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 문화재청 업무 계획으로 보는 문화재 지정번호와 보호 체계의 변화

지난달 8일 문화재청이 발표한 2021년 업무 계획에 따라 1962년 ‘문화재보호법’ 제정 이후 사용됐던 ‘1호’나 ‘2호’ 등의 문화재 지정번호가 서서히 자취를 감출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올해부터 국가지정문화재*에 부여된 지정번호의 대외적 사용을 제한하고 이를 문화재 관리 차원에서 내부적으로만 사용하겠다는 개선안을 발표했다. 문화재청은 지정번호 제도의 개선과 함께 국가나 시·도가 그동안 관리하지 않았던 비지정문화재에 대한 보호 체계도 갖추기로 했다. 『대학신문』은 개선안이 발표된 배경과 의의, 그리고 문화재 보호 정책이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해 알아봤다. 

문화유산 서열화와 일제 강점기 행정의 흔적

문화재 행정 출범 이후 지금까지 약 60여 년간 시행돼 온 지정번호 제도는 문화재를 지정번호 순서에 따라 무의식적으로 서열화할 위험이 있다는 지적을 줄곧 받아왔다. 각 지정번호는 문화재로 선정된 순서에 따라 부여되지만, 시민들은 그 번호가 문화재의 중요도를 의미한다고 오해할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문화재 서열화와 관련된 사례로 ‘국보 1호 교체 논란’을 들 수 있다. 국보 1호는 국가를 상징하는 문화재라는 주장 아래, 김영삼 정권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국보 1호를 교체하자는 논란은 꾸준히 이어져왔다. 여기에 작년 10월 더불어민주당 전용기 의원이 시민단체 ‘문화재제자리찾기’와 함께 국회에 제안한 국보 1호 교체 청원까지 더해지면서 관련 논쟁은 쉽게 잦아들지 않았다. 이에 대해 문화재청 정책총괄과 홍은영 사무관은 “문화재청은 논란이 일어날 때마다 지정번호가 가치 서열이 아닌 지정 순서임을 전달했으나 여론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았다”라며 “문화재를 폭넓게 보호하자는 문화재 행정 방향성에 맞게 지정번호를 대외적으로는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라고 밝혔다. 김도헌 교수(동양대 공공인재학부)는 “순번이 빠를수록 문화재의 가치가 더 높다고 인식될 수 있고, 실제로 많은 사람이 국보 1호에 특별한 상징성을 부여한다”라며 “국보 1호를 교체하기보다는 지정번호의 대외적 사용을 제한해 문화재를 관리할 때만 내부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한 해결책”이라고 평가했다.

한편 일제 강점기의 잔재를 없애기 위해 국보 1호 교체 논란이 불거졌다는 의견도 나온다. ‘숭례문’이 1호로 지정된 때는 일제 강점기로 국가를 대표할 문화유산으로 자리하기에 문제가 있으며 1호로 지정된 이유 역시 임진왜란 당시 가토 기요마사*가 한양을 점령할 때 통과한 문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해방 이후 1962년 제정된 ‘문화재보호법’의 ‘문화재’라는 단어 역시 일제 강점기의 잔재를 비추고 있다. 오세덕 교수(경주대 문화재학과)는 “문화재라는 개념 자체가 일제 강점기 때 확립된 만큼 관리 체계도 제국주의 일본의 영향을 많이 받아 현재까지도 우리나라 문화재 행정에 크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라고 진단했다. 김상태 교수(한국전통문화대 전통건축학과)는 “북한도 일찍이 제국주의 일본식 문화재 관리 번호 체계를 교체한 만큼 우리나라도 문화재 지정번호에 남은 일제 강점기의 흔적을 지워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번호 없는 문화재에 적응하려면

국민 참여 플랫폼 ‘광화문1번가’ 등 일각에서는 지정번호의 대외적 사용 제한을 둘러싸고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외부에서 지정번호를 알지 못하면 명칭만으로 문화재를 구별하기 어려워지고 문화재 지정 순서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는 의견이다. 따라서 문화재의 유형·지역·지정 순서를 의미하는 번호를 모두 합쳐 문화재별로 고유 코드를 만들자는 주장도 제기된다. 이에 대해 홍은영 사무관은 “완전히 새로운 번호 체계를 도입하면 기존의 지정번호를 포함한 자료와 충돌해 국민에게 잘못된 정보를 전달할 가능성이 있고, 체계를 바꾸는 과정에서 필요한 사회적 비용도 막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덧붙여 홍 사무관은 “발표된 업무 계획에 따라 기존의 체계를 문화재 관리 목적으로 기관 내부에서만 사용한다면 장기적으로는 더 효율적”이라며 “외부의 여러 자료를 새로운 번호 체계에 맞게 일제히 교체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덜 수 있고, 각 자료의 지정번호를 점진적으로 삭제하는 과정만 거치면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반면 기존 체계가 가진 장점도 있을 뿐만 아니라 제도가 자리잡은 지 오랜 시간이 흘렀기에 이를 바꿀 때 사회적으로 혼란이 가중되리라는 우려도 있다. 서지민 교수(충북대 고고미술사학과)는 “지정번호가 대외적으로 사용되지 않으면 명칭이나 형태가 같은 문화유산이 다수 분포할 때 구별하기 어려울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일례로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의 경우 같은 명칭의 문화유산이 국보 78호와 국보 83호로 총 두 개 지정된 상태다. 이때 지정번호가 없다면 두 문화재를 뚜렷하게 구분하기 어려워진다. 다만 오세덕 교수는 “구성원 대부분이 지정번호를 이용해 문화재를 구별하는 것에 익숙한 만큼, 새로운 체계를 도입하면 초반에는 어느 정도의 혼란이 발생한다”라며 “개선안을 적극적으로 홍보하면서 대국민 공청회처럼 공개적인 자리를 꾸준히 마련해 변경된 문화재 분류 기준을 상세하게 설명해야 한다”라고 역설했다.

비지정문화재를 포함한 보호 체계를 향해

개선안이 제시된 또 다른 이유는 문화재보호법이나 시·도 조례로 지정되지 않은 문화재 가운데 보존 가치가 있는 비지정문화재도 보호하기 위해서다. 홍은영 사무관은 “비지정문화재를 포함한 모든 역사 문화 자원을 대상으로 전수 조사를 진행해포괄적인 보호 체계를 정비하는 과정에서 기존 제도를 개선하면서도 문화재의 가치 확산에 이바지할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그간 비지정문화재와 관련된 법령의 부재로 적절한 보호 조치를 취할 수 없어 사실상 문화재를 방치해왔다고 지적한다. 김 교수는 “비지정문화재에 대한 보호 체계가 마련되면 문화재 보호 지역 주민의 재산권 행사가 어려워져 단기적으로 시민들의 불만이 커질 수 있다”라면서도 “장기적으로는 새로운 문화유산이 자리할 토대를 닦아 국내 문화산업을 강화하는 데 힘을 보탤 수 있기에 긍정적”이라고 덧붙였다.

문화재청은 지정문화재와 비지정문화재를 ‘역사 문화 자원’으로 포괄하고 대장에 등재하는 ‘대장주의’의 도입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문화재청 정책총괄과 김선국 사무관은 “국가에서 지정한 문화재를 중심적으로 보호하는 지정주의 중심의 보호 체계에서 벗어나, 지정되지는 않았지만 보존 가치가 있는 비지정문화재까지 목록과 대장으로 관리하는 대장주의 적용을 검토하고 있다”라며 “자원이 얼마나 분포하고 있는지 알기 위해 ‘역사문화자원 전수조사 및 관리방안 연구’ 5개년 사업을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김 사무관은 “올해 5월까지는 대구·경북·강원지역을 대상으로 건축·민속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와 함께 사업을 추진할 것이며, 이후에 조사를 전국으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포괄적인 보호 체계가 원활하게 도입되려면 제도적·경제적 지원과 함께 국민의 자발적인 참여가 뒷받침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도헌 교수는 보호 체계와 관련된 업무 계획이 실효성을 발휘하려면 “적절한 법령과 예산 계획을 정비하고, 문화유산 홍보 전략을 강화해 국민과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라고 제안했다. 서지민 교수는 이 과정이 잘 이행된다면 “국민은 문화재 보호의 당위성을 이해하면서 문화 의식을 드높이고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자긍심을 키울 수 있다”라고 전망했다.

전국 각지의 문화유산은 기술적인 완성도를 떠나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역사·예술·학술적 차원에서 많은 가르침을 주고 있다. 문화재는 과거의 일상을 간직하고 있는 소중한 유산인 만큼 각별한 보호를 받아야 한다. 지정번호 제도를 개선하고 문화재에 대한 포괄적 보호 체계를 마련하려는 노력이 문화유산에 대한 올바른 이해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국가지정문화재: 국보·보물·국가무형문화재·사적·명승·천연기념물 및 국가민속문화재 등 문화재청장이 문화재보호법에 의해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지정한 7개 유형의 중요문화재

*가토 기요마사(加籐淸正): 임진왜란 시 조선을 침공해 함경도 방면까지 점령한 일본의 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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