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 규제 샌드박스의 현황과 전망

혁신 성장을 산업 정책의 전면에 내세운 문재인 정부는 신산업 육성을 위해 지난 2019년 1월 ‘규제 샌드박스 제도’를 도입했다. 규제 샌드박스는 기업이 신산업 분야의 제품과 서비스를 출시할 때, 국민의 안전과 생명에 위해를 끼치지 않으면 일정 기간 규제를 면제하는 제도다. 『대학신문』은 도입 3년 차를 맞이한 규제 샌드박스의 현황을 짚고 앞으로 나아갈 길을 살펴봤다. 

규제 샌드박스, 혁신 성장의 깃발

최근 법체계의 변화 속도가 산업의 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핀테크·모빌리티·생명 공학 등 신산업에 도전하는 기업들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규제 샌드박스는 이를 해결하고자 신산업 분야에 진출하는 기업에 기존의 규제를 한시적으로 면제해주는 사후 규제 방식의 정책이다. 국내에선 문재인 정부가 강력히 추진한 결과 미국·일본 등 경제 선진국과 비교해도 상당히 이른 시기에 규제 샌드박스를 도입할 수 있었다. 앞선 국가들이 금융 분야에 초점을 맞춘 것과 달리 우리나라는 ‘샌드박스 5법’의 형태로 도입하며 적용 분야를 크게 확대했다.

규제 샌드박스의 신청 과정
규제 샌드박스의 신청 과정

규제 샌드박스 신청 과정은 다음과 같다. 우선 기업은 ‘규제 신속확인’을 통해 규제 여부를 확인한다. 규제가 없거나 30일 내에 회신이 없으면 곧바로 시장 출시가 가능하다. 규제가 확인되면 분야별 전담 위탁 기관에 서류를 접수하는 ‘가접수’ 단계로 넘어간다. 위탁 기관에서 서류를 보완한 뒤 본 신청 단계에서 심의위원회의 심의를 거친다. 사업을 금지하는 규제가 없고 상품과 서비스의 안전성이 확보되면 최장 4년간 ‘임시허가’를, 규제 유무와 상관없이 안전성이 확보되지 않아도 4년간 ‘실증특례’를 보장받을 수 있다.

두 돌 맞은 샌드박스, 엇갈리는 평가

현장에서는 규제 샌드박스의 성과를 두고 엇갈린 목소리가 나온다. 법무법인 비트의 규제 샌드박스 전문가 송도영 변호사는 규제 샌드박스가 “규제에 가로막힌 혁신 사업가에게 사업을 시작할 마지막 수단이 됐다”라며 “신산업 진출에 활로를 뚫어 여러 기업이 혜택을 받았다”라고 평가했다. 반면 아직 성패를 논하기에는 너무 시급하다는 시선도 있다. 대통령 경제과학특별보좌관을 역임하며 규제 샌드박스 설계에 관여한 이정동 교수(산업공학과)는 규제 샌드박스가 “신기술을 시험하며 안전성을 평가한 후 규제를 만들거나 보완할 수 있게 됐다”라면서도 “아직 시행 초기 단계인 만큼 더 많은 신제품에 정책을 적용해 절차 자체를 개선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산업계는 규제 샌드박스의 절차와 관련해 몇 가지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임시허가와 실증특례 진행 시 부여되는 조건이 과도하고, 심의 과정에서 정부 부처 간 협력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정동 교수는 “규제 샌드박스는 우리가 해보지 않은 행정의 관행이기에 많은 시행착오가 있을 것”이라며 “누적된 사례를 바탕으로 절차를 개선해야 한다”라고 답했다. 규제 샌드박스가 완전히 새로운 제도인 탓에 일부 법 조항이 모호하다는 지적도 있다. 일례로 현재 플랫폼 사업자가 규제 샌드박스의 대상인지, 규제 샌드박스에 선정된 기업이 인수되면 특례가 유지되는지를 두고 해석이 분분한 상황이다. 송도영 변호사는 “법 개정을 통해 각 조항을 명확히 해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규제 샌드박스를 둘러싼 핵심적인 문제 제기는 원격 의료나 모빌리티 산업처럼 사회·정치적으로 논란이 큰 쟁점 분야에서 나온다. 이 분야에서 규제 샌드박스는 무용지물에 가깝다. 택시를 활용한 소화물 배달 사업을 시도한 스타트업 ‘딜리버리티’는 규제 샌드박스를 신청한 지 2년이 지났음에도 현재 사업 심의 단계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화물연대와 퀵서비스 협회를 중심으로 반발의 목소리가 강력해 심의 절차 자체가 멈췄다. 사업 승인도, 심의 거부도 확정받지 않은 상태에서 2년이 지나며 회사는 사실상 공중분해 됐다.

혁신 성장의 첨병으로 거듭나려면

문제를 해결하려면 우선 샌드박스 심의 기간에 제한을 둬야 한다. 유사한 사업이 이미 승인을 받았다면 ‘패스트트랙’ 제도를 이용해 간소화된 심의 절차를 밟을 수 있으나, 선행 승인 사례가 없는 쟁점 분야 사업에서는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특정 쟁점 분야에 전문화된 샌드박스 설치 역시 필요하다. 쟁점 분야를 다루려면 높은 전문성이 요구되기에 별도의 법률을 통해 전문적인 사업 컨설팅을 제공하고 주무 부처가 신속하면서도 책임감 있게 사업을 심의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근본적으로 쟁점 신사업 분야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송도영 변호사는 “논란이 많은 분야에 무작정 샌드박스를 적용하는 것은 무리”라면서도 “쟁점이 되는 사업이 실제로 문제가 되는지 시험해보는 도구로 샌드박스를 활용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규제 혁신의 실험실’이라는 본 목적에 부합하도록 규제 샌드박스를 사회적 합의에 이르는 도구로 사용하자는 것이다. 정부와 국회는 이런 의견을 반영해 ‘규제 샌드박스 5법 개정안’을 입안해 4월 내에 통과시키고자 노력하는 중이다. 변화하는 산업 동향에 발맞춰 앞으로도 지속적인 법안 개정과 보완이 이뤄져야 한다.

기술 혁신이 빨라질수록 쇠락하는 산업 분야가 등장해 소외되는 사람이 발생하기 쉽다. 신산업을 단순히 ‘신산업’이라는 미명 아래 지원하기보다,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이해 관계자가 수용할 수 있는 범위에서 적절히 규제해야 한다. 이로써 사회적 합의에 도달할 때 진정한 혁신 성장이 가능하다.

인포그래픽: 김지온 기자 kion27@snu.ac.kr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