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 예술인 고용보험을 통해 본 예술인의 노동과 고용 현실

지난해 12월 10일부터 시행되기 시작한 ‘예술인 고용보험’의 가입자가 총 15,999명(일반 예술인 11,288명, 단기예술인 4,711명)에 이르렀다. (2021. 02. 26. 기준, 고용노동부 발표) 예술인 고용보험은 근로관계가 성립되지 않아 기존의 근로자 고용보험 가입 대상이 되지 못했던 예술인에게 사회적 고용 안전망을 제공하기 위해 도입한 제도다. 그러나 많은 예술인에게 해당 제도가 생소하고, 혜택을 받지 못하는 예술인도 많아 잡음이 계속되는 상황이다. 『대학신문』은 예술인 고용보험을 둘러싼 예술인의 목소리를 듣고 문화예술계의 고용 현실을 실질적으로 개선할 방안을 짚었다.

예술인 고용보험 그게 뭔데?

예술인은 명백한 노동자임에도 타 분야 종사자보다 근로 계약을 정당하게 체결하고 고용을 안정적으로 보장 받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18 예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가운데 예술 활동 관련 서면 계약을 체결한 경험이 있다고 답변한 비율은 37.3%에 그쳤다. 이를 해결하고자 정부는 문화 예술 분야별 표준 계약서를 보급하고 2016년 5월에는 ‘예술인 복지법’을 개정해 서면 계약을 의무화했다. 예술인 고용보험의 시행은 이런 예술인의 안정적인 고용을 지원하겠다는 정부 정책 기조의 연장선에 있다.

예술인 고용보험은 문화예술 용역 계약을 체결하면서 자신이 직접 노무를 제공하는 예술인(단기예술인 포함)을 대상으로 구직 급여와 출산 전후 급여를 보장하는 사회보험이다. 65세 이후 신규 가입자와 월평균 소득 50만 원 미만인 자를 제외하고 예술인과 사업주가 예술인의 보수를 기준으로 각각 0.8%씩 보험료를 부담한다. 보험 가입 시 이직일 이전 24개월 동안 피보험기간이 9개월 이상이면 기존 보수액의 60%를 구직 급여로, 출산일 전 피보험단위기간이 3개월 이상이면 기존 보수액의 100%를 출산 전후 급여로 보장받을 수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예술정책과 도현덕 서기관은 “다수의 사업장에서 계약을 체결할 경우 예술계의 특성을 고려해 사업장마다 고용보험에 가입할 수 있도록 하고, 소득이 감소한 탓에 이직할 때도 구직 급여를 받도록 조치를 취했다”라고 설명했다.

예술인 정책 예술인과 정부의 동상이몽

하지만 정부의 기대와 달리 예술계 종사자들은 예술인 고용보험의 실효성이 없다고 주장한다. 고용보험을 적용하기 전에 예술인 고용 정책을 먼저 수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현장에서 근무하는 예술인들은 안정적인 고용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공연예술인은 하루 몇 시간의 공연을 위해 긴 시간을 연습해야 하지만, 이 기간은 계약서상 노동시간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고용보험의 혜택을 받더라도 생계유지가 힘든 이유다. 극단 ‘벼랑끝날다’의 박준석 배우는 “예술인의 고용 건수 자체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와중에 고용보험이 만들어지니 순서가 뒤바뀐 듯하다”라며 “정부 소속의 문예회관이나 극장에 기술·행정직만 고용하고 예술가를 직접 고용하지 않는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연극인 복지연구소 정안나 대표는 “국내 예술인 고용보험의 모델이 된 프랑스에는 예술가가 고용보험이나 저작권 문제에 주체적으로 대응하도록 예술인의 권익 보호를 담당하는 단체가 존재한다”라며 “우리나라도 창작자 지원이 탄탄하게 뒷받침돼야 고용보험이 효력을 발휘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용보험의 혜택이 모두에게 돌아가고 있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올해 고용노동부 발표에 따르면 예술인 고용보험 가입자의 직종 분야는 △연예(24.7%) △미술(20.7%) △영화(13.5%) △문학(7.7%) 순으로 나타났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장기간 공연이 중단돼 예술 활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기가 어려워져, 음악·연극·국악 등 공연 예술 분야의 피보험자 비중이 적어진 결과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현장소통 소위원회 이건명 민간위원은 “예술인 고용보험의 과정과 결과 모두 현장에서 일하는 예술인의 사정을 완전히 담아내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있다”라며 “정책이 예술계의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해 소외되는 예술인이 생길 가능성이 크다”라고 말했다.

계약을 체결하지 않고 개인 작업을 하거나 용역 계약에서 계약서를 선뜻 요구하기 힘든 예술인이 많은 점 역시 문제다. 개인 작업실에서 그림 수업을 열면서 방과 후 미술 강사로 활동하고 있는 일러스트레이터 단단 씨는 “수입이 일정하지 않아 매달 나가는 보험료 지출 자체가 부담스러워 보험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못했다”라며 “예술인 중에서는 계약서로 수입을 증빙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라고 말했다.

예술인의 노동이 인정받는 사회가 되려면

정부가 예술인 고용보험을 도입하면서 늘어난 행정 처리에 충분히 대비하지 못했다는 평가도 있다. 보험 의무화에 따라 행정 처리 부담이 상당한데도 정부가 이를 민간에 떠넘긴다는 지적이다. 정안나 대표는 “극단에 있는 예술인 모두와 개별 계약을 맺어 일일이 신고하는 과정이 굉장히 번거롭다”라며 “월평균 소득 50만 원 미만의 계약 건에 대해서는 예술인이 직접 계약 체결 사실을 알리고 보험을 신청해야 하는데, 이 과정도 너무 복잡하다”라고 호소했다. 효율적인 행정 처리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예술인 고용보험이 제대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우선 정부가 예술인과 꾸준히 소통하며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 적용 대상을 넓혀 문화예술계 종사자들을 폭넓게 포괄하고 직종마다 구체적인 조항을 신설할 필요가 있다. 이건명 위원은 “고용보험을 시행하는 기관은 예술 현장의 언어를 이해하며 이질감을 상쇄해야 하고, 예술인은 능동적인 예술생태계를 만들기 위해 열린 마음으로 제도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라고 제언했다. 도현덕 서기관은 “근로복지공단 내에 예술인 고용보험 전담 부서를 운영 중이며 한국예술인복지재단에도 문화예술 용역 서면 계약 관련 상담 절차가 마련돼 있다”라며 “향후 관련 기관과 수시로 협의해 문화예술용역 운영지침서에 반영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예술인의 노동과 권리를 보장하는 사회적 노력 역시 확대돼야 한다. 박준석 배우는 “법으로 명확히 규정돼 있지 않기 때문에 예술인의 고용 문제가 민간의 영역으로 치부되는 것”이라며 “공연장을 포함해 예술가들의 터전이자 직장으로서 극장을 명시할 극장법도 필요하다”라고 주장했다. 문화예술인들은 공동성명을 통해 ‘예술인의 지위 및 권리 보장에 관한 법률’(예술인 권리보장법) 제정을 촉구해 오기도 했다. 그러나 현재까지도 예술인 권리보장법은 국회에 계류돼 입법되지 못하고 있다. 일러스트레이터 단단 씨는 “사회 전반에 예술인의 노동과 예술작품의 가치를 인정하는 분위기가 퍼져야 예술 활동이 활발해지고 관련 정책도 확대된다”라고 강조했다. 이건명 위원 역시 “예술 활동의 결과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과정에 대한 평가가 잘 이뤄져야만 진정으로 예술 활동을 반영했다고 할 수 있다”라며 “정책을 세우기 전에 예술인의 삶에 대해 사려 깊게 고민해보는 태도가 필요하다”라고 당부했다.

예술인 고용보험은 국가가 예술인의 경제적 안정을 보장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하지만 이 제도만으로 예술인의 노동과 삶에 실질적 변화를 가져오기란 역부족에 가깝다. 단단 씨는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생계 걱정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예술혼을 마음껏 드러내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예술인 고용보험을 재검토하는 과정을 시작으로 예술인을 적극적으로 지원할 정책이 계속 만들어지기를 기대한다.

삽화: 김지온 기자

kion27@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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