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 이 책 | 『새로운 가난이 온다』

4차 산업 혁명 시기로 접어들며 정규직 노동을 근간으로 하는 기존의 사회안전망이 위기에 직면했다. 불안정한 고용, 과잉 경쟁, 양극화 확대 등 사회 곳곳에서 위험 징후가 포착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또 다른 위기가 닥쳤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가 사회적 단절을 야기해 소외된 자들을 더욱 고립시킨 것이다. 『새로운 가난이 온다』의 저자 김만권은 위기에 위기가 겹친 이 시대를 분석하며 ‘위기에 뒤로 남겨지는 사람이 없도록’ 연대의 가치에 기반해 분배의 틀을 바꾸자고 제안한다.

알파고 쇼크, 특이점이 도래하다

2016년 인공지능 ‘알파고’와의 바둑 대국에서 이세돌 9단이 충격적인 패배를 당했다. 조용히, 그러나 폭발적인 속도로 발전한 인공지능 기술을 전 세계가 목도하는 순간이었다. 

인공지능 기술을 필두로 한 4차 산업 혁명의 눈부신 성과에 힘입어 세계는 특이점으로 진입하고 있다. 특이점으로의 진입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제1 기계 시대’라고 불리는 1, 2차 산업혁명 역시 인간이 과거에 경험한 특이점이다. 오늘날 4차 산업 혁명 시대, 즉 ‘제2 기계 시대’를 맞아 사람들이 인공지능으로부터 우리의 일자리를 지킬 수 있을지 의문을 던지는 것도 처음 경험하는 일은 아니다. 제1 기계 시대를 산 사람들 역시 기계의 도입을 우려하는 시선을 던졌었다. 다행히 당대 노동자들의 걱정과는 반대로 기계는 새로운 일자리를 대량으로 창출했고, 높아진 생산력은 임금 상승으로 이어졌다. 그 결과 20세기 중반부터 인류는 역사상 유례 없는 풍요를 누리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제2 기계 시대에서도 낙관적인 변화를 기대할 수 있을까?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설명한다. 생산량의 증대에 따른 고용 창출 효과가 과거만큼 크지 않고, 새로 창출되는 일자리가 충분한 소득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큰 문제는 전통적인 제조업 분야의 정규직 일자리가 대거 사라지고 그 자리를 디지털 기술을 기반으로 한 플랫폼 경제 분야의 비정규직 일자리가 차지하게 된다는 점이다.

변화한 자본주의의 병폐를 드러내다

플랫폼 노동을 활용한 심야 배송과 새벽 배송 등의 서비스를 시작하며 사업을 공격적으로 확장한 쿠팡은 ‘언택트 특수’를 누리며 2020년 매출이 전년 대비 2배 가까이 증가했다.

같은 해 3월 과로에 시달리던 쿠팡 배송 노동자가 새벽 업무 도중 사망했다. 5월, 6월, 그리고 올해 1월에는 쿠팡 물류센터에서 근무하던 노동자가 연달아 사망했다. 비인간적인 근무 환경과 기업 측의 무책임한 대응이 밝혀지며 큰 논란이 일었다. 

쿠팡의 모순된 모습은 저자가 지적한 제2 기계 시대 자본주의의 중대한 문제 두 가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첫 번째 문제는 심각한 불평등이다. 자동화와 세계화로 인류는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부를 거머쥐게 됐다. 그러나 그 과실은 공평하게 분배되지 않았다. 제2 기계 시대는 디지털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을 나누고, 전자 중에서도 극소수에게만 그 혜택을 집중시킨다. 

두 번째 문제는 사회안전망에서 소외된 노동 형태의 등장이다. 쿠팡맨, 배민 라이더스, 타다로 대표되는 플랫폼 노동은 개인이 기업에 소속되지 않고 플랫폼을 통해 연결된 고객에게 직접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정규직 노동과 대비된다. ‘공유 경제’라는 말로 포장된 플랫폼 경제는 겉으로 보기에는 이상적이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플랫폼 노동자는 기업에 소속되지 않아 독립 사업자로 분류된다. 그렇기에 이들은 높은 노동 강도에도 불구하고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분배 과정과 사회안전망에서 배제된 자들은 ‘보이지 않는 자’로 전락하기 쉽다. 저자는 이들이 단순히 저소득과 고용 불안에 시달리는 것을 넘어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고 말한다.

재난지원금, 새로운 분배의 틀을 보여주다

지난해 3월, 코로나19로 줄어든 가계소득을 보전하고 경기 침체를 해소하기 위한 전 국민 재난지원금이 최초로 지급됐다. 정치권에서는 기본소득을 둘러싼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제1 기계 시대에 정립된 분배와 보호 장치는 제2 기계 시대의 보이지 않는 자들을 포용하지 못하고 있다. 결핍의 시대였던 제1 기계 시대와 달리 제2 기계 시대는 풍요의 시대다. 새 시대에 맞는 새로운 분배 기준이 필요하다. 누구나 노동을 통해 제 몫을 찾아갈 수 있었던 과거와 달리 노동을 하고 싶어도 노동을 할 자리가 없는 오늘날, 더는 노동을 분배의 기준으로 삼을 순 없다. 저자는 기계가 인간 노동을 빠르게 대체하는 시대인 지금, 노동에 내재한 생존의 수단이라는 본성을 재정립하자고 제안한다. 분배의 기준을 노동 밖에서 찾자는 것이다. 

코로나19 국면에서 지급된 재난지원금은 기본소득 논의에 불을 지폈다. 기본소득은 제2 기계 시대에 가장 적합하다고 여겨지는 탈노동적 분배 방식이다. 노동의 여부를 떠나 정치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조건만으로 파이를 나누자는 발상에서 탄생했다. 비슷한 제도로 기초자본이 거론되고 있다. ‘로봇세’와 ‘구글세’ 등 변화한 자본과 노동의 성격에 적합한 조세 제도를 만들어 분배의 재원을 마련하자는 논의도 함께 진행 중이다. 

결국 저자의 논의는 연대에 대한 호소로 귀결된다. 기계가 일하고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시대에 능력주의적 경쟁은 더 많은 ‘배제된 자’를 양산할 뿐이다. 평범한 다수에게 필요한 것은 능력주의 윤리가 아닌 연대의 윤리이다. 연대의 윤리를 바탕으로 배제된 자들을 위한 보호막을 세울 때 기술 혁명과 팬데믹이 불러온 위기를 극복하고 평범한 자들의 존엄을 회복할 수 있다.

『새로운 가난이 온다』가 전하는 연대의 메시지는 어찌 보면 식상한 이야기지만, 그럼에도 연대의 의미를 곱씹어 봐야 할 이유는 명확하다. 우리는 위기 속에서 도움의 손길을 갈망하면서도, 마찬가지로 애타게 도움의 손길을 찾는 자들을 외면하지는 않았던가? 제2 기계 시대가 빚어낸 거대한 계층의 피라미드에서 다수의 평범한 사람은 배제된 사람이거나 배제의 문턱에 선 사람이다. 피라미드에서 떨어지지 않게끔 손을 마주 잡기보다는 타인을 발판 삼아 피라미드에서 버티려 하지 않았냐는 물음에 떳떳할 수 있는 사람은 적다. 때문에 “위기에 뒤로 남겨지는 사람들이 없도록 하라”라는 저자의 마지막 말은 묵직한 울림을 준다.

(『새로운 가난이 온다』, 김만권, 276쪽, 혜나, 2021년 1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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