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 미대 가상전시 '패스파인더:Pathfinder'에 빠져들다

지난 16일(월)부터 28일까지 미대 학생회 ‘패키지’가 기획한 가상전시 〈패스파인더:Pathfinder〉가 열렸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로 오프라인 전시가 축소된 상황에서 미대 학부생들은 온라인 플랫폼을 이용한 언택트 가상전시로 새로운 예술 형식에 도전했다. 전시를 통해 그들은 시공간을 넘어 관람객과 소통했다. 그들의 작품을 보고 이야기를 듣기 위해 『대학신문』이 〈패스파인더:Pathfinder〉 속으로 들어갔다.

⃟‘패스파인더(Pathfinder)’, 출발점과 목적지 사이의 경로를 찾는 개척자=‘길잡이’라는 뜻을 가진 전시의 제목 ‘패스파인더’는 언택트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전시 방향을 모색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다. 더불어 언택트 사회에 부합하는 전시 기획을 통해 미흡한 홍보로 그간 관심을 받지 못했던 미대 전시회를 조명하겠다는 취지도 있다.

‘스프링캠프 Ersatz’가 제안한 게임엔진으로 구현된 본 전시는 패스파인더 홈페이지에 게재된 온라인 프로그램을 실행함으로써 시작된다. 가상공간에 구현된 미대(51동) 건물에서 관람객은 방향키와 마우스로 내부를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작품을 감상한다. 관람객은 스크린에서 △평면 △입체 △움직임 △사운드 △영상 △설치미술 등 다양한 매체로 만들어진 작품을 만난다.

가상전시 입장 후 화면(사진 제공=미대 하규원 학생회장(조소과·17))
가상전시 입장 후 화면(사진 제공=미대 하규원 학생회장(조소과·17))

 

⃟가상공간 속으로: 작품을 만나다=관람객은 가상전시를 통해 다양한 감정을 느낄 수 있다. 김서연 작가(조소과·17)의 작품 〈ENNE(Everything is Nothing Nothing is Everything)〉은 코로나19로 혼란스러운 모든 사람에게 편안함을 선사한다. 반복되는 움직임으로 가득한 영상에서 작가는 영원에 대해 이야기한다. 김서연 작가는 “개인은 각각의 고난에 시달리면서도 매번 불안이라는 감정을 똑같이 경험한다는 공통점을 가진다”라며 “불확실함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작품을 관람하는 순간 동안이라도 일관된 감정에 머무르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관람객에게 위로를 전하는 입체 작품도 있다. 단상 위에 놓인 정리나 작가(조소과·18)의 〈향을 담은 관〉은 손바닥만 한 작은 크기의 인센스 박스다. 관의 주인은 작가일 수도, 관람객일 수도, 세상의 모든 작은 존재일 수도 있다. 관 속에서 타오르는 사물은 향의 연기를 타고 자신의 물성(物性)을 방 안에 가득 채운다. 그렇게 자신이 고정된 실물로 존재했더라면 닿지 못했을 곳으로도 손을 뻗는다. 본래 관람객이 향을 직접 피울 수 있는 참여예술의 형태로 기획된 본 작품은 가상전시에서 24시간 내내 타는 향으로 변모해 관람객에게 평온함을 준다.

전시는 오프라인에서 보기 힘들었던 형태의 작품을 통해 관객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한다. 노지영 작가(조소과·18)의 〈노지영밴드〉는 여러 사람이 퍼포먼스의 주체가 되는 행위 예술 작품이다. 관람객이 사람들에게 다가갈 때마다 그들은 관람객을 향해 걸어 나와 “차차차”라는 소리를 낸다. 사람들은 저마다 다양한 모습으로 서있다. 기타를 치고 있기도, 연주되고 있는 기타처럼 누군가에 안겨있기도, 기타 소리를 직접 내고 있기도 하다. 이들은 밴드처럼 모여 연주를 시작한다. 이렇게 현실 세계에서는 영상으로만 보였을 밴드가 3D 모델링을 통해 눈앞에서 입체적으로 살아 움직이는 〈노지영밴드〉가 된다. ‘감상 되는’ 이미지가 아닌 관람객과 능동적으로 소통하려는 디지털 이미지도 있다. 김윤진 작가(서양화과·19)의 〈나야1〉은 “친구(@_cind.i)의 멋진 하루에 공감을 표해달라”라고 요구한다. 관람객은 무언가를 요구하는 듯한 작품의 분위기에 당혹감을 느낀다. 이런 감정은 어지러운 가상공간에서 ‘창문’이 가지는 해방감을 매개로 극대화된다. 작품을 스쳐 지나갈 수 있는 관람객을 창문에 띄운 가상 이미지로 붙잡아 관객의 감정을 자극하는 것이다.

⃟언택트 예술의 한계와 가능성을 살피다=전시를 기획하고 작품을 가상공간에 구현하는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현실의 작품을 가상공간화하면서 저작권 개념이 모호해지자 학생회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법적 계약을 명확히 하는 등 많은 시간을 들여야만 했다. 또한 가상전시의 특성상 원본 작품을 실제와 똑같이 구현하기 까다로웠다는 의견도 있었다. 정리나 작가는 “그 어떤 가상전시도 직접 미술관에서 감상하는 것만큼의 감동을 선사하기는 어렵다”라고 말하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노지영 작가는 “창작자가 관객과 직접 소통하기 어렵고 일부 기획 단계에 개입하기 어렵다는 점이 전시의 효능감을 떨어뜨린다”라며 언택트 예술의 한계를 짚었다. 가상전시 사이트 자체의 문제도 지적됐다. 이번 〈패스파인더:Pathfinder〉 전시는 관람객이 홈페이지에서 프로그램을 다운로드해야만 작품을 볼 수 있게 기획됐다. 김서연 작가는 “프로그램이 일부 운영체제와 모바일에서는 구동되지 않았다”라며 가상전시의 특성을 극대화할 인터넷 환경을 정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번 언택트 전시는 새로운 예술로 나아갈 가능성 역시 제공했다. 먼저 오프라인에서보다 작품의 크기와 비율을 쉽게 조정 가능하다는 장점이 확인됐다. 시공간의 제약을 없애 작품에 대한 접근성을 높여 관객층을 확대하기도 했다. 미대 하규원 학생회장(조소과·17)은 “작품뿐 아니라 전시에 접속하는 사람도 가상공간에 데이터 형태로 전송된다”라고 말했다. 가상전시가 관람이라는 행위의 본질을 재고할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덧붙여 그는 “처음으로 기획한 가상 작품전이었던 만큼 아쉬운 점이 많았지만 예술의 새로운 미래를 내다볼 좋은 출발점이 됐다”라며 앞으로 예술계에서 언택트 예술에 대한 논의가 확대될 것이라는 희망을 내비쳤다.

〈패스파인더:Pathfinder〉에는 코로나19로 작업과 전시가 어려운 상황에서도 멈추지 않고 언택트 예술의 가능성을 찾아 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가상전시에서 관람객은 시공간적 장벽을 뛰어넘어 연결되고 전시의 일부가 될 수 있었다. 비록 이번 전시는 끝이 났지만, 다음 ‘패스파인더’를 찾기 위해 모두가 언택트 예술의 미래를 모색해야 할 시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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