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연후 사진부장
이연후 사진부장

사실 이렇게 공개된 곳에서 내 의견을 내는 것이 너무나도 두렵다. 자세히 말할 수는 없지만, 옛날에 호되게 당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돌이켜 본다면 내가 그 일로 그렇게 상처받을 이유는 없었고, 또 그 기억에 매몰돼 지금까지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이따금 떠오르는 모진 말과 시선들이 발목을 붙잡는다. 하지만 이왕 『대학신문』에 들어와서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기회에 내 생각 한 자 적지 않는 건 이 나름대로 후회를 만들어낼 것 같으므로 용기를 내 몇 자 적어보려 한다.

나는 지난 2015년 미국 연방 대법원이 발표한 동성결혼 합헌 판결문의 마지막 문단을 꽤 좋아한다. 한 문장 한 문장 속에 담긴 아름다운 단어들과 그 단어들이 얽혀 만들어낸 축복 같은 일이 큰 울림을 가져오기에 자주 찾아보는 문단이다. 간절히 염원하던 일이 이렇게나 아름다운 말로 축하받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행복이고 기쁨인지 이해한다. 그래서 감동에 차올라 있을 때면 문득 아득한 현실이 생각나곤 한다. 당장 가까운 우리 가족만 봐도 남동생의 학교에서는 “게이야?”라는 말이 자기들 사이에선 가장 큰 모욕이라고 한다. 가끔 동생이 내게 저런 말을 쓸 때면 심장이 내려앉는다. 초반에는 동생을 앉혀놓고 그러지 말아야 한다며 설교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돌아오는 답이 “내 주변에는 그런 애 없어서 괜찮아”였다. 얼마나 오만한 생각인가. 소수자를 이해하지 않는 사람이 주변을 바라보는 건 너무나도 쉬웠다. 단순히 존재를 지워버리는 것으로 모든 일을 해결하면 되니 말이다. 이렇게 동생의 무책임한 대답을 반복해서 듣고 나니 얘기를 이어나갈 의지를 잃어버렸다. 그래서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라고 일축하고 따로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이제는 종종 동생이 게이냐고 놀림조로 물을 때면 방향을 바꿔 “너 사회에 나가서도 그런 소리 하면 돌 맞는다”라고 설명한다. 물론 돌이 날아오진 않는다. 동생과 같은 사람은 많고, 여전히 한국에서는 동성애를 불건전한 것이라고 여기는 시선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를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 꾸준히 목소리를 내며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이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모여 세상을 바꾸기 위해 한 걸음씩 내디디고 있다.

지난 17일(수)에는 일본 삿포로지방법원에서 동성 혼인신고 반려는 헌법을 위반한 내용이라고 판결했다. 이런 판결이 동성결혼 합법화로 이어지지는 않기에 원고 측은 노력을 이어나갈 것이라고 뜻을 전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에 노력을 들여야 하는 현실이 싫지만 그래도 이런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 힘쓰는 당신들이 멋지다고 전하고 싶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판결문에선 이런 문장들이 적혀있다. “결혼보다 심오한 결합은 없다. 결혼은 사랑, 신의, 헌신, 희생 그리고 가족의 가장 높은 이상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 그들의 소망은 문명의 가장 오래된 제도 중 하나로부터 배제돼 고독함 속에 남겨지지 않는 것이다”. 이렇듯 누구든 동등한 권리를 가질 수 있으며 그게 당연한 현실이 돼야 한다. 남들과 같은 권리를 누리고자 희망하는 사람들이 타인으로부터 상처받지 않는 날이 오길 소망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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