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정신없던 작년 연말 ‘서울대 인권헌장’(인권헌장)과 ‘대학원생 인권지침안’을 홍보하는 현수막이 학생회관에 걸렸다. 작년 인문대 대학원생 인건비 횡령 사건, 음대 모 교수의 성추행 사건을 기억하는가? 한 해 수면 위로 올라온 사건들만 저 정도라면 우리의 시선 밖에서 잠자는 서울대의 치부는 어느 정도일지 감히 예측하기 망설여진다. 앞선 사건들의 파장을 고려할 때, 인권헌장 제정의 필요성은 명백하고 절실해 보였다.

하지만 나의 시선을 끈 것은 따로 있었다. 지난해 10월, 인권헌장의 제3조 차별금지와 평등권 항목에 반대하는 ‘진정한 인권을 위한 서울대인 연대’(진인서)의 입장문이 학내 게시판에 올라왔다. 입장문은 “‘서울대 인권헌장’은 전통적인 가족개념의 해체를 초래하는 무모한 실험이고, 이를 강행할 시 동성애 문제의 올바른 해결은 요원해질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이에 곧바로 성 소수자 동아리 Queer In SNU, 인권헌장 학생추진위원회가 대자보를 통해 “앞선 혐오세력의 입장문은 차별을 계속하겠다는 선언에 지나지 않으며, 상식의 부정은 퇴보를 가져올 뿐”이라는 입장을 전했다. 이후 진인서가 다시 대자보를 붙이고 어느 학우가 가림막을 설치하는 등 막후가 있었던 듯하다.

서울시장 보궐선거판에서 퀴어축제 논란이 가열되는 요즈음, 교내 인권헌장 논쟁의 연장 선상에서 여러 생각이 피어난다. 본인은 열렬한 인권운동가는 아니나 개인은 자신의 성적지향을 따를 자유를 보장받아야 한다는 입장이고, 인권헌장은 해당 권리를 명문화한다는 점에서 가치 있다 생각한다. 하지만 ‘대자보 사건’은 양측 모두에게 고개를 갸웃거리게 했고, 교내 인권 논의가 얼마나 폐쇄적인 양상인지 보여줬다. 

특정 권리와 자유를 보장받는다는 사실이, 해당 신념을 모두에게 강요할 권리를 의미하는가? 전자는 자유를 소극적으로 인정하는 것이지만 후자는 더욱 적극적인 사회정의로 발돋움하는 것을 의미한다. 자신에게 당연한 사실도 누군가에게는 아닐 수 있다. 특히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사안일 경우 생각이 다르다고 섣불리 ‘시대착오적이고 저열하다’라고 매도하는 것은 지양해야 하지 않을까. 스테판 에셀이 『분노하라』에서 선언한 구절을 잊지 말자. “세계인권선언에서 말하는 자유란 닭장 속의 여우가 제멋대로 누리는 무제한의 자유가 아니다.” 더 나은 공동체를 만들고 싶다면, 반대 측을 무작정 배척할 일이 아니라 자신의 진영으로 끌어당겨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편안한 대화의 문이 열려있어야 할 것이다.

고서영

동양사학과·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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