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기 교수(융합기술대학원)
신영기 교수(융합과학기술대학원)

이번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대유행에서 놀라운 일은 작년 1월 코로나19 유전체 염기서열이 공개된 후 단 11개월 만에 백신의 긴급 사용이 허가된 점이다. 인간유두종바이러스와 로타바이러스 백신이 각각 15년, 소아용 혼합백신이 11년씩 걸렸던 것을 고려하면 1년도 안 돼 백신 접종이 이뤄진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혁신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첫째, 꾸준한 학술연구와 백신 개발 경험이 개발 기간을 2년 단축했다. 사스와 메르스의 종식 이후에도 코로나바이러스 연구는 계속돼 스파이크 단백질과 폐포세포 표면 특정 수용체의 상호작용을 통한 감염 기전이 파악됐고, 이를 이용한 면역 반응이 감염을 예방한다는 가설이 수립됐다. 이틀 만에 백신 항원이 디자인됐고, 약 열흘간의 DNA 생산과 약 2개월간의 임상 시험용 백신 생산이 중단 없이 진행되는 한편, 임상 프로토콜의 수립은 놀라운 속도로 임상 시험에 진입하는 밑거름이 됐다. 그 결과 미국 국방고등연구계획국이 지원한 생물 방어용 백신으로 여러 차례 연습한 모더나는 지난해 2월 25일에 RNA 백신(mRNA-1273) 임상 시험 개시를 허가받고, 3월 16일 건강한 사람에게 첫 번째 접종을, 3일 후 임상 시험 대상자 45명 모집을 완료했다.

 둘째, 규제 당국은 ‘대유행 속도’에 맞춰 위험을 감수하고 임상 시험을 허가해 백신의 출시를 6년 앞당겼다. 이 변형된 형태의 임상 시험 허가는 임상 1상이 끝나기 전에 2상을, 2상이 끝나기 전에 3상을 연속으로 진행하는 방식이다. 수만 명이 참여해야 하는 백신의 임상 3상은 참가자들이 자연스럽게 바이러스에 감염될 때까지 기다리게 되는데, 이번에는 바이러스 대유행 지역에서 감염 노출이 높은 참가자들이 임상에 참여해 임상 시험 기간이 혁신적으로 단축됐다. 의약품 허가 과정은 안전성 및 유효성 검증 과정에 내재된 불확실성을 해소하는 것으로, 일반적으로 각 임상 시험 단계는 규제 당국의 허가를 거쳐 다음 단계로 진행된다. 하지만 코로나19 대유행 상황에서는 속도 혁신이 관건이었다. 얼마나 빨리 이 불확실성을 해소할 수 있는가가 중요 포인트였기 때문에 위험 감수의 수준, 윤리적 이슈의 고려 정도 등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빠르고 투명하게 합리적으로 이루는 것이 실제 중요한 문제였다. 대유행 속도 임상 시험 반대론자들은 과거 뎅기열 백신을 접종한 후 뎅기바이러스에 감염되면 뎅기열 증상이 더 악화하는 뎅그박시아 사례를 언급했으나, 미국 국립과학아카데미 토론회에서 과학자들은 이런 미지의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코로나19 백신의 대유행 속도 임상 시험을 주장했다.

 셋째, 백신 개발의 성패가 불투명했음에도 개발 시작단계부터 대량 생산을 준비해 백신의 출시를 6년 단축했다. 백신은 다른 의약품 제조와는 다르게 대규모의 공장이 필요하며, 공공재 성격이 강해 고가의 약값 책정이 어렵다. 따라서 백신 공장에 대한 선투자는 제약사에게는 큰 부담이다. 하지만 이번 대유행에서는 선진국들의 백신 선 구매와 각국 정부의 연구 개발 비용 직접 지원 등 제약기업들에 대한 개발 인센티브 부여로 제약사들의 백신 공장에 대한 이례적인 선 투자가 이뤄졌다. 미국의 경우 ‘초고속 작전’ 프로그램을 통해 정부와 민군이 합동으로 11조 원 이상을 조달해 8개의 회사에 파격적인 지원을 했고, 모더나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2조 5천억 원 이상의 자금을 지원받았다. 이는 선진국들이 “신규 전염병 출현 시 민간회사들의 적극적 백신 개발을 유도할 경제적인 인센티브를 어떻게 줘야 할까?”라는 질문에 고민하고 있음을 보여준 변화다.

 많은 사람이 코로나19의 변종을 걱정하고 있다. 하지만 백신 개발자들은 속도의 혁신을 통해 이미 코로나19 변종에 대한 새로운 백신의 생산 및 임상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이번에는 11개월이 아니라 3, 4개월 내 긴급사용 승인을 받게 될 것이다.

 현시점에서 우리가 접종받을 백신은 효능 면에서 개인이 감염돼 입원하거나 사망할 확률은 크게 낮추지만, 집단 내 전파 가능성을 낮춘다는 임상적 근거는 아직 갖지 못한 상태다. 백신을 접종받고도 마스크 착용과 사회적 거리 두기는 당분간 지속될 듯하다. 하지만 백신 접종을 학수고대하며, 사회적 거리 두기와 거리를 두게 될 날만 손꼽아 기다린다.

신영기 교수(융합기술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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