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정당방위의 인정 실태와 문제점

지난달 18일 ‘56년 만의 미투’라고 불리는 ‘최말자 씨 사건’에서 법원은 최말자 씨의 재심 청구를 기각했다. 1964년 최말자 씨는 자신을 성폭행하려던 남성의 혀를 깨물어 1.5cm가량 절단해 중상해 혐의로 구속됐다. 정당방위는 인정되지 않았다. 지난해 최 씨는 여성단체와 함께 이 사건에 대해 정당방위를 인정해달라며 재심을 청구했으나 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실제로 대법원의 판례에서 정당방위를 인정한 것은 형법 60여 년의 역사상 단 14번에 불과하다. 『대학신문』은 우리 형법에서 정당방위가 협소하게 인정되는 실태와 이로 인한 문제점이 무엇인지 살펴봤다.

정당방위 그 실체와 뿌리는?

정당방위는 위법한 행위에 의해 공격받는 급박한 상황에서 방어 행위를 통해 법익을 수호할 권리다. 형법 제21조 제1항은 정당방위를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부당한 침해를 방위하려는 행위는 상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는 벌하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한다. 현재 정당방위의 정당화 근거는 ‘자기 보호 원칙’과 ‘법질서 수호 원칙’을 합친 이원론이 지배적이다. 양천수 교수(영남대 법학대학원)는 “두 원칙 중 법원은 형사 사법 체계의 한계를 보완할 법질서 수호 원칙을 더 중시한다”라며 “그간 공동체주의 법문화의 영향으로 정당방위를 상당히 제한적으로 인정해왔다”라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법질서 수호 원리를 자기 보호 원리보다 지나치게 중시하면 정당방위의 인정 범위가 협소해진다고 지적한다. 하민경 교수(가톨릭대 법학과)는 “전체 법질서를 수호하자는 임무를 우선시하면 정당방위의 도입 취지에 반하는 상황이 발생한다”라며 “긴급 상황에서 국가가 개인을 보호할 수 없으므로 정당방위를 인정하자는 것인데, 이 범위를 협소하게 판단하면 위급 상황에 대처할 권리가 축소되기에 다소 모순적”이라고 짚었다. 김성규 교수(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는 “판례는 오로지 방위의 의사만으로 행해진 경우만 정당방위라 생각하는 것으로 보인다”라며 “‘최선의 수비는 공격’이라는 말처럼 실효적인 방위행위와 공격행위의 구별이 쉽지 않다”라고 밝혔다. 

한편 한국의 정당방위가 법질서에 의해 과도하게 제한되는 근본적인 원인을 일본 형법의 영향에서 찾는 관점도 있다. 신동일 교수(한경대 법학과)는 “일본 형법은 국가 형벌권을 우선적 질서로 간주하는 권위주의적인 면모를 보인다”라며 “우리 형법은 1953년 일본 형법을 참고해 정당방위 규정을 수용했기에 일본과 비슷하게 통제적인 성격을 띠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 교수는 “개인의 정당방위권 행사에 국가가 과도하게 개입하는 상황은 우리 형법에 잘못 새겨진 규범의 잔재”라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상당성 요건 판단 모호해

실정법에 정당방위 조항이 명시돼 있지만 법원이 실제 형사 사건에서 정당방위를 인정하는 경우는 드물다. 법원은 주로 방어자의 행위가 공격 방어에 적절했다는 ‘상당성 요건’이 충족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정당방위 주장을 기각해 왔다. 김성규 교수는 판례가 상당성을 “방위에 필요한 한도 내의 행위로서 사회 윤리에 위배되지 않는 경우”로 규정한다고 설명했다. 이때 상당성 요건의 충족 여부는 온전히 법원의 해석에 달렸다. 문제는 사안마다 법원의 해석이 달라져 판결에서 정당방위가 인정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1992년 십여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의붓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한 피고인이 의붓아버지를 살인한 사건에 대해 법원은 현재성 및 상당성 요건 미충족을 이유로 정당방위를 인정하지 않았다. 양천수 교수는 해당 판결을 두고 “법원은 살인이 벌어진 바로 그 순간에 의붓아버지에 의한 위법한 침해가 존재했다고 보기 어려워 현재성이 없다고 판단한 것”인 동시에 “피고인의 성적 자기 결정권보다 의붓아버지의 생명을 더 중시해 상당성 요건 또한 충족하지 않았다고 해석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피고인이 성폭행으로 침해당한 성적 자기 결정권보다 피고인이 해친 생명권이 더 중요하므로 피고인의 행위를 ‘상당한 방어’로 볼 수 없다는 판결이다. 한편 최근 법원이 재심 기각 결정을 내린 최말자 씨 혀 절단 사건 역시 1965년 판결 당시 비슷한 이유로 정당방위를 인정받지 못했다. 양 교수는 “법원은 성적 자기 결정권보다 혀라는 신체의 완전성을 더 중요한 법익으로 판단해 최말자 씨가 성폭행을 시도하는 남성의 혀를 절단한 행위가 상당성을 결여했다고 본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상당성 요건에 대한 법원의 해석 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 신동일 교수는 “법원은 ‘상당한 때’에 대한 판단을 자체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윤리적 요소라 오해하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신 교수는 “형법은 윤리의 강제 규범이 아니며 누구도 어떤 가치가 우월하다고 말하기 어렵다”라며 사회윤리적 규범으로 정당방위를 제한하는 실태를 비판했다. 상당성 요건에 대한 해석과 판단이 객관적이지 못한 전통 법문화의 영향을 받았다는 지적도 있다. 하민경 교수는 법원이 “상당성을 사회 통념으로 대체함으로써 모호한 개념에 근거해 정당방위를 부정하는 오류를 범했다”라고 지적했다.

지금처럼 정당방위를 매우 협소하게 인정하면 국가의 보호를 받지 못한 상황에서 국민은 안전을 적극적으로 수호할 수 없다. 방어 행위를 한 피해자가 도리어 가해자로 처벌될 가능성이 있으며 타인의 법익 침해를 목격한 개인이 당사자를 적극적으로 돕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 신동일 교수는 “정당방위를 행사하는 상황이 국가의 치안 확보가 다소 미흡함을 보여줌에도 국가가 국민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듯한 태도가 아쉽다”라고 전했다. 

정당방위 인정 탄력적인 접근 필요

전문가들은 정당방위 조항에 대한 적절한 해석을 통해 적용 범위를 넓힐 것을 제안한다. 일각에서는 법문화의 변화에 따라 정당방위를 더욱 적극적으로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양천수 교수는 “미투 운동을 계기로 성적 자기 결정권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듯, 법이 적용되는 상황을 둘러싼 개인의 인식은 꾸준히 변하고 있다”라며 변화한 법문화에 맞춰 정당방위를 적용할 것을 촉구했다.

법적 사례를 유형화해 상당성 요건의 모호함을 일부 해결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양천수 교수는 “상당성 조건과 관련된 문제를 입법으로 해결하기에는 한계가 있기에 형법학자의 노력으로 법을 최대한 엄밀하게 해석하려는 시도가 필요하다”라며 상당성 요건 충족에 해당하는 사례를 꼼꼼하게 유형화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하민경 교수는 논문 「국민 참여 재판 사건을 통해 본 정당방위 판단기준 분석」에서 “정당방위권의 본질에 부합하고 변화하는 법문화를 반영하기 위해서는 구체적 사실관계에서 방위행위자의 개인적 요소를 상황적 요소와 대등하게 고려하는 해석정책이 만들어져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정당방위에 대한 법원의 소극적인 태도는 변화된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는 처사로 읽힌다. 이제 새로워진 사회적 환경을 토대로 정당방위 조항의 해석을 이전보다 명확히 해야 할 시점이다. 법문화가 개선돼 자기 자신을 지키고자 노력했던 사람들이 정당한 보호를 받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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