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진 취재부 기자
이수진 취재부 기자

최근 미국 아시아계 노인들에 대한 ‘묻지 마 폭행’ 장면을 담은 영상들이 온라인상에 공개되며 수많은 이를 충격에 빠뜨렸다. 며칠 전에는 미국 애틀랜타에서 아시아계 여성 6명을 포함해 총 8명이 희생된 총격 사건이 있었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확산 이후 유럽과 미국 등지에서 급증한 이와 같은 ‘아시아계 증오 범죄’는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오고 있다.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변화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불길처럼 번지고 있으며, 인권 운동가부터 연예인들까지 규탄 운동에 동참한다는 뜻을 밝혔다. 그런데 문득 이런 의문이 들었다. ‘이런다고 문제가 해결될까?’

아시아계 노인 폭행 사건과 애틀랜타 총격 사건은 모두 무고한 피해자가 목숨을 잃은 안타까운 일이자, 아시아계 인종차별이 전면에 드러난 범죄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만큼 그간 미디어와 대중의 반응은 피해자 추모와 가해자 비판이 주를 이뤘다. 그러나 여기서 멈추면 갈등의 골이 깊어질 뿐이다. 나는 두 사건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 사태를 기점으로 분노와 대립 대신 포용과 화해의 감정을 동원하기 시작한다면, 폭력과 혐오로 점철된 인종 갈등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나치게 원론적인 얘기로 보일 수도 있지만, 차별과 혐오 문제에 관해서는 이해와 존중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다.

그러나 이를 행동으로 옮기기까지가 쉽지 않다는 문제가 있다. 이번 사건들의 발생 과정을 살펴보자. 코로나19 확산 이후 미국인들은 락다운으로 인해 생활이 불편해졌으며, 생명이 위험해질 수도 있는 상황에 놓였다.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을 느낄 때 사람들은 탓할 대상을 찾기 마련인데, 자신이 입은 피해에서 비롯된 분노를 그 대상에 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아시아계 증오 범죄의 경우에는 코로나19 발생지가 중국이었다는 점을 이유로 질병 확산의 탓을 모든 아시아인에게 돌린 것이다. 이에 따라 미국의 뿌리 깊은 아시아계 인종차별은 분노를 매개로 폭력의 형태를 띠게 됐다. 이런 논리를 따르는 증오 범죄는 물론 정당하지 않지만, 불안과 분노가 단순하고 강렬하게 해소되는 방법이므로 그 유혹에 빠지기 쉽다.

반면 포용과 이해는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조금이나마 실천할 수 있다. 그러나 불가능하지 않다는 점에서 희망이 있다. 아시아계 노인 폭행 사건과 애틀랜타 총격 사건에서도 비극을 넘어선다면 이해와 공감의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 이때 공감대 형성의 열쇠는 노인 공경이라는 범인류적 가치와 총기 사고에 관한 미국의 사회적 맥락이다. 물론 피해자가 아시아계라는 사실을 지워서는 안 된다. 하지만 인종 문제를 잠시 덮어둔 채로 두 사건을 본다면, 누구나 ‘폭행을 당한 노인이 우리 할아버지였다면’ ‘총격으로 사망한 사람이 우리 어머니였다면’과 같은 생각을 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공유되는 감정을 기반으로 이해와 존중을 실천해, 분노나 갈등 없이 아시아계 차별을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국면으로 나아가기를 바란다.

최근 픽사에서 아시아계 할머니와 손자의 이야기를 그린 단편 애니메이션 〈윈드〉(Wind)를 내놓았다. 손자에게 더 좋은 미래를 만들어주기 위한 할머니의 희생과 사랑이 드러나는 작품이다. 감상자들은 서로 인종이나 국적이 다르더라도 할머니의 사랑이라는 애틋한 감정에는 모두 공감할 수 있다. 결국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차이가 아니라 속에 들어 있는 마음이 통한다는 것이다. 폭력과 증오에 똑같이 분노로 반응하기보다는 범인류적 공감과 이해로 맞설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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