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걷다 우연히 『대학신문』을 봤다. 2016호라는 숫자에서 16학번이 떠올라 후배처럼 느껴져 푸근해서였을까, 혹은 요즘 들어 밖을 거니는 것이 뜸했기 때문이었을까. 디지털 노마드가 다 된 내가 오래간만에 활자가 채워진 종이를 부스럭 소리와 함께 가방에 채워 들고 왔다. 손에 스마트폰의 사각 불빛이 아닌 무광(無光) 매개체가 있는 것이 몇십 년 만인 것처럼 느껴졌다.

신문, 그곳에는 잘 짜인 공간이 있었다. 유튜브와 같이 여러 정보가 맥락 없이 몰아치는 탁류가 아니라, 흐름 줄기가 가지런히 정돈된 시냇물과 같은 정갈함이 신문 속에서 내게 손짓했다. 유튜브의 알고리즘과 자본주의 광고 속에서 자극적 정보만 수동적으로 따라다니던 때는 느끼지 못하던 새로운 감각이 환기되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대학신문』은 학교 안팎의 소식을 전하는 소식지로서 사실과 생각이 잘 버무려져 있고, 집단의 정체성이 세계의 범위를 넘지 않도록 한정시켜준다. 현시점에 공감할 수 있는 소재와 기사들이 정갈히 차려진 n첩 반상처럼 기호와 관심에 따라 맛볼 수 있다. 하지만 맛난 반찬들을 하나 둘 먹다 보면 다른 것도 계속 먹고 싶어지는 것처럼, 어느새 꽤 많은 지면을 꾸역꾸역 거닐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물리적인 촉감도 좋았다. 손으로 3차원의 고슬고슬한 촉감을 느끼면서 휙, 접었다가 휙, 다시 펴기를 몇 번이고 즐겼던 것 같다.

문득 신문이라는 공간이 새롭게 이해됐다. 신문의 본질은 물리적으로 마주하지 않으면서 문자 언어를 매개로 가상의 세계에서 소통하는 ‘비접촉(Untact) 아닌 접촉’이다. 물론 이는 자명하다. 하지만 적어도 내게 그 평범한 사실이 비범한 것으로 느껴졌던 것은 대면 소통이 힘들어진 소통 환경의 변화 때문이었을 것이다. 비대면, 비접촉이라는 화두에 예민해진 현시점에서 기존에 매우 일상적이라 생각했던 ‘같은 시공간’이라는 제약을 벗어나 소통 환경을 보다 세밀하게 바라보게 됐다. 엄밀히 따져보면 실시간 화상회의는 같은 시간 속에서 ‘공간의 제약’만을 뛰어넘는 것이고 문자 매체인 신문은 시공간의 제약을 모두 뛰어넘는 매체다. 그렇기 때문에 신문은 전달과 보존성 측면에서 훨씬 더 강력하다. 그 덕으로 시공간을 초월해 나는 읽는 내내 축제나 장터를 거니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들에게 답하는 내 목소리는 들리진 않겠지만 그들의 웅얼거림은 벽면을 타고 와 내 귓가에 울려오는 것만 같았으니 말이다. 디지털에서 떨어져 다시 곱씹어보니 ‘악타 디우르나(Acta Diurna)’와 같이 기원전부터 이러한 신문 매체의 강력함을 이해하고 활용해온 인류의 지혜에 짧은 떨림이 느껴졌다.

기사 안의 ‘녹았다 언 얼음의 더한 위험’, ‘주어보다 치욕적인 목적어와 부사어’, ‘울면서 집필 거부’ 등의 표현이 내게 시큼하게 기억에 남는 2016호였다. 신문은 다양하게 차려진 식탁이지만 마냥 어질러진 식탁이 아닌, 스토리와 조화의 식탁이다. 각자의 맛과 식후경이 달라서 더 재미있는 것 같다.

 

                                                                            이경민

                데이터사이언스대학원·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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