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 이 책 | 『방구석 미술관 2: 한국, 가볍게 시작해 볼수록 빠져드는 한국 현대 미술』

우리가 고등학교 미술 시간에 배웠던 모네나 고흐같은 작가들은 주로 서구 세계에 뿌리를 두고 있다. 풍경화, 정물화, 초상화, 조각 작품 등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작품 대부분은 서양 작가의 손에서 탄생했다. 이 과정에서 미술은 곧 서양미술을 가리킨다고 쉽게 치부된다. 모든 미술은 동등하게 평가돼야 함에도 국내 미술에 대한 관심은 뒷전이었다. 

조원재 작가의 『방구석 미술관 2: 한국, 가볍게 시작해 볼수록 빠져드는 한국 현대 미술』(방구석 미술관 2)은 미술에 대한 서구 중심적인 시각을 뒤바꾼다. 조원재 작가는 “한국 미술이 뭐예요?”라는 질문에 20세기 이후 한국 미술계의 역사를 빛낸 국내 작가들을 소개하며 한국 미술의 자유분방하고 역동적인 아름다움을 이야기한다. 계속되는 사회적 거리두기로 작품을 미술관에서 직접 관람하기 어려워지는 지금 이 책은 한국 미술의 역사를 생생하게 체험하도록 돕는다.

그 중 '한국적 아름다움'을 체화했다는 점에서 김환기를 주목할 만하다. 김환기는 한국 미술사에서 단색 추상화의 역사를 새로 쓴 동시에 국내에서 가장 비싼 값에 거래되는 미술 작품을 그린 화가로 알려져 있다. 그는 작품 「영원한 노래」에서 달항아리, 바다, 하늘을 한국의 색인 쪽빛으로 담아낸다. 그가 그리워한 한국의 정취인 산, 학, 동네 문구점 등의 소재들은 그림 곳곳에 배치돼 한상차림처럼 그려져 있다. 

미술에 대한 열망이 컸던 김환기는, 1932년 부모님 몰래 안좌도를 탈출해 일본의 니혼대를 다니며 ‘조선의 미’를 탐구하겠다는 꿈을 키운다. 조선만의 아름다움을 화폭에 담아내려는 그의 노력은 ‘고향’에 대한 탐미적인 연구로 이어진다. 그는 니혼대 미술학부를 졸업하고 다시 국내로 돌아와 자신의 고향인 조선을 표상하는 사물이 무엇인지 계속해서 찾는다. 작가가 처음으로 찾은 고향의 모습은 백자에 있었다. 「달과 항아리 틀림없는 한 쌍이다」라는 작품이 대표적인 예시다. 그는 붓터치를 두텁게 쌓아 백자에서 느껴지는 깊은 하얀색을 표현한다. 직접 백자를 빚는 것처럼 정성스레 붓터치를 올려 조선에서 백자를 빚는 도공들의 기운을 평면으로 나타낸 결과물이다. 백자뿐 아니라 매화, 새, 달에서 조국의 모습을 찾으며 작품 활동을 이어 나간다. 

비엔날레 작가로 선정돼 미국에 방문했던 1963년, 김환기는 뉴욕에서 조선의 정취를 더욱 열정적으로 톺아보기 시작한다. 타지 생활이 길어지면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짙어지자, 작가는 자신의 그리움을 조형 요소의 가장 기본인 ‘점’ 단위로 치환한다. 작품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가 그 결과물이다. 조원재 작가가 말하듯 관람객은 무한대의 점이 찍힌 캔버스가 내뿜는 신비한 힘에 압도된다. 캔버스 위의 수많은 점은 개별적으로 존재하기보다 그림의 중심부에 모여 그들만의 우주를 창조한다. 조 작가는 도공이 달항아리를 빚어 조선의 예술적 분위기를 보여줬듯, 김환기 역시 자신만의 붓터치로 한국적인 미를 구현했다고 평가한다. 화폭에 존재하는 점들이 고향인 조선의 빛깔을 표현했다는 것이다. 이후 1970년까지 7년간 뉴욕에서 인고의 시간을 보낸 김환기는 뉴욕의 포인덱스터 화랑에서 개인전을 통해 그간 화폭에 담아내 온 ‘점의 우주’를 공개한다. 조원재 작가는 이것이 김환기가 40년의 그림 인생을 통해 이룬 결실이라 강조하며, 건강과 예술을 맞바꿀 정도로 투철했던 김 작가의 예술혼을 설명한다.

김환기가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화폭에 구현했다는 점에서 기념비적인 화가라면, 백남준은 혁신적인 예술로 해외에서 인정받은 거장이다.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 있는 거대한 티비탑 작품 「다다익선」의 작가 백남준은 작곡을 계기로 예술에 눈을 뜨게 된다. 그는 조성 규칙을 파괴하는 오스트리아 출신 작곡가 쇤베르크의 무조 음악에서 영감을 얻어 예술에 부과되는 모든 원칙을 거부하기로 다짐한다. 백남준은 전자 음악을 통해 자신의 다짐을 행동으로 옮긴다. 그가 창작방식으로 전자 음악을 선택한 데는 미국의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 존 케이지의 행위 예술의 영향이 있었다. 정해진 악보대로 피아노 음을 눌러야 하는 기존의 연주회 방식을 비틀고자, 존 케이지는 〈4분 33초〉라는 퍼포먼스를 통해 약 4분간 아무런 음도 연주하지 않는 파격적인 무대를 시도한다. 백남준은 존 케이지의 영향을 받아 〈피아노 포르테를 위한 연습곡〉이라는 퍼포먼스 도중 피아노를 갑자기 부수며 기존의 연주회 형식을 과감히 파괴한다. 

음악에서 시작한 백남준의 예술 창작은 미술 분야로도 확대된다. 그는 20세기 후반의 전설적인 예술가 모임 ‘플럭서스’에 가입해 창작 활동을 활발하게 이어 간다. 백남준은 플럭서스 소속 예술가들과 함께 2차세계대전 이후 자본주의에 잠식된 예술을 비판하면서 기존 예술계의 관성을 전복하고자 창의적인 회화 작품을 그린다. 플럭서스 활동 당시의 초기 작품 「머리를 위한 선」에서 그는 머리에 물감을 묻혀 캔버스에 그리는 작업을 시도한다. 조원재 작가의 설명처럼 백남준은 피아노를 부수며 관객을 당황시키던 모습에서 벗어나, 회화의 근본 요소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미술 작품이 ‘작가의 사고’로 창작된다는 중요한 말까지 남긴다.

예술에 대한 백남준의 관심은 회화를 넘어 TV라는 현대 매체로 확장되기에 이른다. 아직 TV가 본격적으로 상용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백남준은 텔레비전을 통해 전파되는 이미지에서 전 세계가 하나로 통합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발견한다. 1984년에 1월 1일 공개된 작품 「굿모닝 미스터 오웰」은 이와 같은 백남준의 인식을 뚜렷하게 드러내는 작품이다. 그는 세계 최초 인공위성으로 뉴욕, 서울, 도쿄, 파리를 연결해 자신의 영상을 전 세계에 송출하는 작품을 기획했다. 오페라, 행위 예술, 색소폰 연주 등 모든 예술이 경계 없이 뒤섞인 영상이 전 세계에 실시간으로 퍼져 나갔다. 백남준은 작품을 통해 기술 발전의 끝이 인류 멸망일 것이라 예측한 조지 오웰을 조소하며 인류가 여전히 기술 문명의 혜택으로 편안한 삶을 살고 있음을 밝힌다. 그의 작품들은 오늘날까지도 예술의 의미를 재고하게 한 혁신적인 시도들로 간주된다. 조원재 작가는 그런 백남준을 ‘예술적 표현의 새로운 개척자’라고 묘사한다.

앞서 소개한 두 작가 모두 미술사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뛰어난 작업을 해냈다. 조원재 작가는 『방구석 미술관 2』를 통해 이처럼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국내 작가들의 궤적을 살핀다. 독자는 책을 읽으면서 ‘한국의’ 미술을 추적할 시간을 가지게 된다. 한 작가 한 작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어느새 우리의 미술에도 익숙해질 것이리라 기대해 본다.

『방구석 미술관 2: 한국, 가볍게 시작해 볼수록 빠져드는 한국 현대 미술』, 조원재, 424쪽, 블랙피쉬, 2020년 11월 18일
『방구석 미술관 2: 한국, 가볍게 시작해 볼수록 빠져드는 한국 현대 미술』, 조원재, 424쪽, 블랙피쉬, 2020년 11월 18일

 

삽화: 김지온 기자 kion27@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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