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는 이들에게 | 졸업생에 전하는 응원과 격려

 

김주연(자유전공학부·19)
김주연(자유전공학부·19)

또 한 번의 계절이 지났습니다. 차가운 바람이 약간 누그러지면 설렘과 긴장이 공존하던 신입생 시절이 생각납니다. 꽃다발을 들고 입학식에 간 날, 버스를 타고 정문을 지나가던 시간들, 잔디에 누워 별을 보고 잔뜩 취한 채로 딸기 게임을 하며 웃던 날, 간지러운 짝사랑의 추억들. 물론 그 뒷면에는 씁쓸한 기억들도 있습니다. 수강신청을 망해 머리를 쥐어뜯던 날, 노력에 비해 아쉬운 성적을 받던 날, 사랑하는 이와 이별하고 믿었던 사람에게 상처받은 날. 자유와 새로움은 달콤했으나 문득문득 뱉고 싶은 아린 경험들도 찾아왔습니다. 인생은 초콜릿 상자와 같아서 무엇을 고를지 알 수 없다는 말은 대학 생활에 딱 맞는 말이었어요. 선배의 이러한 기억들은 이미 학교 곳곳에 녹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졸업을 축하합니다. 이 축하는 선배의 업적과 성취가 아니라, 추억과 삶에 보내는 것입니다. 몇 개의 계절을 보내며 당신의 기억들은 이미 무뎌졌겠지요. 처음 이곳에 발을 들인 설렘은 추억으로만 남을 뿐, 이제 느낄 수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당신의 기억들은 곳곳에 흔적을 남기고 전해집니다. 그 명확한 모양은 선배만이 간직하고 있겠으나, 뒤에 남은 이들은 그 흔적을 따라 때로 용기를 얻고 위로를 받습니다. 우리가 만난 날들을 기억하시나요? 저는 선배의 마음이 어떠했는지 정의 내릴 수 없지만, 선배가 당신의 삶을 사랑한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었습니다. 저를 모르고 제가 모르는 선배의 눈빛은 분명 단단하고 따뜻했습니다. 그런 당신에게 축하와 감사를 전합니다.

1학년이 저물어 가던 무렵, 러시아 문학을 가르치는 교수님께서 불현듯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이 있다’라는 이치를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때 배우던 대문호의 작품에 그 이치가 담겨 있었는지, 아니면 그것이 교수님의 인생을 통괄하는 신념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선배, 어쨌든 저는 아직도 그 말을 마음에 품고 있습니다. 무엇인가를 손에 쥐는 것은 곧 다른 어떤 것을 내 손에서 놓아주는 것이라는 말이요. 이제는 선배가 관악을 놓을 때가 다가왔습니다. 몸이 관악을 떠나지 않더라도, 선배는 졸업이라는 하나의 분기점 뒤에 놓인 시간들을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보낼 것입니다. 허나 잡아보지 못한 그리고 놓쳐버린 것들을 아쉬워하지는 마세요. 대신 선배가 잡았던 것들을 기억해주세요. 놓는다는 것은 결국 다른 것을 잡을 기회입니다. 이제는 서울대학교에서의 삶을 놓는 대신, 새로운 것을 잡을 수 있다는 설렘을 누리셨으면 좋겠습니다.

날이 갈수록 상자 속에 다양한 초콜릿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이 항상 달콤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것을 알려준 선배에게 꽃다발을 직접 안겨줄 수 없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지금은 학사모를 던지며 부둥켜안을 수 없지만, 선배의 새로운 출발점 뒤에는 많은 이들이 응원을 보내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주세요. 우리는 오래도록 서로를 기억할 것입니다.

이 학교가 선배에게 소중한 초콜릿 상자였기를 바라봅니다. 뒤돌아보지 않고 훌훌 떠나가되 마음이 좋지 않은 날이면 보관해둔 기억들을 꺼내 보세요. 선배가 정한 길을 따르되 가끔은 잔디밭에 누워 버려도 좋습니다. 마음을 울리는 강의를 들은 날, 수업을 제치고 벚꽃을 보았던 날, 사랑을 속삭이고, 쀽뺙이와 고양이를 만나고 버들골에서 짜장면을 비비며 막걸리를 마시던, 그리고 캠퍼스를 무작정 걸어보던 나날들을 떠올려 보세요.

겁내지 않고 발걸음을 내딛되, 입안 가득 쓴맛만 가득할 때면 리얼딸기라떼와 생크림 초코 와플을 맛보러 들러 주세요. 그럼 저는 여느 때처럼 자하연 앞 벤치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선배의 졸업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김주연(자유전공학부·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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