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법원이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 무죄 판결을 내리자 피해자들은 기업을 상대로 한 집단소송 제도를 도입할 것을 요구했다. 최근에는 5G 사용자 사이에서 데이터 서비스 품질 불량에 불만이 쏟아지며 통신사가 고의로 이를 조장했다는 이유로 사용자들이 집단소송에 나섰다. 게임 유저들 역시 아이템을 뽑을 확률이 0%에 가깝다는 사실을 고지하지 않은 회사에 분노해 공동으로 소송을 제기하는 것을 검토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집단소송법’의 개정으로 이들이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에 『대학신문』은 현재 논의되고 있는 집단소송법의 개정 방안과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인지 알아봤다.

 

집단소송법, 그게 뭔데?

집단소송법의 ‘집단소송’은 기업의 제품이나 서비스로 피해를 본 사람이 여럿일 때, ‘대표 당사자’가 전체를 대변해 제기하는 소송을 의미한다. 이는 피해를 본 사람들이 모여 단체로 소송을 진행하는 ‘공동소송’과는 다르게 몇 가지 요건을 추가로 충족해야만 소송허가를 받을 수 있다. △소송을 진행하는 구성원이 50인 이상이어야 하며 △소송의 쟁점이 모든 구성원에게 공통돼야 하고 △집단소송이 피해자들의 권리를 실현할 적합한 방법이어야만 한다. 다만 이 복잡한 요건을 모두 충족하더라도 집단소송이 원활하게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상임집행위원 박경준 변호사는 “소송허가를 받더라도 기업이 항소할 경우, 기업의 잘잘못을 소송으로 다투기도 전에 절차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쏟아야 한다”라며 “이 때문에 극소수의 사건만 집단소송으로 처리된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기존의 집단소송법, 즉 ‘증권관련 집단소송법’은 소송 절차가 과도하게 복잡하고 피해자들의 권리를 효율적으로 구제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에 법무부는 집단소송의 적용 범위 확대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증권 관련 불법 행위에만 집단소송을 허가했던 기존 법안과 달리 작년 9월 법무부가 발표한 개정안은 손해배상 청구가 가능한 전 분야로 영역을 확대해 △제조물책임법 △공정거래법 △신용정보법 등 분야별로 법안을 세분화했다. 또한 소송을 제기하기 전에도 사건에 대한 증거 조사를 가능하게 해 피해자들이 유사한 종류의 손해를 입었다는 정황과 사건의 인과관계를 쉽게 밝히도록 했다. 아울러 법원의 증거 조사 결정이나 증거 유지 명령에 기업이 응하지 않으면 피해자의 주장이 사실이라고 간주하도록 해, 피해자가 사건의 인과관계를 입증해야 한다는 책임도 경감됐다.

 

미뤄져 온 집단소송법 입법

집단소송법의 개정안이 발의된 것은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대 국회에서 이만우 의원과 노회찬 의원이 개정안을 국회에 발의했지만 끝내 통과되지 않았다. 이후에도 집단소송 관련 법안이 다수 발의됐지만 입법으로 이어진 개정안은 단 한 건도 없었다. 집단소송법이 오랜 시간 동안 의논됐음에도 완결된 형태로 입법되지 못하는 이유는 다양한 주체를 둘러싼 이해관계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기 때문이다. 

먼저 기업은 집단소송법이 경제 활동을 위축시키는 규제로 작용할 것을 우려해 입법을 반대한다. 기업은 집단소송이 제기되는 것만으로도 이미지 타격을 받아 경제적 손해를 입을 가능성이 크다고 항변한다. 정선주 교수(법학전문대학원)는 “미국에서는 집단소송을 거친 끝에 파산 신청을 하는 기업도 있다”라며 “소송을 남용하는 소비자로 인해 경제활동이 경직될 수 있다는 기업의 주장도 타당한 부분이 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집단소송법이 도입된다고 해서 이를 남용할 ‘블랙 컨슈머’가 생길 것이라는 예측은 기우라는 주장도 있다. 박경준 변호사는 “블랙 컨슈머가 민사소송에 드는 비용과 나머지 피해자를 대변한다는 심리적 압박을 감당하면서까지 소송을 진행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발의되는 법안의 내용이 저마다 다른 제도를 포함하고 있다는 점도 입법을 어렵게 하는 요인 중 하나다. 전원열 교수(법학전문대학원)는 “발의된 법안을 들여다보면 대부분 ‘집단소송’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미국식 증거 개시 절차·징벌적 손해배상·국민참여재판 등 여러 제도를 포함하는 내용”이라며 “집단소송이라는 의제 하나에도 여러 쟁점이 얽혀 있는 와중에 다른 제도까지 법안에 포함하려 하니 의사 결집이 더욱 어려워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발의된 개정안 대부분은 ‘옵트아웃’(opt-out) 방식에 따라 피해자가 집단소송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의사를 명백하게 밝히지 않는 한 모든 피해자가 소송 원고에 포함된다. 이에 대한 깊은 논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 역시 문제로 지적된다. 전원열 교수는 “현재의 옵트아웃 방식은 일일이 참여 의사를 밝히지 않은 피해자들에게도 판결의 효력이 미쳐서 그 피해자들이 이후에 별도로 피해를 호소하는 소송을 제기할 수 없게 된다”라며 “개별 피해자의 재량이 침해될 수 있다는 문제에 관한 논의 없이 개정안이 도입되면 안 된다”라고 짚었다.

 

소비자를 위한 집단소송법

법무부가 지난해 9월 집단소송법 개정안을 발표한 이후 개정안을 두고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더불어민주당 이학영 의원은 소비자 단체가 원고가 돼 청구 경위를 심사받는 1단계와 그 결과에 따라 피해 소비자가 참여 여부를 결정하는 ‘옵트인’(opt-in) 방식의 두 단계로 구성된 ‘소비자집단소송법안’을 제안했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자율분쟁조정위원장 변웅재 변호사는 “소비자집단소송법안에는 별도의 소송허가 절차도 없고 원고가 금전 형태로 손해배상을 청구하기 때문에 다른 형태보다 배상을 받기에도 편하다”라며 “소액의 피해를 본 다수를 구제할 수 있는 효율적인 방안”이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재판을 이끄는 대표 당사자의 역할을 일부 절차에 한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의견에 따르면 대표 당사자는 피해자 전체가 받아야 하는 총 손해배상액을 확정하는 것이 아니라 사건의 인과관계까지만 관여해야 한다. 예컨대 1,000만 원의 손해를 입은 피해자가 3억 원의 손해를 받은 사람의 이익을 절실하게 대변하리라는 보장이 없기에 구체적인 손해배상 수준은 각자의 재량에 맡기자는 것이다. 정선주 교수는 “기업은 피해자와 개별적으로 구체적인 배상 방법을 조정하고 합의함으로써 부차적인 분쟁을 피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기업의 부당 행위가 반복되지 않도록 규제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정 교수는 “다양한 방법으로 권리를 구제할 길을 열어두는 것이 바람직하다”라며 “기업도 집단소송법과 같은 법제를 막으려고만 하지 말고 소비자를 위한 약관과 제도 마련에 힘써야 한다”라고 전했다.

소비자의 권익을 위해 소송의 범위를 확장해야 한다는 주장에 이견은 없지만 집단소송법 개정안에 대한 논쟁은 여전히 뜨겁다. 다만 이번 논의가 입법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정부와 기업, 그리고 소비자 간의 합의가 원만하게 이뤄져야 한다. 박경준 변호사는 “피해를 본 선량한 국민을 구제하기 위해 집단소송법이 하루빨리 개정돼야 한다”라며 “국회와 정부가 입법에 적극적으로 임해달라”라는 의견을 표명했다. 증권관련 집단소송법 제정 이후 17년이 흘렀고 응당한 배상을 받지 못하는 소비자들은 늘어만 가고 있다. 개정된 집단소송법이 국민을 보호하면서도 기업의 이익까지 고려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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