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소과 서해영 강사
조소과 서해영 강사

2020년 미술계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로 인해 준비했던 전시들이 취소되고 중단되는 등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최근 확진자가 급증하고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되며 예술계는 또다시 얼어붙고 있다. 나는 올해 코로나19와 자연재해들을 ‘운 좋게’ 피해가며 ‘무사히’ 전시를 치렀다. 하지만 코로나19 상황은 금방 끝날 것 같지 않고, 바이러스라는 위험요소가 사라진다 해도 그것이 우리 삶에 끼쳤던 변화와 영향력은 꽤 오래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예술생산자의 입장에서, 예술활동의 지속을 ‘운’에 맡기는 것이 아닌,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실질적인 대안이 필요함을 느낀다.

나는 지난 몇 년간 미술대학 조소과에서 강의를 해오고 있다. 그래서 이번 코로나19 상황이 조소 전공 학생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조소과는 물질과 공간을 다루는 작업이 주가 되기 때문에, 학생들은 작업 공간의 문제, 재료 및 장비 사용의 문제, 소통의 문제 등을 기본으로, 여러 가지 불확실성과 싸워가며 작업을 해나가고 있다. 물론, 이러한 상황에서도 작업에 대한 열정과 의지를 가지고 자기만의 작업 방식을 찾으려는 노력들 또한 볼 수 있지만, 다수의 학생들은 스스로 작업에 대한 동기부여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대면수업이 가능해졌음에도, 실기실을 마음껏 사용 할 수 없는 상황과 과제전이라는 실질적인 목표가 없는 상황에서 학생들의 의욕과 사기는 많이 떨어져 있고, 언제 바뀔지 모르는 코로나19 상황에서 작업에 집중하지 못하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현장에서 작업하고 있는 작가들의 전시에서도 코로나19가 끼친 영향을 찾아 볼 수 있다. 얼마 전 인천아트플랫폼에서 열린 <당장의 질문>이라는 전시는 텅 빈 전시장에 스피커 15개만이 설치된 전시였다. 스피커에서는 15명의 작가들의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는데, 나는 속으로 ‘이런 식의 전시라면 물리적인 공간에 굳이 전시할 필요가 없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과 함께, 너무 무성의하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전시장 한 켠에 비치돼 있는 포스터의 문구들을 발견하고 한명 한명의 목소리들에 귀 기울이게 되면서, 왜 이러한 방식이 필요했는지 공감하게 되었다. [당장의 질문] “제한된 조건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자유로울 수 있는가?”, “이 상황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경험의 대체 가능성과 그에 따른 변용이 불러 올 앞으로의 미술은 어떤 모습으로 펼쳐질까?” 등, 작가들이 써내려간 질문들을 보며, 코로나19는 예술가들의 작업과 삶에 많은 영향을 끼쳤을 뿐만 아니라,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작업과 전시라는 형식에 대해 의문을 갖게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시각예술이 코로나19 시대와 그 이후에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지고 보여지며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논하기 위해서 작가들은 과감히 ‘시각성’과 ‘저자성’을 포기하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자 했던 것이다. 개개인의 작업결과물을 선보이는 것보다 지금의 시급한 질문들을 드러내기 위해 15명의 작가 모두가 예술가의 생존의 문제에 ‘공감’하고, 그 대안을 ‘함께’ 만들어가고자 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이러한 고민에 대한 하나의 실천적인 시도는 가까운 미대 안에서도 진행되고 있었다. 지난 11월 16일 미대 학생회를 주축으로 ‘Pathfinder’라는 전시(프로젝트)가 열렸다. 현재 미대는 졸업전시를 제외한 거의 모든 과제 전시를 진행하지 않는 상황이어서 학생들이 작가이자 관객으로서 ‘전시’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매우 적다. 과제전은 단순히 결과물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 작업의 과정을 공유하고 비판적인 피드백을 통해 앞으로의 작업을 발전시킬 수 있는 중요한 자리이다. 공식적인 과제 전시가 열릴 수 없는 현실적인 제약을 넘기 위해, 26명의 미술대학 학부생들은 가상 전시를 기획했고, 그것을 실천에 옮기기 위해 외부 스타트업 업체와 협업해 온라인 플랫폼을 구축했다. 가상 공간 속 작품들을 감상하며, 작업에 담긴 다양한 생각들뿐만 아니라, 가상이기 때문에 표현 가능한 자유로운 예술적 시도들을 엿볼 수 있었다. 물론, 작품의 디테일과 실재감이 잘 느껴지지는 않는 점은 아쉬웠지만, 코로나19 상황에서도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고, 서로가 힘을 모아 하나의 대안을 만들어냈다는 것이 놀라웠고, 무기력했던 나 자신을 돌아보게 했다. 이 글을 빌어 코로나19가 침범할 수 없는 공간을 만들어낸 26인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여전히, 코로나19라는 거대한 두려움이 우리들을 무기력하게 만들고, 생존의 문제 앞에서 예술은 점점 삶에서 멀어져 간다. 하지만 지금도 끊임없이 예술의 작업 현장과 교육 현장에서 용기 있는 예술가들은 이 상황에 주저앉지 않고 나아가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나가고 있다. 예술가들의 생존을 지켜낼 수 있는 것은 예술가들 자신이 돼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공감과 연대’가 바탕이 돼야함을 느낀다. 이 시대에 예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함께’ 할 수 있는 작은 성취들을 이뤄나갈 수 있다면, 코로나19(이후의)시대에도 예술(가)은 생존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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