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대 예술관(53동)에서 김우진 교수(국악과)를 지난달 6일 만났다. 국악학 연구 발전에 공헌해 온 그는 △전남대 △한국학중앙연구원 △단국대 교수를 거쳐 마지막으로 서울대에서 정년을 맞았다. 추운 날씨를 뚫고 찾아간 교수 휴게실에서 김 교수는 기자에게 따뜻한 음료를 권하며 소탈하게 웃어 보였다. 

김우진 교수
김우진 교수

Q. 오랜 시간 학생들을 가르쳤는데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나?

A. 돌이켜보면 학생이 오히려 나의 스승이었다. 처음 교수로 부임한 후 진행했던 원전 강독의 첫 수업 시간에 해석이 잘 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해석은 이렇게 주어져 있으나 이유는 잘 모르겠다고 솔직하게 말했더니 학생 한 명이 손을 들고 “글자가 잘못된 것 같다”라고 하더라. 알고 보니 가지고 있던 인쇄본이 원전과 차이가 있었다. 그때 아는 척을 했었다면 매우 난감해졌을 것이다. 배우는 입장에서도, 가르치는 입장에서도 ‘내가 언제든 틀릴 수 있다’라는 생각을 새기고 모르는 것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겠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Q. 거문고 연주보다 오히려 고문헌 해석이 이력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듯하다.

A. 처음에는 거문고 연주를 하다가 대학에 와서 음악학을 전공했다. 거문고를 전문적으로 연주하던 경험이 음악학 연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고악보들의 기본적인 형식이 보통 거문고 악보기 때문이다. 거문고 악보의 작성법에 능통하지 않은 사람들은 악보를 읽는 단계에서부터 어려움을 겪지만, 나는 해당하는 소리를 바로 연상할 수 있다. 예상했던 것과는 다른 길을 걷게 됐음에도 이전의 노력은 든든한 자산이 됐다. 주어진 현실에 충실하며 어떤 곳으로든 도약할 수 있는 기본기를 쌓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Q. 향후 국악이 발전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부분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A. 창작과 연구 분야 모두에서 유연한 사고가 이뤄져야 한다. 학생들 사이에 “국악의 음계와 관련된 논문 주제를 선택하면 졸업하기 어렵다”라는 말이 있다고 들었다. 새로운 관점을 제기하면 받아들여지기 어렵다는 의식이 팽배한 것이다. 비슷한 이유로 논문 작성을 망설이는 학생들이 원하는 주제로 논문을 쓰도록 지원하고 장려하기도 했다. 여태까지 우리가 진리로 믿던 것은 얼마든지 틀릴 수 있다. 새로운 주장이라도 그것 나름의 논리가 있다면 얼마든지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다른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녹음기와 사진기가 각각 있는데도 스마트폰을 발명한 사람이 있었듯, 변화가 있어야 발전이 이뤄진다. 국악에서도 이러한 열린 마음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정년 소감에 대한 질문에 김 교수는 “그저 인생의 한 단계가 흘러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답했다. 담담하게 퇴임이라는 새로움을 받아들이는 그에게서 삶에 대한 깊은 애정과 겸허함이 느껴졌다.

사진: 이호은 기자 hosilver@snu.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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