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란(법과대학 박사과정)
정 란(법과대학 박사과정)

일본군 ‘위안부’는 세계 2차 대전 중 일본제국군에 의해 납치돼 성노예가 됐던 수십만 명의 여성과 소년을 완곡하게 일컫는 말이다. 1931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군은 13개국 출신의 젊은 여성들을 강제로 군인들의 성노예로 삼았다. 성적·육체적 폭력, 장기 손상과 기능 장애, 불임 후유증 등 재생산폭력의 피해는 극심하고 지속적이며 복합적인 양상을 띠었고, 생존자들도 신체적, 정신적 질환뿐만 아니라 고독과 소외, 빈곤 등을 겪었다.

1991년 위안부 피해자 고(故) 김학순의 공개 증언을 시작으로, 그들의 증언은 성폭력을 전쟁의 무기로 사용한 일본의 반인륜 범죄의 실체를 밝히는 계기가 됐다. 미국 연방 의회는 2007년 일본 정부가 젊은 여성들을 성노예로 몰아넣은 데 대해 분명하고 모호하지 않은 방식으로 공식 인정·사죄하고, 역사적 책임을 받아들일 것을 촉구하는 121호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당시 일본 정부는 인권 문제임을 인정하기보다 반일 프로파간다라며 반대 로비를 펼쳤다. 위안부에 대한 정의를 촉구하는 각종 단체의 성립, 기림비 건립, 소녀상 제작 등 전 세계적인 노력이 이어졌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존엄과 명예 회복, 역사적 진실과 정의를 마주하고 화해와 평화·공존의 필요성이 강조됐다.

위안부의 생생한 증언은 위안부 역사가 잊히면 안 된다는 것을 알리고 일본 정부의 진정성 있는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일본은 여전히 위안부 문서의 유네스코 등재를 반대하는 등 과거를 직시하고 전쟁 범죄에 대해 참회할 준비가 되지 않은 행태를 보였다. 지난해 정의기억연대의 기부금 관리 문제가 지적됐을 때, 일본 언론은 위안부 운동 전체의 신용이 떨어지고 있으며 전 세계 평화운동을 다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1월 8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일본이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손해배상을 하라는 판결이 나오자, 일본은 한국이 국제법상 주권면제를 위반했다며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한편 램지어 교수(미국 하버드대 로스쿨)는 일본군 위안부를 매춘의 연장선에서 해석하는 「태평양 전쟁의 성계약」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위안부 운동이 시작된 이래 30여 년이 지났고, 눈물의 호소와 기다림이 반복되는 동안 정부에 등록된 피해자 240명 중 15명만이 남았다. 이들은 30여 년의 노력에도 일본의 진정성 있는 사과와 후속 조치가 이뤄지지 않는 모습을 지켜보며 역사적 과제 앞에서 무력감을 느끼기도 했다. 지난 2월 이용수 할머니는 위안부 문제를 ICJ에 회부해 줄 것을 정부에 요청했다. ICJ 회부를 추진하는 위원회 등이 구성돼 정부의 협조를 구하고, 법적인 논리 구성, 입증 자료, 특별 협정 초안 마련 등의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일본군 문서, 유네스코 등재자료에 왜 위안소를 설치해야 했고, 군부가 모집에 어떻게 관여했는지 등에 대해 충분한 증거가 있다는 자신감을 보이기도 했다. 절차적으로 위안부 문제가 ICJ에 회부돼 다뤄질 수 있는지, 승소할 수 있는지, 정당한 후속 조치들이 실현 가능한지뿐 아니라 제소 자체가 정치·외교적으로 어떠한 영향을 끼칠지에 대한 다양한 고려가 필요하며, 국제 정세 등을 이유로 회의적으로 보는 입장도 있다.

지난달 복지 재단에서 만난 한 중학생은 램지어 교수 논문 이야기를 꺼내며 위안부 할머니들이 편안한 노생을 보내시도록 더 괴롭히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울분에 찬 심정을 표현했다. 할머니들의 마음에 공감하고, 소녀상에 목도리, 꽃을 가져다줬다는 경험을 들으며 마음이 따뜻해졌다. 일본군 성노예 전범 여성 국제 법정 등 위안부 관련 연구를 읽고, ICJ 제소를 준비하는 선배들의 인터뷰를 보며, 위안부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해결을 위한 적극적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에 안심이 되기도 한다. 대학원에서 만난 인도네시아 유학생이 식민지를 겪은 두 나라의 역사적 동일성을 바탕으로 위안부 관련 글을 쓰는 것을 보며 한국의 노력이 피해를 겪은 다른 국가들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3·1절 기념 특선 영화 〈아이캔스피크〉의 마지막 장면에서 “아베 또 헛소리하더라, 일본 놈들은 우리가 다 죽기를 기다릴 텐데. 난 보란 듯이 오래 살 거야, 200살까지”라고 하시던 할머니의 모습을 보며 이런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잠시나마 고민해보는 학생으로서,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작은 일들을 실천해보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기고를 마친다.

정  란(법과대학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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