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 이 책 | 『타인에 대한 연민』

지난 3일(화) 치러진 2020년 미국 대통령 선거의 승자는 선거인단 538명 중 273명을 차지한 민주당 바이든 후보였다. 그러나 이날 트럼프를 향해 던져진 약 7300만 명의 표는 미국에 새로운 메시지를 안겼다. 트럼프가 사라진 이후에도 ‘트럼프주의’는 앞으로도 꽤 오랜 시간 동안 미국을 지배하리라는 암시였다. 트럼프 행정부 집권기 동안 미국 사회에서는 △유대인 △여성 △성 소수자 △이민자 등에 대한 배타적인 정서가 폭발적으로 자라났다. 『타인에 대한 연민』의 저자 마서 누스바움은 현재의 미국에 대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책의 부제와 같이 ‘혐오의 시대를 우아하게 건너는 방법’을 풀어낸다.

인간은 생애 초기 단계에서 외부 세계의 불확실성과 신체의 무력감을 견디며 ‘두려움’의 감정을 학습한다. 이런 유아기적 감정은 생애 전반을 지배하면서 ‘분노’와 ‘혐오’, ‘시기’로 변화해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요소가 된다. 예컨대 인간의 취약성, 불안정성에 대한 두려움은 자신이 입은 피해를 타인에게 돌리는 결과로 이어져 보복에 대한 열망을 낳기도 한다. 누스바움은 “행위와 행위자를 구분”함으로써 “보복에 대한 환상 없이도 부당함에 단호하게 반대하는 정신을 유지”해야 한다고 말한다. 비폭력 흑인민권운동을 이끈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나는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 연설은 응보주의적인 시각을 자유와 평등, 인류애에 대한 염원으로 전환한 대표적인 사례다.

혈액, 시체, 부패한 고기, 배설물 등에 대한 거부감은 죽음에 대한 인간의 두려움에서 기인한다. 누스바움은 이런 ‘원초적 혐오’가 사회 소수자 집단인 여성, 흑인, 이슬람, 성소수자 등에 덧씌워지며 ‘투사적 혐오’를 만든다고 설명한다. 저자는 “혐오는 대상에 대한 환상을 먹고 자라나기에 일상을 공유하는 것이야말로 이를 없앨 가장 좋은 방법”이라며 커밍아웃을 구체적인 사례로 제시한다. 커밍아웃하는 동성애자, 양성애자가 늘어나자 성소수자가 우리 삶에 가까이 있음을 깨닫고 그들을 존중하는 문화가 조성됐다는 것이다.

누스바움은 시기심의 뿌리 또한 인간의 두려움에서 찾을 수 있다고 해석한다. 불완전한 존재인 인간은 자신이 원하는 바가 충족되지 않을 수 있다는 불안을 끊임없이 체감한다. 이것이 상대방을 깎아내리려는 부정적인 욕망으로 번지기 쉽다는 주장이다. 누스바움은 민주주의를 시기심으로부터 보호하고자 ‘뉴딜 정책’처럼 최소한의 사회 안전망을 건설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경제적 안정을 보장함으로써 감정을 통제 가능한 수준에 묶어둘 수 있기 때문이다.

성의 정치학은 앞서 언급한 다양한 감정이 복합적으로 뒤섞이는 영역이다. 철학자 케이트 만은 성차별주의를 ‘남녀 본성의 차이’와 ‘여성의 열등함’에 대한 불완전한 믿음 체계라고 정의한다. 반면 누스바움에 따르면 여성혐오는 “성별에 의한 특권”을 강화하기 위해 “여성들의 발을 묶어 놓으려는 행동 양식”으로, 온건한 가부장제 질서와 결합해 여성을 압박하고 배제하는 기제로 작동한다.

이때 여성혐오는 종종 여성의 역할을 아내와 엄마에 한정하는 등의 성차별주의적 논리로 정당화된다. 많은 여성이 사회적 성공을 거둬 성차별주의적 믿음을 반박하고 있는 현재, 누스바움은 “진짜 문제는 조롱, 혐오 표현, 고용과 선출의 제한, 동등한 인간으로서의 존중 거부 등의 방법을 써서라도 구시대의 질서를 유지하겠다는 남성들의 결심”이라고 통찰한다. 중하위층 백인 남성을 중심으로 자신의 학위와 일자리가 여성에게 ‘부당하게’ 박탈당했다는 생각이 불안정한 삶에 대한 두려움과 합쳐져 시기심을 유발했다는 것이다. 누스바움은 이런 시기심이 순간의 위안을 제공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지적하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 유독한 감정들의 조합이 아니라 두려움으로 인한 모든 감정을 뛰어넘어 모두를 위해 함께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나갈 전략”이라고 말한다.

두려움의 반대편에 선 감정은 ‘희망’이다. 누스바움은 ‘믿음’과 ‘사랑’에 바탕을 둔 희망을 지키는 것이 ‘혐오의 시대를 우아하게 건너는 방법’이라 말한다. 그는 “상대편을 이성적 사고가 가능하고 다양한 감정을 느끼는 인간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라며 이런 인간관계에서의 믿음이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중요하다고 이야기했다. 또한, “인종차별주의자를 미워하지 않으면서도 인종차별주의를 비판”하는 것처럼 행위와 행위자를 구분해 인간에 대한 사랑을 잃지 않는 것도 요구된다고 짚는다.

누스바움은 희망을 지탱하는 데 도움이 되는 요소로 “시와 음악을 비롯한 예술, (교육 기관이나 다양한 토론 집단의) 비판적 사고, 타인에 대한 사랑과 존중을 실천하는 종교 단체, 폭력을 지양하고 대화로 정의를 추구하는 연대 단체, 그리고 (그런 단체들과 깊은 관련이 있는) 정의에 대한 이론들”을 언급한다. 이를테면 예술은 인간의 다양성과 복잡성을 환기해 타인의 삶을 이해하고 그와의 차이를 수용하도록 돕는다. 나아가 누스바움은 미국 사회에서 인종과 계급에 의해 삶의 영역이 지나치게 분리돼 있다며, 그로 인해 “자신이 속한 집단을 초월하는 공동의 목표를 생산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이라고 분석한다.

『타인에 대한 연민』은 오늘날 한국 사회에도 깊은 울림을 줄 만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혐오의 시대’는 결코 미국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혐오의 시대에 대한 누스바움의 처방을 경청해야 한다. ‘타인을 사랑하고 깊게 이해하라’, ‘실천적 지식인으로서 공공의 선을 실천하라’ 등의 호소는 ‘뻔한 소리’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이 핵심이다. 우리는 타인에 대한 사랑과 연민을 외치는 뻔한 이야기가 당연하지 않은 시대에 살아가고 있어서다.

『타인에 대한 연민』, 마사 누스바움, 임현경 역, 296쪽, 알에이치코리아, 2020년 9월 15일
『타인에 대한 연민』, 마사 누스바움, 임현경 역, 296쪽, 알에이치코리아, 2020년 9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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