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명불가능한 세상과 기적의 발명
해명불가능한 세상과 기적의 발명
  • 대학신문
  • 승인 2020.11.29 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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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학전문대학원 석사과정 권용석
법학전문대학원 석사과정 권용석

누군가 OX 형식의 양자택일 문제를 질문할 때, 자신의 답에 확신이 없으면서도 자존심을 잃고 싶지 않다면 헛기침을 작게 하고, 진지하고 낮은 목소리로 “양쪽의 측면이 다 있습니다”라고 대답하면 된다. 실수로 이미 확신에 가득 찬 대답을 해버렸다면, 추후 자신의 오류가 판명됐다고 해서 갑자기 미친 척 모면하려 해선 안 된다. 차라리 자못 놀란 표정으로, “그것 참 흥미로운 예외네요”라고 이야기하는 편이 낫다. 그러나 사안의 예외성이 현저할수록 질문자들은 당신에게 그 예외에 대해 설명해달라고 요청할지도 모른다. 그럴 때는 “기적적인 현상이군요”라고 읊조리는 편이 좋다. 그렇게 기적의 존재를 쉽게 납득하기 어려워하는 일부 예민한 사람들만이 당신의 무식을 눈치채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기적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모든 사람들을 비겁한 회피자로 간주해서는 곤란하다. 사람이란 본래 잘 모르는 것에 대해서도 의미를 부여해야만 하는 존재가 아닌가. 어쩌면 엄밀한 과학의 관점에서 기적이란 존재하지 않고, 세상 모든 일은 그만한 이유가 있어 일어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람들은 여전히 해명 불가능한, 자기 인식 밖의 긍정적인 것들에 기적이라는 이름을 붙이므로, 기적은 그러한 이름으로서 엄연히 존재하는 것이 된다. 

기적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주는가. 기적이란, 기존의 이론들과 인식된 사실들로는 도저히 해명할 수 없는 어떠한 사실에 부딪혔을 때 비로소 설득력을 얻는 역설적인 개념이다. 기적은 해명 불가능성의 자인이다. 따라서 누군가 한국의 경제성장을 설명하며 ‘한강의 기적’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면, 그는 한국의 경제성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기보다는 자신이 아무것도 설명할 수 없음을 내보이는 것에 더 가깝다. 결국 기적이라는 용어는 기적이라 지칭되고 있는 대상보다 그러한 용어를 사용하는 이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설명해주는 개념이다.

그렇다면 기적을 믿는다는 것은, 해명 불가능한 것들로 가득 찬 세상에서, 자칫 자신이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한다는 사실 때문에 정신을 잃지 않고 살아가려는 자들의 발명품 같은 것이 아닐까. 해명 불가능한 것들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불완전한 인간들이 미치지 않기 위한 필수적 조건이 아닐까. 더 이상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회로에서 원하던 결과가 나올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구원자나 메시아, 예언가나 난세에 나타난다는 진인(眞人)을 찾게 되는 것처럼. 그 누구도 믿을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혼자 살 능력과 자신도 없었던 사람이, 결국 가장 믿어서는 안 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이게 되곤 하는 것처럼.

신입생 시절 나에게 글쓰기 튜터링을 받았던, 지금은 대학신문사에서 일하고 있는 K양은 얼마 전 내게 긁지 않은 복권에 대해 이야기했다. 복권을 긁지 않은 채로 둔다는 것은, 기적의 가능성을 내 일상 안에 포섭하는 것. 하루하루가 똑같을 것만 같은 일상이 뒤바뀔 여지 하나를 남겨놓는 것. 그 이야기를 듣고, 어쩌면 복권은 확률을 사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펼쳐질 수많은 이야기들을 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당첨금이야 내 손에 들어올 리 만무하지만, 그에 대한 기대와 상상들은 내 일상 안에 확실하게 들어와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긁지 않은 복권은, 미래에 내가 축적하게 될 부(富)의 양보다는, 긁지 않은 복권 속에 기대와 이야기들을 담고 있는 현재의 나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말해주게 될 것이다. 

돌이켜보면, 공부를 할수록 나는 확실한 것들과 멀어지게 됐다. 공부의 경험이란 넓은 세상에서 내가 설명하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이 보자기만 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 기존에 가지고 있던 믿음과 통념이 하나씩 깨지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 자신을 포함한 주변 세계가 지금 확신하고 있는 것들이 때로 잘못된 것이었음을 판명 받게 되는 것. 어제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지만 어제보다 더 확신할 수 있는 것들이 적어지는 사람이 되는 것. 앎보다는 모름에 대해서 더욱 정확하게 알게 되는 것.

이렇듯 공부의 체험을 통해 끊임없이 확장되는 해명 불가능한 세계와 마주하다 보면, 미쳐버리지 않기 위해 기적이라는 안정제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과로에 지친 사람들은 저마다의 기적을 고안하기 시작한다. 굳이 기적을 믿어야 한다면, 나는 긁지 않은 복권보다 매일 정해진 일을 규칙적으로 할 때 찾아온다는 기적을 믿겠다. 매사에 정성을 다하면서도 집착하는 바가 없는 사람들에게 찾아온다는 기적을 믿겠다. 세상에 쓸모없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사람들이 보여주는 기적을 믿겠다. 자신이 원해서 태어난 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인생에 예우를 다할 때 비로소 찾아온다는 기적을 믿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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