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숙사에서 학교로 갈 때마다 가슴을 턱 막히게 하는 고민이 있다. “내가 휠체어를 타고도 이 길을 갈 수 있을까?” 휠체어로는 기숙사삼거리 앞 계단으로 갈 수 없으니, 환경대학원이나 버들골로 우회해야 할텐데, 어느 쪽이나 크게 돌아가는 길인데다가 울퉁불퉁하고 가팔라서 이동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사실 휠체어 이동은 서울대 전체에서 어렵다. 당장 학생회관에서 관정관 넘어가는 길이나 자하연 식당 올라가는 길에도 경사로는 없다. 지형 자체가 워낙 언덕진 탓이라는 것도 변명에 불과하다. 그 한계를 보완할 저상 셔틀버스 도입은 묵살되고 있고, 장애학생 이동지원차량도 고작 1대뿐이니 말이다. 본부가 장애인의 존재 자체를 무시하고 있다고 볼 수 밖에 없다.

그런 본부에 화가 난다. 하지만 동시에 “정작 학생사회는 배리어프리 보장을 위해 무엇을 했나?” 하는 생각도 든다. 장애 인권 보장 요구에 얼마나 적극적이었는지는 몰라도, 할 수 있는 것조차 안 해왔으니 말이다. 회의를 속기하면서도 그를 청각장애인을 위해 실시간 공유하는 경우는 드물다. 카드뉴스는 범람하는데 시각장애인을 위한 대체텍스트가 함께 제공되는 경우도 손에 꼽는다. 불특정 다수가 참석하더라도 대면행사 대부분은 휠체어 접근성을 고려 않는다. 학생사회도 카드뉴스를 읽고 회의와 행사에 참석할 ‘학생’은 비장애인으로 전제하고 있는 것이다.

자연스레 장애인은 서울대란 공동체에서 철저한 배제를 경험한다. 누군가는 “얘기하면 배려해 주지”라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얘기해도 배려 않는 경우가 허다한 현실이다. 또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차별을 경험해 온 이들에게 장애를 스스로 드러내란 요구는 도움을 안 주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그것은 온 사회가 비장애인 중심으로 구성됐다는 근본 문제를 묵과한 채 개인의 노력과 시혜적 도움만으로 문제를 해결하라는 편협하고 순진한 생각이다. 장애인을 배제하는 사회적·물리적 구조 자체를 재구성해야 한다.

물론 이 상황이 학생사회와 본부만의 책임은 아니다. 이미 온 사회가 비장애인을 중심으로 구성돼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런 한계를 핑계 대는 대신, 그 한계 내에서라도 변화를 만들고, 나아가 그 한계 자체를 두들겨야 한다. 대체텍스트 제공, 속기의 실시간 공유, 배리어프리한 공간에서 공식 행사 진행 등은 학생사회의 힘으로 충분히 가능하다. 나아가 학생사회가 할 수 있는 일들의 한계를 그어놓은 본부와 사회에 변화를 촉구해야 하며, 당연히 본부도 재정 핑계를 멈추고 현 재정 내에서 또 국가에 지원을 요구해서 배리어프리한 환경을 구축해야 한다. 그렇게 변명과 외면을 멈추고 진짜 행동에 나설 때,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차별하지 않는 공동체가 가능해질 것이다.

 

변현준

사회학과·20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