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다솜 사회문화부기자
신다솜 사회문화부기자

‘진리는 경험하는 것이지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헤르만 헤세의 말을 항상 품고 살았다. 무언가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내 몸으로 직접 부딪쳐 경험하거나, 적어도 내 살갗 속으로 파고들 수 있는 맥락이 포함된 이야기가 필요하다. 교수님께서 수업에서 말씀해주시는 것을 듣거나, 인터넷상에서 누군가가 주장하는 말만 듣고는 결코 어떤 사건이나 개념의 실체가 무엇인지, 그 감정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연도와 역사적 사건의 요약이 아닌 그 안의 사람을 들여다보는 문학을, 아무도 듣지 않았던 누군가의 목소리를 듣고 이를 따뜻한 가슴과 정교한 논리로 보도하는 기사를 좋아한다. 학보사 기자가 된 이유도 간단하다. 내가 직접 당사자가 될 수 없는 세상의 많은 일을 이해하기 위해 현장에 있는 당사자의 목소리를 잘 들어보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요즘 우리 사회는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잘 듣고 생각해보는 힘을 잃고 있는 것이 아닌지 걱정스럽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로 인해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사회 전체적으로 유튜브, 넷플릭스, 익명 커뮤니티를 이용하는 시간이 늘었다. 이는 단순히 운동 부족이나 개인화의 문제뿐 아니라, 살아있는 ‘경험’을 불가능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더 큰 문제다. 계속 비슷한 영상을 추천해주는 유튜브 알고리즘에 따라 점점 자극적인 영상을 보는 것에 익숙해지고, 커뮤니티 내의 여론과 분위기에 휩쓸려 오히려 내가 틀린 건 아닌지 의심하다 보면 세계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갖게 될 수밖에 없다. 젠더 갈등이나 현대 사회에서의 억압된 분노의 표출이 익명 커뮤니티의 소재가 되는 일이 늘어난 이유다.

디지털 세계는 모든 것이 빠르게 흘러간다. 정보와 주장들이 쏟아져나오고, 권력을 가진 주류의 사람이 살아온 방식과 관점에서 즉각적이고 충동적인 반응이 나타난다. 이 생각의 흐름에 적응하다 보면 빠르게 정해지는 여론 속에 소외된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고, 다르게 생각하고 상상할 가능성을 놓치기 쉽다. 어느 순간 디지털 기기 앞에 앉아서 누르면 반응하는 기계처럼 형체가 보이지 않는 무엇인가에 골몰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할지 모른다. 이런 환경에 어릴 때부터 익숙해진 사람들은 점점 길게 집중하고 생각하는 것을 힘들어하고, 주어진 문제를 풀거나 강의를 들으며 구조에 빠르게 적응하는 법만을 배우게 된다.

역설적이게도, 코로나19로 디지털 세계로 활동 반경이 넘어가고 디지털 환경이 활성화될수록 실제 세계에서의 오감을 통한 경험과 긴 호흡이 필요한 생각들이 더욱 중요하고 소중하다는 생각이 든다. 비대면 상황이라고 더 많은 학점을 들으며 디지털 기기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을 늘리기보다는 한강에 나가서 혼자 걸으며 떠오르는 생각들을 정리하고, 자연을 관찰하는 게 더 많이 배우는 길일지 모른다. 어떤 주제에 대해 확신이 서지 않을 때는 잘 정돈된 기사를 읽거나 ZOOM을 통해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눠볼 수도 있다. 또, 그동안 인문학·사회학 수업을 중심으로 들어왔다면 생물학·공학 서적을 읽거나 이과 교양 수업에 도전하는 건 어떨까.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고 다른 방식으로 경험하는 일에 주저하지 말자. 진리는 배우는 것이 아니라 경험하는 가운데 싹트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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