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평 강사(중어중문학과)
주기평 강사(중어중문학과)

수강 변경 기간이 끝났다. 올해도 어김없이 소위 인기 강좌는 정원을 초과해 추가 신청 접수 요청이 쇄도하는 반면, 일부 비인기 강좌는 인원 미달로 결국 폐강을 면치 못했다. 학생들에게 필요하다고 생각돼 개설한 강좌가 폐강돼버린 것은 안타깝지만, 학교나 학과에서 학생들의 이해와 요구를 고려하지 못한 책임 또한 있기에 이를 그저 학생들의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폐강보다 더욱 문제인 것은 한정된 강좌와 제한된 정원으로 학생들이 수강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경우라 할 수 있으니, 이는 매 학기 반복되는 ‘수강신청 전쟁’으로 나타나고 있다.

필자는 이번 학기 서울대 외에 타 대학에도 출강해 교양 중국어 두 강좌를 담당하고 있다. 타 대학에서는 ‘교양선택’ 과목임에도 불구하고 두 강좌 모두 수강 변경 기간에 적지 않은 증원 요청을 받았다. 처음에는 나의 강의가 인기가 있고 뛰어나서인 것으로 착각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학교에 개설된 강좌 수 자체가 한정돼 있어 선택과목임에도 사실상 학생들의 선택권이 제한돼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원 외 추가 신청이나 증원 요청을 한 학생들의 상황은 저마다 다양했지만, 졸업 마지막 학기를 앞두고 교양 학점을 채우지 못했거나 군복학 등으로 뒤늦게 추가 등록한 학생들처럼 절박한 학생들 또한 있었다. 따라서 두 강좌 모두 정원은 이미 40명으로 적정 어학 학습 인원을 초과한 상태였지만, 이들 몇 명이 요청한 한 강좌만큼은 따로 수강할 기회를 배려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타 대학 규정상 이는 불가능했다. 

서울대에서는 강좌 정원이 찼어도 학생의 추가 신청 사유와 강의 여건 등을 고려해 담당 교수가 승인하면 추가로 수강할 수가 있다. 그렇지만 타 대학에서는 이를 ‘공정성’의 문제로 보고 담당 교수의 승인에 의한 정원 외 수강을 원천적으로 금지하고 있었다. 결국 이들을 구제하기 위해서는 정원 자체를 늘리는 방법밖에 없었으며, 증원되는 순간 모두에게 오픈되는 까닭에 적은 수의 증원으로는 그 증원의 목적을 이루기가 어려웠다. 결과적으로 내가 배려하고자 했던 학생 중 한 명만 추가로 수강신청에 성공했으며, 나의 강좌에는 10명의 인원이 증원돼 있었다.

수강 변경 기간을 마치며 ‘공정성’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됐다. 치열한 수강신청 경쟁이 이뤄지고 있는 상황에서 담당 교수의 승인을 통한 정원 외 수강은 반칙이나 특혜로 여겨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교수자로서는 강좌 인원을 무제한 증원할 수 없으며, 수강신청에 실패하고 배움을 호소하는 학생들의 요구를 무작정 거절하기도 쉽지 않다. 비록 정규 수강신청은 성공하지 못했지만 그 강좌를 꼭 수강하고자 하는 개인적인 이유와 상황을 말하고, 이에 대해 담당 교수가 납득하고 인정해 수강을 허락한다면 이를 반드시 불공정한 것이라 말할 수 있을까? 비록 공정성을 위해 일괄적으로 증원했다고는 하지만 이 역시 기존에 신청한 학생들의 입장에서는 불공정한 것이며, 증원하지 않은 타 강좌와 비교해도 불공정한 처사인 것은 아니었을까? 공정성을 추구하고자 했던 행동이 결국은 또 다른 불공정을 낳은 원인이 된 듯했다.

최근 공정성에 대한 추구가 사회적 관심과 요구가 되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공정성이 과연 진정한 공정성이라 할 수 있는지, 일괄적인 공정성의 추구가 모든 불공정의 여지를 막을 수 있는지 의문이다. 결과의 공정이 아닌 기회와 과정의 공정을 말한다고는 하지만, 이 역시 사람마다 처한 경제적 환경에 의해 좌우될 수밖에 없는 결코 절대적이지 않은 허상 가치에 불과하다. 정규 수강신청이라도 초고속 인터넷과 최고급 사양의 컴퓨터를 활용할 수 있는 것이 유리한 것과 마찬가지로. 어차피 모든 사안에 있어 절대적으로 공정할 수는 없는 것이라 한다면, 공정성의 잣대 또한 그 근본 원칙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사안의 목적에 따라 융통성을 발휘하는 것이 오히려 나은 것은 아닐까? 학생들에게 원하는 수업을 들을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주기 위해서 말이다.

 

주기평 강사(중어중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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