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현 사회문화부장
이소현 사회문화부장

세상은 어지럽게 돌아간다. 눈 깜짝할 시간도 없이 시간은 지나간다. 내게 3월이 그랬다. 매일 할 일이 생겼다. 무언가를 끝내면 또 다른 무언가가 손에 쥐어졌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그 시간은 더없이 길고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미얀마의 상황을 기사로 읽으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이번 달 초까지만 해도 내게 그 사건은 딱 그 정도의 크기였다. 비슷한 역사를 가진 나라의 구성원인 만큼 시위로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간접적으로나마 애도를 드러냈지만, 코앞의 현실에 시달리고 있던 나는 그 이상으로 미얀마 현장에 관여할 에너지가 없었다.

지지난 주에 신촌에 가는 동안 김규희 뉴미디어부장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을 때, 문제가 커졌다. 그는 내게 민주화 항쟁에 참여하고 있는 ‘현지’ 미얀마 학생을 취재해보자고 말했다.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보도된 기사 내용은 전부 유학생이나 UN 특사처럼 ‘현실적으로’ 컨택 가능한 범위 내에 있는 사람들을 취재해서 나온 결과들이었으니까. -어떻게 취재할 건데? -화상으로 하면 되지. 일단 연락만 되면, 어떻게든 취재할 수 있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고 판단했음에도 뉴미디어부장의 제안을 수락한 이유가 무엇인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사명감에 불탄 것도 아니었는데.

아무래도 그때의 나는 기적의 가능성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컸던 것 같다. 정말 현장에서 뛰고 있는 내 또래 사람들의 이야기를 실제로 들어볼 수 있을까, 나와 같은 시간을 살아가면서도 총칼의 폭력을 인내하는 사람들의 온기를 담아낼 수 있을까. 연락처를 얻어 국제전화를 걸었을 때 들었던 학생들의 목소리를 잊지 못한다. 그들은 미얀마어로 자신들이 처한 절망적인 상황을 쏟아냈다. 비록 잘 알아듣지 못했지만 스마트폰 너머로 들려오는 답변을 들으면서 엄청난 책임감을 느꼈다. 그때부터 미친 듯이 교수님과 연구원분께 취재 요청 메일을 돌렸다. 기사 마감이 한 주도 안 남았는데 부장 신분으로 두 면짜리 기획 기사를 갑작스레 준비하게 되다니. 구효주 기자님의 노고로 부담을 훨씬 덜었지만, 그래도 힘들었다. 하지만 취재에 응해주시는 분마다 미얀마에 관심을 가져줘서 고맙다고, 학생 기자에 불과한 내게 과분한 칭찬을 건네주시니 괜히 부끄러워지곤 했다.

내가 욱여넣은 글자가 그들에게 유의미한 도움을 줬을지 확신하기 어렵다. 하지만 학보사 기자로 일하면서 이번 기사만큼 마음을 다해 작성했던 기사는 없었다. 쓰고 싶었고, 써야만 하는 기사였다. 그 사실이 나를 버티게 했다. 불완전한 형태로라도 미얀마는 민주주의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 여전히 세상을 바라보는 내 시선은 건조하고 염세적이지만, 보잘것없는 능력으로 일궈낸 결실을 마주하니 마음이 조금은 편해진다.

“이번 주 신문은 이소현 부장이 다 썼네요.” 이다경 부편집장이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세어보니 대략 원고지 65매에 달하는 글자들을 뱉어냈다. 기사 두 편을 쓰고 칼럼을 한 편 썼다. 헛구역질이 수없이 반복됐다. 그렇지만 고생을 함께해주는 기자들이 있어서 그나마 즐겁게 일할 수 있었다. 미얀마에 반드시 민주주의가 도래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 도와주신 모든 분께 감사의 말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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