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흔들,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라는 유명한 시 구절은 수많은 카카오톡 프로필로 옮겨 다니며 존재감을 드러내듯이. 개인적 삶과 사회에서 언제나 예상치 못한 변수들이 나타나 나를, 우리를 혼란에 빠뜨린다. 지금의 우리가 처한 펜데믹의 상황도 그렇다. 날씨가 따뜻해지면 물러갈 것이라던 ‘그 전염병’은 꼬박 한 해를 괴롭히고도 사라지기는커녕 ‘변이라는 녀석’으로 우리의 일상을 흔들어 놓고 있다. 이제는 원래 그러했던 일상이란 어떤 것인지도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대학신문 2020호의 기사들은 그 판단의 기준이 본질에 있음을 상기시켰다.

『대학신문』 1면에서는 비대면 수업을 듣기 위해 도서관을 찾은 학생 사진과 개강일 eTL 오류 및 복구 기사가 게재됐다. 혼돈의 상황에서도 서울대는 비대면 수업 등을 통해 학생들에게 최선의 수업을 제공하고자 노력했고 지난 학기부터는 수업 방식을 교과목별 특성에 따라 네 가지 유형으로 분류하고 사회적 거리 두기 단계와 연동해 진행하고 있다. 그 과정이 매끄럽고 순탄하지만은 않았지만, 교원과 학생이 어떤 방식으로든 수업을 통해 만나게 하는 과정이 수많은 사람의 노력을 통해 진행되고 있다는 점만은 간과할 수 없다. 방법이 어떠하든 수업을 통해 교원과 학생 간 의미 있는 상호작용들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본질이기 때문이다. 

3면에선 교환학생이 파견된 대학 이외에 서울대의 수업도 수강할 수 있도록 방침이 변경됐다는 기사가 실렸다. 교환학생 제도 역시 결국 학생의 역량을 향상시키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임을 고려하면 사실 방침의 변경은 변혁적인 것이 아니다. 다만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가 유발한 펜데믹 상황 전에는 군 원격수업을 제외하고는 비대면 수업이 없었기 때문에, 교환학생은 파견된 대학과 서울대 수업의 동시수강이 불가능해 방침 변경은 검토될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비대면 수업 환경이 조성됐기 때문에 교환학생이 서울대 수업 수강을 원하는 경우 들을 수 있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다.

5면의 예술인 고용보험에 대한 지적과 제도 개선 필요성 제기 기사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됐다. 고용보험이 실직한 근로자의 생활 안정과 재취업에 도움을 주기 위함이라는 목적을 생각해 볼 때, 근로자가 예술인인가 여부가 본질적인 잣대는 아닐 것이다. 기사의 제안과 같이 예술인들이 그들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예술 활동을 보장받도록 제도가 보완되기를 희망한다.

과거 배달 플랫폼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전에 필자가 살던 동네에 커피를 배달해준다는 신박한 카페가 생겼다. 카페 이름은 ‘본질로부터’. 내 마음대로 해석한 그 이름의 의미는, 손님이 와서 마시든, 배달로 마시든, 그 카페의 본질인 커피 맛은 변치 않는다는 확신이 아니었을까.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무엇이 맞는지 헷갈릴 때는 ‘본질로부터’를 떠올리면 어떨까 한다. 어쭙잖은 글은 여기까지. 이제 나는 내 본질인 학사과장 역할을 다 하고자 한다.

학사과 지혜진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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