰 이유로 예산 부족과 그로 인한 인프라의 미비를 꼽았다. 부족한 예산 탓에 치료 환경이 열악하고 치료자에게 적절한 보상을 줄 체계가 만들어지지 않아 필요한 만큼의 심리 치료가 공급되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상민 사회복지사는 “현 시스템은 치료 성공 여부가 아니라 상담을 진행한 환자 수를 기준으로 급여를 책정하는 구조”라며 “사회복지사 입장에서는 한 명 한 명 심혈을 기울여 치료하기보다 환자의 머릿수를 채우는 데 급급하게 된다”라고 씁쓸함을 내비쳤다. 

정신과 전문의도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다. 최준호 교수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환자 수를 기준으로 급여를 책정했기에 정신과 전문의는 어쩔 수 없이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 심리 치료를 기피하게 된다”라고 밝혔다. 규모가 큰 병원에서도 같은 문제로 정신과에 충분한 지원이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이병철 보험이사는 “경영진은 수가가 낮은 정신과에 공간과 인력을 내주지 않으려고 한다”라며 적절한 심리 치료를 위한 여건을 확보하기 어려운 현실을 꼬집었다.

환자가 심리 치료를 진행할 전문가를 찾았다고 해도 높은 치료 비용이라는 또 다른 장벽을 넘어야만 한다. 현재 의료 시스템에서는 심리 치료에 건강 보험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병철 보험이사는 “현재 정신과에서 제한적으로 가능한 심리 치료도 비급여 항목으로 분류돼 가격이 높게 책정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중증 우울증 등 여러 질환을 앓고 있는 A씨(24)는 “상담 센터에 방문했을 때 건강 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기본 검사에만 약 50만 원의 금액을 지출했다”라며 치료 과정에서 겪는 재정적 어려움을 호소했다. 그는 “심리 치료를 받고 싶지만 진료비가 너무 많이 들어 어쩔 수 없이 정신과에서 처방하는 약물에 의존하게 된다”라고 털어놨다.

임상 심리사에게 치료 자격을 부여하는 제도가 부실해 치료 인력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현행 제도에 따르면 임상 심리사 자격증이 부여되고는 있지만 임상 심리사가 어떤 자격을 가지는지는 규정되지 않은 상황이다. 이 때문에 임상 심리사에게 심리 치료의 권한이 주어지지 않아 자격증을 취득했음에도 심리 치료 행위 자체가 불법이 되는 모순이 발생한다. 최진영 교수는 “정신 보건 임상 심리사가 국가가 인정하는 유일한 심리사 전문 자격증임에도 불구하고 심리 치료 수행 주체에서 임상 심리사가 배제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최 교수는 “심리 치료의 세 주역이 상호 협력해야 치료 체계가 문제없이 작동한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지금은 바퀴 하나가 빠진 상태로 운전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라며 “자격증 자체가 규정되지 않은 심리사는 의료 행위 자체가 제한돼 상호 협력이 절실한 현장에서 큰 문제가 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자격증 제도 정비하고 수가 문제 해결해야

자격증 제도가 정비되지 않은 탓에 무자격자가 난립하는 혼란스러운 상황도 문제다. 심리 상담 연구소 ‘사람과 사람’ 김기환 박사는 “공인된 자격증이 없는 현 제도에서는 누구나 심리 상담 센터를 설립하고 운영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심리학 관련 자격증만 수천 개일 정도로 무자격자들에 대한 정리가 전혀 안 돼 있다”라며 “비전문가의 상담은 환자의 심리상태를 악화할 뿐 아니라 검사 해석에서 오류를 범해 오진을 내릴 수도 있다”라고 설명했다. 공황장애 환자 B씨(학생·24)는 “자격증에 대해 알아보지 않고 아무 센터나 가서 상담을 받았더니 가벼운 우울증이었던 증상이 오히려 더 나빠졌다”라며 “제대로 된 수련을 받은 전문가에게만 치료 자격을 줘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심리사 자격 제도를 정비해야 치료 체계, 그리고 비용과 관련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임상 심리사의 법적 지위가 확립돼야 수가 문제와 높은 치료 비용을 포함한 연쇄적인 어려움을 해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병철 보험이사는 “국가 공인 자격증 문제가 해결돼야 임상 심리사가 정상적인 업무를 수행할 유인이 되는 보상 체계의 확립이 가능하다”라며 “자격증 문제 해결을 시작으로 다양한 치료법이 건강 보험 체계에 편입돼야 임상 심리사의 활동 범위가 넓어지고 근무 여건이 개선돼 공급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치료 비용 문제에 대해서도 “임상 심리사가 법적 지위를 부여받은 후에는 정신과 전문의와 진료를 함께 진행하는 과정이 자리 잡아야 한다”라며 “전문의와 심리사의 치료에 대한 데이터가 쌓인다면 여러 기법이 새로운 의료 기술로 인정받아 수가 문제 해결에 이바지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심리사 공인 자격 제도 확립에 따라 일어날 연쇄적인 효과를 통해 미비한 인프라를 개선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최진영 교수는 치료자 양성 시스템을 설립할 수 있다는 점을 짚었다. 그는 “심리사 공인 자격 제도가 정비된다면 치료자를 전문적으로 양성할 수 있다”라며 “정비된 인력을 바탕으로 기초 지자체에 심리 센터를 만드는 등 공급을 늘려 접근성을 개선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수가의 인정이 공급을 이끌어낼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김병수 상담원은 “수가 인정을 받는 병원에서는 법에서 규정하는 최소 인원보다 많은 정신 건강 사회복지사를 채용해 집단 재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라는 구체적인 사례를 들며 “정신 건강 서비스에 대한 건강 보험 수가가 인정된다면 서비스 이용 및 공급 확대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제언했다. 이병철 보험이사 역시 “수가가 올라가면 인력은 자동적으로 충원된다”라며 “급여 문제가 해결되면 인력 공급도 수월해진다”라고 설명했다. 

심리사 제도의 향방에 대해서도 다양한 의견이 제시됐다. 먼저 개선을 위해서는 타 직역과의 균형을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이 있다. 기존 제도에 있던 문제를 답습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이상민 사회복지사는 “임상 심리사에게 공인 자격증을 부여하면서도 특정 분야의 전문가가 우위에 서지 않게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최적의 치료를 제공하려면 세 직역이 업무적으로 조화를 이뤄야 한다”라며 새 제도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짚었다. 비숙련자의 치료를 확실히 막을 수 있는 방향으로 제도가 개편돼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최준호 교수는 “자격증의 조건을 까다롭게 만들 필요가 있다”라며 “경험이 부족한 사람이 자격증을 받으면 기존의 무자격자 문제가 반복될 것”이라며 “경험이 충분한 사람을 선별할 검증된 제도가 필요하다”라고 역설했다. 

코로나19라는 국가적 재난 상황에 심리 치료가 필요한 사람은 그 어느 때보다 많아지고 있다. 사회 전반의 인식도 정신 질환을 금기시하는 데서부터 치료의 대상으로 보는 데까지 개선돼 왔다. 하지만 우리는 여러 난점으로 인해 심리 치료가 제대로 제공되지 않고 있는 현실에 살고 있다. 하루 빨리 심리 치료를 둘러싼 문제가 해결돼 정신 질환으로 고통 받는 사람을 위한 치료 제도가 완비되길 기대한다.

 

삽화: 유지원 기자 uz10913@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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