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구 교육지원실장(법학전문대학원)
정종구 교육지원실장(법학전문대학원)

개강을 맞은 캠퍼스에는 다시 봄이 찾아왔다. 하지만 대다수의 강의실은 마치 방학이 끝나지 않은 것처럼 비어있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가 세상을 강타한 지 어느덧 1년이 됐고 그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변화는 대면을 전제했던 일상의 순간들이 비대면으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물론 이전에도 수많은 전염병이 있었지만, 코로나19 만큼 전 세계를 한순간에 마비시킨 경우는 없었다. 무증상 감염으로 격리와 억제가 불가능했던 질병은 세계화의 도관을 타고 전 세계로 전파됐다. 다행히 인류는 협력해 백신과 치료제를 개발했고 이제 코로나19 극복을 목전에 두고 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우리는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흑사병이나 천연두같이 인류 역사에 큰 위협이 됐던 전염병은 주기적으로 있어왔다. 그리고 이러한 전염병이 맹위를 떨치다가 극복된 이후에 일상은 원래의 모습을 천천히 회복해왔다. 하지만 이번에 전개된 비대면으로의 변화는 불가역적인 것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생각한다. 기술 발전으로 인해 원격으로 생활할 수 있는 기반은 이미 마련돼 있었으나 전환의 계기만 부족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기술적인 한계로 비대면 활동을 지속하기 어려웠지만, 오늘날에는 너무나도 쉽게 할 수 있다. 비대면으로 생활할 때 소요되는 거래 비용이 대면을 전제로 하는 경우보다 현저하게 낮아졌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기술 발전을 둘러싼 문제는 노동 영역의 주요한 고민거리였다. 기술 발전으로 인간의 노동이 어느 정도까지 대체될 수 있는지를 둘러싸고 수많은 논쟁이 전개돼 왔기 때문이다. 농업혁명으로 인간의 육체노동 중 일부가 우마로 대체됐고, 산업혁명으로 인간의 육체노동 중 다른 일부는 증기기관이 대신하게 되었으며, 정보화 혁명으로 인간의 정신노동 중 상당수가 정보화 기기로 넘어갔다. 로보틱스와 결합한 인공지능의 발달로 인간의 나머지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이 기계로 대체되는 것은 아닌지 고민해왔고 아직 그 답은 명확하지 않다. 

이제 한 가지 고민이 추가됐다. 비대면으로의 변화가 피하기 어렵다고 할 때, 무엇은 대면으로 해야 하고, 무엇은 비대면으로 해도 되는지다. 불가침의 신성한 영역으로 여겨지던 종교 의식도 비대면으로 치러지고, 재판도 비대면으로 진행된다. 그런데도 반드시 대면으로 해야 하는 활동이 있을까. 이런 고민은 별것 아닌 것으로 보일 수는 있지만, 정책을 입안할 때 매우 중요하다. 코로나를 겪으며 정부가 비대면 결혼식은 장려했지만, 비대면 장례식은 장려하지 못했다. 그런데 왜일까. 어떠한 활동은 비대면으로 진행해도 사회적으로 수용되는 반면, 어떤 활동은 비대면으로 추진하면 사회적으로 호된 비판에 직면하게 되는가. 

대학사회에도 이 점은 동일하게 문젯거리가 된다. 원격으로 해도 되는 활동은 무엇이고, 원격으로 해서는 안 되는 활동은 무엇일까. 원격으로 해도 되는 수업이 있다면 강의실 사정을 이유로 수강정원을 제한할 수 없을 것이다. 원격으로 해도 되는 학회가 있다면 기존의 참가비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어색해질 수 있다. 너무나도 당연해 보이는 것이 왜 당연한지를 설명하는 것이 학문의 역할 중 하나라고 할 때, 일상으로 굳어져 가는 비대면으로의 변화를 짚고 넘어가야 할 시점이다. 훗날 우리는 지금을 두고 회상할 것이다. 그때는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고. 

정종구 교육지원실장(법학전문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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