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인터넷 밈의 정체는 무엇인가

지난달 24일 유튜브 채널 ‘비디터’(VIDITOR)가 업로드한 ‘브레이브걸스_롤린_댓글모음’ 영상은 순식간에 ‘롤린’ 유행을 일으켰다. 해당 영상은 소위 ‘밀보드’(‘밀리터리’와 ‘빌보드’의 합성어)에서 인기를 끈 국내 여자 아이돌 그룹 ‘브레이브걸스’의 노래 ‘<롤린’의 위문 공연 영상과 댓글이 한 화면에 보이도록 편집한 2차 저작물로, 첫 업로드 이후 SNS를 통해 전파되며 3주 만에 조회수 1,157만 회를 기록했다. 2017년에 발매된 ‘롤린’은 실시간 음원 차트를 휩쓸었고, 브레이브걸스는 지난 14일 처음으로 음악방송에서 1위를 차지했다. 이처럼 최근 문화 콘텐츠가 ‘인터넷 밈’으로 뒤늦게 유행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인터넷 밈은 문화의 요소가 인터넷 이용자에 의해 변형돼 재탄생한 이미지·영상·글·음악을 뜻한다. 이는 생물의 정보를 전달하는 유전자(gene)처럼 모방(mimeme)을 통해 문화를 전파하는 매개체를 뜻하는 용어 밈(meme)에서 파생했다. 『대학신문』은 인터넷 밈이 발전해온 과정과 우리 사회에 남긴 변화의 흔적을 살펴봤다.

2021년 인터넷 밈 파헤치기

국내에서 인터넷 밈은 1999년부터 ‘디시인사이드’ 커뮤니티를 통해 본격적으로 유통됐다. 해당 커뮤니티의 규칙은 게시글에 사진을 포함하는 것이었고, 글이 ‘짤리는’ 것을 ‘방지’하고자 첨부한 이미지는 ‘짤방’이라 불리며 국내 인터넷 밈의 시초가 됐다. 현재 인터넷 밈은 ‘유머 짤’에 국한되지 않고 이미지·영상·해시태그·유행어 등 문화 요소를 변형하고 전파하는 다양한 형태를 아우른다. 곽금주 교수(심리학과)는 “인터넷 밈 유행의 심리적 동기는 인간의 본능인 모방 욕구”라며 “이용자들이 기존의 문화 정보를 그대로 복제하지 않고 자신의 개성을 담아 변형하기에 창의적 결과물이 나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후 인터넷 밈은 뉴미디어의 발전에 힘입어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특히 방송 자료와 뮤직비디오를 재미있게 편집한 유튜브 영상이 인터넷 밈의 근원이 되는 경우가 많다. 2011년 MBC ‘무한도전’에 출연한 한 할아버지가 무한도전의 구호 대신 “무야호”라고 외친 장면이 최근 인터넷 밈으로 재탄생한 것이 대표적이다. 해당 장면에 기계음을 섞은 ‘무야호 리믹스’라는 영상은 유튜브에서 20일 기준 460만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고 ‘베토벤 바이러스’와 해당 밈을 결합한 ‘무야호 바이러스’ 영상 등 수많은 2차 저작물들은 유행에 박차를 가했다. 한편 15초~5분 분량의 ‘숏폼’(short form) 컨텐츠의 부상은 인터넷 밈이 유행하는 데 속도를 더했다. 숏폼 콘텐츠의 시작을 알린 SNS 애플리케이션 ‘틱톡’(TikTok)에 이어 인스타그램과 유튜브 역시 짧은 동영상을 업로드할 수 있는 ‘릴스’(reels)와 ‘쇼츠’(shorts) 서비스를 출시해 밈이 활발하게 유통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했다. 

최근 인터넷 밈을 유통하는 주체는 지상파 방송 등 전통 미디어까지 확대됐다. 최성인 박사(언론정보학과)는 “KBS의 유튜브 채널 ‘깔깔티비’와 MBC의 유튜브 채널 ‘오분순삭’처럼 기성 매체가 재밌는 콘텐츠를 짧게 편집해 유통하는 사례가 증가했다”라며 “전통 미디어가 인터넷 밈의 파급력을 인지하고 제작에 반영하면서 인터넷 밈의 문화적 지위가 높아졌다”라고 분석했다.

한편 인터넷 밈은 광고·패션·미술계에서 적극 활용돼 경제적 이익을 창출하기도 한다. 성열홍 교수(홍익대 광고홍보대학원)는 “인터넷 밈을 활용한 광고는 과도한 마케팅에 대한 소비자의 거부감을 줄인다”라며 “기승전결의 서사 구조를 가진 기성 광고와 달리 간결한 밈 광고는 서사에 피로감을 느끼는 소비자에게 효과적이다”라고 설명했다. 2019년 ‘버거킹’ 광고에 영화 <타짜>의 대사 “묻고 더블로 가”와 드라마 <야인시대>의 대사 “사딸라”가 활용된 것이 그 예시다. 이재경 교수(건국대 상허교양대학)는 “‘슈프림’과 ‘톰포드’처럼 패션 브랜드가 신상품 홍보에 인터넷 밈을 활용하는 경우가 빈번하며 미술에서도 미미·아트놈·최나리 등 미디어 아티스트의 ‘밈스러운’ 작품이 젊은 세대에게 큰 관심을 받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인터넷 밈의 영향력은 금융 시장까지 확산됐다. 일례로 ‘도지코인’(dogecoin)이 탄생하고, 최근 그 가치가 대폭 높아진 데는 인터넷 밈의 역할이 컸다. 도지코인은 2013년 인터넷 밈인 ‘도지’(Doge)를 활용해 탄생한 가상화폐로 지난달 29일 테슬라 최고경영자 일론 머스크가 트위터에 패션잡지 ‘보그’(VOGUE)의 표지 모델을 개로 패러디한 ‘도그’(DOGUE)를 올린 것을 계기로 가치가 800% 이상 폭등했다. 이 밖에도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의 밈에 의해 주가가 폭등한 ‘게임스톱’처럼 주가가 밈의 영향을 받는 ‘밈 주식’이 등장하는 등 인터넷 밈의 영향력은 계속해서 확대되고 있다.

인터넷 밈의 두 얼굴

인터넷 밈은 개인적·사회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주기도 한다. 개인은 원작을 창의적으로 변형하며 재미를 느끼고, 자신이 창조한 밈이 사람들에게 전파되는 것을 보며 성취감과 만족감을 느낀다. 곽금주 교수는 “구성원 전체가 참여하는 집단적인 놀이가 부족한 한국에서 인터넷 밈 유행은 놀이 문화를 창출하며 사회의 결속력을 강화한다”라고 밝혔다.

인터넷 밈은 단순 유희를 위한 도구를 넘어 사회적으로 유의미한 역할을 담당하기도 한다. 최성인 박사는 “모방과 복제를 거쳐 빠르게 전파되는 인터넷 밈은 사회 구성원들이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지도록 유도한다”라며 “학대 아동의 죽음을 알려 해결책을 촉구했던 ‘#정인아미안해’ 운동처럼 사회적 현안에 대한 밈은 SNS에서 긍정적인 힘을 발휘한다”라고 말했다. 국가 기관에서 인터넷 밈의 파급력을 활용하는 경우도 있다. 최 박사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의료진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달하고자 시작한 ‘덕분에 챌린지’가 인터넷 밈을 활용해 좋은 반응을 끌어냈듯이, 공신력 있는 기관이 밈을 적절하게 사용한다면 사회적 가치를 효과적으로 전파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인터넷 밈의 과도한 사용이 소통의 어려움을 유발하거나 사회적 갈등을 심화할 가능성도 있다. 김경자 교수(가톨릭대 소비자학과)는 “대부분의 인터넷 밈은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은어처럼 사용되기 때문에 중장년층 이상의 세대가 접근하기 어렵다”라고 짚었다. 인터넷 밈이 콘텐츠 제작에 남용될 경우 광고·방송 산업의 독창성이 침해된다는 의견도 있다. 성열홍 교수는 “인터넷 밈의 재미만을 강조해 광고를 제작하면 광고의 주제가 단순화돼 브랜드의 장점을 살리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지상파 방송이 인터넷 밈을 방송에 활용하는 소위 ‘탈신비화 전술’을 취할 경우 방송국의 수명이 짧아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택광 교수(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는 “지상파 방송은 방송법의 제한을 받지 않는 인터넷 플랫폼에 비해 파격성이 떨어지는 것이 현실”이라며 “지상파가 인터넷 밈 유행에 편승해 뉴미디어와 경쟁 구도를 형성하는 것은 좋지 않은 결과로 이어진다”라고 우려했다. 이 교수는 “지상파는 그간 축적된 인적·기술적 자본과 금융 자본을 활용해 콘텐츠의 품질을 향상해야 한다”라며 “뉴미디어와 결을 같이 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특성을 살려 콘텐츠 시장에서 역할을 분담하겠다는 태도가 바람직하다”라고 강조했다.

건강한 인터넷 밈 문화를 위해

인터넷 밈은 대부분 기존의 이미지나 영상을 재가공하는 형태로 제작되기 때문에 원작자의 저작권과 밈의 대상이 되는 인물의 초상권을 해칠 우려가 있다. 특히 해당 인터넷 밈이 관련자의 허가 없이 광고로 제작되는 경우 갈등은 더욱 첨예하게 드러난다. 11년 전 종영한 SBS 드라마 ‘순풍 산부인과’에서 코미디언 박미선 씨가 “스토리는 내가 짤게, 글씨는 누가 쓸래?”라고 말하는 장면은 ‘월급은 내가 받을게, 출근은 누가 할래?’ 등으로 패러디되며 인터넷 밈이 됐다. 이후 박미선 씨는 다수의 광고가 자신의 캐리커쳐를 무단 이용해 초상권을 침해했다고 SNS에서 호소한 바 있다. 이재경 교수는 “현재 인터넷 밈의 저작권 침해에 관한 입법이나 판례는 없지만 밈의 근원이 되는 원작의 저작자가 문제 삼는다면 해당 패러디에 저작권법상 공정 이용 적용 여부는 다툼의 여지가 있다”라며 “인터넷 밈을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할 때 발생하는 법적 분쟁을 방지하려면 원작자의 승인을 받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짚었다.

일각에서는 인터넷 밈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세대를 통합할 소통 수단으로 이용될 수 있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인터넷 이용자들은 자신의 세대와 거리감이 있는 문화적 요소를 인터넷 밈 형태로 즐기기도 한다. 가수 나훈아 씨의 노래 ‘테스형!’이 젊은 세대의 호응을 받았던 사례가 그 예시다. ‘테스형!’은 철학자 소크라테스에게 삶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노래로, 지난해 KBS 추석특집 방송을 통해 젊은 세대에 알려지며 신선한 가사 내용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후 해당 노래는 SNS에서 수많은 패러디를 거쳐 인터넷 밈으로 자리했다. 곽금주 교수는 “밈이 세대 통합에 기여할 수 있는지는 원작의 소재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며 “세대를 아우르는 공통 관심사가 존재하고, 그 소재를 다양한 세대가 각자의 방식으로 향유한다면 세대 간 통합과 문화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다”라고 밝혔다.

‘디시인사이드 갤러리’와 같은 특정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폐쇄적이고 한정적인 방식으로 유행했던 인터넷 밈은 이제 많은 사람이 함께 즐기는 문화로 자리 잡았다. 특히 인터넷 밈은 문화·방송·경제 등 사회 전반에 걸쳐 수많은 유행을 주도하며 비주류 문화라는 한계에서 벗어났다. 창작자의 권리를 존중하며 사용될 때 인터넷 밈은 유쾌한 사회 분위기를 형성하고 세대 통합의 열쇠로 기능할 수 있다. 특히 계속되는 언택트 시대에 SNS와 온라인 활동이 강화될수록 인터넷 밈의 영향력은 더욱 높아지리라고 예상된다. 새로운 문화의 선두주자로서 인터넷 밈에 대한 면밀한 분석과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삽화: 김윤영 기자 kooki1026@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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