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는 이들에게
떠나는 이들에게
  • 대학신문
  • 승인 2021.02.21 04:18
  • 댓글 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떠나는 이들에게 | 졸업생에 전하는 응원과 격려
주경철 교수(사회학과)
주경철 교수(서양사학과)

대학교를 졸업하고 새 출발을 하는 여러분들에게 축하의 말을 드립니다. 밝고 희망찬 시기가 아니라 암울하고 힘겨울 때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다는 게 안타깝지만, 오히려 여러분이 이 세상을 다시 아름답게 되돌려 놓을 과제를 부여받았다고 희망적으로 생각합시다. 사실 어느 때이든 세상은 녹록지 않았습니다. 편안하고 쉽게 살아갈 수 있는 호시절이란 건 아예 없다고 보면 됩니다. 그러니 시대를 탓하지 말고 과감하게 사회로 돌진해 가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우리나라 최고의 명문 대학을 졸업한 엘리트입니다. 그 점에 대해서는 자부심을 가져도 좋습니다. 여러분 선배와 동료들이 열심히 한 덕분이고 여러분들도 마찬가지로 그 좋은 전통을 이어가면 좋겠습니다. 물론 서울대를 졸업한 사람 중에 악당·불한당·사기꾼들도 많습니다. 그렇지만 여러분의 모교는 그런 ‘부작용’보다는 원래 의미의 ‘작용’이 더 컸다고 보아야겠지요. 여러분들은 학교 문을 나서는 지금의 그 순수한 열정을 가지고 우리 사회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 일조하리라 믿습니다. 그러니 사악한 이익, 너무 꾀죄죄한 일들, 자잘한 부스러기 같은 것들 탐하지 말고, 엘리트답게 더 멀리 보고 더 큰 일을 생각합시다.

명문 대학에서 공부 많이 한 엘리트로서 자부심을 가지랬지 헛된 자만심 가지라는 말은 결코 아닙니다. 사실 이제는 세상이 바뀌어서 어느 대학 졸업생이라고 무조건 믿고 높게 평가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서울대 나왔다더니 고작 그런 정도냐는 비난과 질책을 당할 가능성이 더 큽니다. 그리고 그런 말 하는 게 꼭 틀린 것도 아닙니다. 여러분은 자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는지 몰라도 세상의 평가는 냉정합니다. 좋은 대학 나왔다는 것은 단지 가능성을 확인했다는 정도지, 능력이 출중하다는 걸 보장해주지는 않습니다. 지금 당장 여러분들을 어느 회사에 데리고 가서 특정 업무를 하라고 하면 그저 무능력한 신출내기에 불과합니다. 앞으로 한참은 새로운 업무에 필요한 스킬들 익히느라 정신없을 겁니다. 제대로 실력 발휘하려면 더 많이 배우고 경험도 많이 쌓아야 합니다.

어쨌거나 대학교를 졸업했으니 이제 학창 시절 날밤을 새우며 했던 지겨운 책 읽기로부터는 해방인가요? 지금까지 해왔던 일들, 교과서 줄 치며 공부하고, 보고서 쓰고, 시험 보는 따위의 일들은 안 해도 되는 건가요? 맞습니다. 당분간은 그런 것 안 해도 됩니다. 그래서 더욱 해방감이 들 수도 있겠네요. 그렇지만 조만간 생각이 바뀔 겁니다. 자주 접하는 일이지만, 졸업하고 몇 년 후 만난 졸업생들이 다시 학교로 돌아가 공부하고 싶다는 말을 하곤 합니다. 이상한 일이지요? 하라고 할 때는 지겹다고 뺑소니치더니, 졸업하고는 누가 뭐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이제 정말로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고 그럽니다.

졸업은 공부를 완전히 끝내는 시점이 아니라 다른 의미에서 공부의 시작 시점입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기 스스로 필요해서 책을 찾아 읽을 때가 옵니다. 대학교에서 ‘지겨운’ 공부를 해야 했다면 선생의 한 사람으로서 미안하다는 사과의 말을 전하지요. 일부러 골탕 먹이려고 그랬던 것은 아니니 졸업하는 마당에 너그럽게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실 과제 내고 점수 받느라고 책 읽으면 세상에 그것만큼 재미없는 게 없습니다. 그냥 읽었다면 너무나도 흥미롭게 보았을 책도 숙제가 되는 순간 정나미가 뚝 떨어진다는 건 다 경험해 보았겠지요. 하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일단 입문은 시켜놓으려 했다는 점, 양해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그런데 이제부터는 학점과 상관없이 진짜 마음속에서 필요하다고 느껴 공부하게 됩니다. 그게 문학이 되었든 역사나 철학이 되었든 자연과학이나 예술, 혹은 사회과학이 되었든 자기 내면에서 원하는 방향으로 책을 찾아 읽을 테니 훨씬 흥미로울 겁니다. 그리고 지금쯤이면 자기가 무엇을 잘 알고 무엇이 부족하며 어떤 쪽으로 더 공부하면 좋을지 웬만큼 감이 잡히겠지요. 공자가 말했지요.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 그것이 아는 것이니라. (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 논어, 위정편)
 
꼭 전하고 싶은 바는 이것입니다. 앞으로 무슨 일을 하든 가장 중요한 것은 정신의 기본기라는 것! 쉽게 표현하면 읽기·말하기·듣기·생각하기 등입니다. 초등학교 때 들었던 너무 초보적이고 식상한 이야기로 들리나요? 그렇지만 단언컨대 이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앞으로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능력,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서 더 뛰어난 일들을 이루려면 반드시 갖추어야 할 기본 능력이 그런 것들입니다. 물론 최신 지식과 정보, 기술들이 당장 필요하다는 것도 분명합니다. 그렇지만 그 이전에 우리 정신 능력의 80~90%는 기본기에서 차이가 벌어집니다. 그렇다고 하면 사실은 ‘구태의연한’ 지식들이 가장 중요합니다. 텍스트를 잘 읽어 정확한 정보를 얻어내고, 다른 사람 의견을 잘 이해하고, 정확하고 합리적인 판단하고, 내 생각을 잘 정리해서 다른 사람들 설득하고 이런 종류가 두고두고 필요한 일들입니다. 더구나 실무적인 일을 하는 하위직이 아니라 상급직으로 올라갈수록 더 그와 같은 기본 능력이 필수적입니다. 우리나라 최고 회사의 CEO가 평생의 경험을 정리하여 내놓은 결론이 그랬습니다.

꼭 최고 직위로 올라가야 한다는 말을 하려고 했던 것은 아닙니다. 그보다는 여러분들이 품위 있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는 것이 원래 생각이었습니다. 우리 사는 세상을 살펴보세요. 예전보다 먹고 사는 형편은 분명 나아졌으나, 대신 너무 거칠고 황량해졌습니다. 바라기로는 여러분들 모두 수준 높은 지성과 멋진 감성의 향이 묻어나오는 인재였으면 좋겠습니다. 동시에 우리 사회가 조금이나마 더 아름다운 세상이 되도록 노력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 덧붙이고자 합니다. 앞으로 여러분들이 어느 분야로 나가서 어떤 일을 하게 될지 그것은 내가 알 수 없는 일입니다. 그렇지만 무슨 일을 하든 언제까지고 순조롭게 일이 잘 풀리기를 바랄 수는 없겠지요. 살다 보면 곤경에 빠질 수도 있고 인생 허망하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런 것 넘어서 의미 있게 한세상 살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한 번 생각해 보았습니다. 자신이 하는 일에 보람을 느끼고 성실하게 일해서 그 분야에서 일가를 이루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겠지요. 그런 노력을 마무리하는 일생의 걸작품(masterpiece)을 남겨보라고 권하고 싶네요. 그게 평생 바친 사업체일 수도 있고, 아름다운 한 편의 시일 수도 있고, 멋지게 지은 집일 수도 있고, 무엇이 되었든 열정을 바쳐 뭐 한 가지 세상에 남겼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다시 대학 시절로 돌아간다면 멋지게 잘할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면 바로 그런 의지로 지금부터 열심히 잘하면 됩니다. 대학 졸업이 아니라 인생을 졸업할 때, 그동안 내가 이것 하나는 이루어놓았구나 하는 무엇인가를 이야기할 수 있도록 말이지요.

교문을 나서는 여러분들, 힘차게 노 저어 나가세요!

주경철 교수(서양사학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2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졸업생2 2021-02-25 17:26:26
선생님 좋은 글 감사합니다. 지성과 감성이 잘 조화된 인재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졸업생 2021-02-21 16:11:08
주경철 선생님이 서양사학과가 아니라 사회학과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