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다경 부편집장
이다경 부편집장

많은 이들이 그렇듯 나도 눈만 껌뻑대던 아기였고, 빛나는 어린이였다. 짜증이 많던 사춘기 청소년이었고, 지금은 약간 찌질한 청년이다. 빛나는 어린이 시절에는 즐겨 읽던 위인전 시리즈 탓인지, 예수나 부처같이 무조건 훌륭한 사람이 돼야만 할 것 같았다. 머리가 조금 크고서 사귄 재미는 없지만 개구진 친구가 자꾸 “왜 태어났냐” 따위의 질문으로 귀찮게 하면서 내 머릿속에는 “왜 사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떠다니기 시작했다. 찌질한 청년이 된 지금은 부처나 예수가 되기는 굉장히 힘들다는 것은 알아버렸지만, 왜 사는지는 여전히 궁금하다. 허무한 물음일 수 있지만, 톨스토이도 이에 대해 꽤나 진지하게 고민하고, 책도 썼지 않나. 

얼마 전 읽은 테드 창 작가의 SF 단편선 『당신 인생의 이야기』(Stories of Your Life And Others) 중 첫 번째 소설이 떠오른다. 성경에 나오는 바벨탑을 소재로 하는 <바빌론의 탑>(Tower of Babylon)이라는 제목의 단편이다. 성경에서는 야훼가 천국에 손을 뻗으려 하는 인간들의 오만함에 화가 나서 바벨탑 건설을 방해해 중단됐다. 작가는 이 이야기를 변형했는데, <바빌론의 탑> 속 인간들은 높디높은 탑을 결국에 쌓아올렸고, 성취한 인간은 세상 끝 천장을 뚫어 눈부신 빛을 만나게 된다. 다만 빛이 사라지고 모습을 드러낸 것은 출발했던 대지였다. 세상은 원통형이어서 하늘의 천장이 대지 바로 밑에 있었고, 서로 닿아있었던 것이다. 기대하며 노력하고 노력해도 결국 출발점으로 돌아가게 되는 이러한 인생은 참 허망해 보인다. 

지금은 고등학생이 돼버린 막내 동생이 일곱 살 때, 엄마는 그가 뭔가를 바랄 때마다 “8살이 되면할 수 있을 거야”라고 얘기해주곤 했다. 그래서 내 동생은 열심히 자고, 열심히 일어났다. 바야흐로 1월 1일, 드디어 여덟 살이 된 채로 잠에서 깨어난 동생은 엉엉 울어버렸다. 마법 같은 것이 일어나 인생이 놀라울 정도로 바뀔 것이라 잔뜩 기대했건만, 일곱 살이었던 어제와 달라진 것이 아무것도 없었던 것이다. 

사실 이런 허망한 움직임들은 ‘일상’으로 불린다. 오늘 일어났는데, 또 잠을 자고, 또 일어난다. 분명히 월요일을 지나왔는데, 또 월요일이다. 해가 자꾸 뜨고 진다. 한 해를 죽어라 살면 다음 해가 온다. 분명히 저번 주에도 기사를 쓰고 조판을 하고, 그 알싸한 냄새가나는 신문을 만들었던 것 같은데, 이번 주에 또 만들고 있다. 그리고 사후에 어떤 세계가 펼쳐진다면, 죽고 나서도 또 다른 삶은 다시 한 번 살아내야 하지 않나. 

그래서 나를 ‘우주 먼지’라고 생각하는 것을 좋아한다. 비슷한 나날들 속을 거닐며 느끼는 권태나 부담을 견딜 수 있게 해주는 단어다. 여느 우주 과학 도서에서 볼 수 있듯이 우주는 우리를 중심으로 돌지 않고, 관측 가능한 별의 수만 10의 24승개나 된다. 이미 천문학자들은 다른 태양계에서 3,000개가 넘는 행성을 발견했다. 생물 종도 500만에서 1,000만으로 추정된다고 하는데, 이에 비춰보면 우주 먼지라는 호칭도 내겐 과분하다.

아직 찌질한 청년일 뿐이지만, 앞으로 남은 허망한 세월을 다른 우주 먼지 친구들과 겸손하고 심각하지 않게 부유하다가 가볍게 훌쩍 떠나는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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