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예령(사회학과)
최예령(사회학과)

눈을 감고 잠을 청하려면 문장이 잠을 방해한다. 어둠을 더듬어 녀석들을 노트에 휘갈겨두거나 핸드폰 메모장에 적는다. 깜깜한 노트와는 달리 한번 불이 밝히면 그 시는 끝을 봐야 한다. 그날은 어둠 속에서 청록색인지 푸른색인지 모를 무언가의 결이 스스스 일어났고, 시의 첫 문장과 함께 결착이라는 말이 어른거렸다. 그래서 당선작을 썼다. 이불 밑으로 더운 빛을 숨기고, 옆사람이 깰까 조심하면서. 오늘의 영광을 남김없이 나의 가장 안전한 결착인 엄마와 가울밤의 이불이 되어주신 선배 시인들께 바친다. 더없이 시인이었던 젊음과 모든 순간의 우연에도.

시는 말이 말을 낳는 예술이다. 첫 문장이 떠오르면 대개는 전 문장이 다음 문장을 낳는 식으로 이어진다. 완성된 문장들은 내 소유가 아니다. 어디에서 왔는지 모를 녀석들이다. 모든 단어에 명확한 의지와 구체적 의도를 가지고 글을 쓰는 데 익숙해진 사회학도는 그래서 종종 불안하다. 명징한 언어가 영영 두 갈래이길···, 본격적인 시 쓰기는 이제 걸음마 단계일 뿐이다. 이 시가 당선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지만, 세상에 내놓는 첫 작품으로 시(대)에 대한 고민과 포부를 들려드릴 수 있는 건 드문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세상으로부터 받는 첫 응원이다! 기쁘고 값지다. 이 시를 쓴 이후 아무에게도 읽히지 않는 글들을 계속해서 썼다. 약간 축축하고 오래 노란 글들을 석양 아래에서 읽기도 하고 자판기에 넣기도 했다. 여기서부터 시작하자, 그러자 굴러나오는 길들이 다정하게 나를 에워쌌다. 사람에 대한 갈증은 여전하다. 나와 시를 다정하고 신랄하게 읽어줄. 그러나 언제든 오리라 믿는다.

당선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든 감정은 어서 내 글들을 세상에 보여주고 싶다는 거였다. 엉뚱하고, 담백하고, 요란한 그대로. 걷게 된 이후 넘어져 본 적 없는 아이처럼 달리고 있다. 부풀어질 데까지 부풀어져 보겠다. 서너 편의 시를 쓸 때마다 갈 길이 달라져 보인다. 대학문학상에 투고했던 시점으로부터도 즐겁게 많이 걸어왔다. 서늘한 가을로, 두꺼운 이불 밑으로, 비릿한 숲으로, 메밀꽃 피는 바다로. 머지않아 다시 그대들과 따뜻한 공간을 공유할 수 있길. 그때까지 모두 꼭 안녕하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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