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 ‘Democracy is at stake’: 민주화를 향한 미얀마 청년들의 목소리를 듣다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했다.’ 미얀마 청년들이 표방하는 민주화 항쟁의 문구다. 지난 2월 1일, 미얀마에서 군부 정당인 통합단결발전당(USDP)의 주도로 쿠데타가 일어났다. 지난해 11월에 치러졌던 총선에서 아웅산 수 찌 국가 고문이 수장으로 있는 국민민주연맹(NLD)이 압승을 거두자 군부는 투표 결과에 불복해 정권을 전복했다. 군부는 수 찌 고문을 구금하고 여당 인사들을 추방해 권력을 장악했다. 현재 미얀마에서는 최대 도시 양곤을 비롯한 여러 지역에서 군부에 저항하는 민주화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군부가 비인도적인 폭력으로 시위를 탄압하는 과정에서 연일 수많은 희생자가 나오고 있다. 『대학신문』은 이번 쿠데타에 얽힌 미얀마 내부의 정치적 이해관계와 현지 정국을 분석하고 민주화 운동의 최전선에서 활동하고 있는 현지 대학생들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군부 쿠데타의 역사와 민주화 운동의 경과

◇53년간 드리운 그림자=미얀마에서 군부가 핵심적인 정치 세력으로 부상한 것은 1962년이다. 당시에도 군부는 네 윈 총사령관을 필두로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았다. 이후 군사 독재 정권에 반대했던 시민사회 세력이 힘을 합쳐 1988년 ‘8888 항쟁’으로 불리는 민주화 시위를 일으켰지만, 정부는 군대를 동원해 총칼로 시위대를 진압했다. 장준영 교수(사이버한국외대 베트남인도네시아학부)는 지난 22일에 발간된 서울대 아시아연구소의 보고서 ‘아시아 브리프’에서 “민주화 운동을 진압하고 약 1년 뒤에 군부는 당시 NLD의 총재였던 아웅산 수 찌를 외세에 의존하는 매국노로 둔갑시키는 등 불순한 세력으로부터 국가를 구원한 주체가 바로 군부라는 인식을 퍼뜨리려고 했다”라고 설명했다.

이후 민주주의 정부는 NLD가 최초로 공개경쟁 선거에서 승리한 2015년이 돼서야 정식으로 출범했다. 2011년 통치권이 민간 정부로 넘어오면서 테인 세인 대통령이 선출돼 의회가 구성됐지만, 여전히 군부가 핵심 통치권을 가지고 있었기에 온전한 민주 정권이 탄생했다고 보긴 어려웠다. 아시아연구소 배도찬 방문연구원은 “농촌 개발 사업을 위해 2015년 미얀마에 방문했을 당시, 아직 군부가 통치에서 물러나지 않은 상황이었던 만큼 사람들의 표정에 긴장감이 역력했다”라며 “신정부 집권 이후 2016년에 이르러 민주주의적 통치 기반이 자리를 잡자 교육·통신 등 여러 방면에서 개혁이 이뤄졌다”라고 말했다.

◇끝나지 않은 악몽=하지만 NLD가 들어선 후에도 경제권은 군부에 남아있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NLD가 제도적으로는 민주주의를 실현했지만 실질적으로는 구현하지 못했다는 주장도 나온다. 장준영 교수는 “미얀마 군부는 나라의 치안을 정비하는 군인이라기보다 경제권을 쥔 이익집단에 가깝다”라며 “민주주의 세력이 집권한 이후에도 경제 기득권은 그대로 유지했다”라고 설명했다. 최영준 교수(경희대 국제통상·금융투자학과) 역시 “수 찌 정부의 집권으로 표면적으로는 민주 정부가 들어서게 됐지만, 깊게 들여다보면 민주 세력과 군부 세력이 각각 통치권과 경제권을 나눠 가진 상태로 줄곧 긴장 관계를 이어왔다”라며 “2008년에 군이 제정한 헌법에 따르면 군부는 부통령과 국방부·내무부·국경 수비대 장관뿐 아니라 전체 국회의원 가운데 25%를 임명할 수 있을 정도로 지배 권한이 여전히 강했다”라고 덧붙였다.

지난 2월, 군부는 부정선거를 명분으로 결국 쿠데타를 일으켰다. 지난해 총선에서 집권당인 NLD가 선거에서 승리해 국회 총원 476석 가운데 396석을 차지하자, 선거 과정에서 부정이 발생했다고 주장하며 그 부정을 군부 정당이 바로잡겠다는 명분이었다. 전문가들은 미얀마 경제에서 군부가 행사하는 영향력이 막강하다는 평가와 함께 시민사회와 민주주의 세력에 험난한 앞길이 예고돼 있음을 암시했다. 박현용 교수(덕성여대 국제통상학과)는 “현재 군부가 광산·기간산업·통신산업의 통제권 대부분을 소유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장악한 이상, 군부가 소유한 기업들의 힘이 약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짚었다.

사진 제공: ABFSU
사진 제공: ABFSU

◇미얀마는 지금=폭력으로 시민 항쟁을 진압하겠다는 군부의 결단이 확고한 현재, 상황은 절망적이다. 서울대에서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는 미얀마 유학생 윤쉐진 씨(국제대학원 석사과정)는 “현재 양곤에서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총성이 이어지고 있다”라며 “현지 사람들의 증언에 따르면 사상자가 600명을 훌쩍 넘겼는데도 공식 사상자 통계는 이에 훨씬 못 미치는 등 잘못된 정보가 퍼지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마찬가지로 서울대에서 한국어를 전공하는 에에띤 씨(국제대학원 박사과정)는 역시 “군대가 집마다 들이닥쳐 사람들을 강제로 끌어가 시위대가 만든 바리케이드를 철수하라고 명령하기도 한다”라며 현재 군부가 장악한 도심의 풍경을 전했다.

전문가들은 군부의 위세를 꺾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점에 동의했다. 장준영 교수는 “이미 오랜 시간 동안 체계를 갖춰 온 군부의 조직력은 굉장히 위협적”이라며 “경험이 많은 운동가나 기성 정치인이 힘을 합쳐 조직 체계를 구축하지 않으면 군부의 위력에 압도될 가능성이 크다”라고 우려했다. 한편 8888 항쟁과 비교했을 때 시민의 반발이 ‘시민 불복종 운동’의 형태로 훨씬 거세진 만큼, 순순히 군부에 제압되지 않으리라는 시각도 있다. 박현용 교수는 “군부와 시민 세력은 현재 치킨게임*에 돌입한 상태”라며 “군부 입장에서는 이대로 국민의 저항에 물러선다면 자신들의 입지가 위태로워지므로 절대 물러서지 않을 것이고, 민주주의 정권을 경험한 미얀마 국민 역시 군사 독재 치하로 되돌아가기를 원치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이번 시위에 앞장서고 있는 시민들은 ‘Z세대’로 불리는 학생 세대다. 1990년대 이후 출생자로 구성된 Z세대는 수 찌 정권의 개방·개혁 정책에 따라 민주화의 혜택을 가장 직접적으로 받은 이들로, 현재 미얀마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가장 강력하게 드러내는 주축이다. 배도찬 연구원은 “최근 젊은 세대는 ‘페이스북’과 같은 SNS를 통해 미얀마 상황을 공론화하고 시위에 힘을 보태고 있다”라고 말했다. 최영준 교수는 “학생 단체는 아직 조직력이 크지 않으나, 길어지는 시위를 버티면서 점차 결속력을 다지며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사진 제공: ABFSU
사진 제공: ABFSU

시위의 최전선에 있는 학생 운동가를 만나다

현지의 상황을 보다 생생히 보도하기 위해 미얀마에서 학생 운동의 최전선에서 활동하고 있는 ‘전국미얀마총학생연맹’(ABFSU)의 간부 A씨와 B씨를 지난 20일 국제 유선전화로 인터뷰했다. (통역·번역: 에에띤, 최재희)

Q. 현재 미얀마의 상황은.

A씨: 처음 쿠데타가 일어나고 시위가 절정에 달했던 2월 15일 시점보다 시위대 규모가 많이 줄었지만, 시위는 동네와 길거리에서 계속 이어지고 있다. 공포를 느낀 주민들이 모래를 쌓아 바리케이드를 길에 배치하고, 이를 치우려는 군경들과 갈등을 빚고 있다. 군경들은 총과 최루탄을 쏘는 등 길거리 시위대를 폭력적으로 진압한다. 군경들의 폭력 진압으로 신체적인 피해를 본 일반 국민들도 많다. 그러나 모든 국민들이 올바른 민주주의를 염원하기 때문에 이에 굴하지 않고 민주화 시위를 이어나갈 것이다.

B씨: 현재는 민주화 혁명 단계로 접어들었고 그에 상응해 군부의 폭력이 늘어났다. 시위대가 있다는 뉴스가 있으면 군경이 바로 찾아와 진압한다. 밤에 잡혀가서 아침엔 시체만 돌아오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리고 군부가 운동가와 학생 지도자를 국기문란죄로 고소하는 경우가 많다. 지금까지 잡혀간 학생이 1,000명 가까이 되고 일반 국민까지 포함하면 수천 명이 잡혀갔을 것이다. 이번 달 15일부터는 인터넷도 끊겼고 군부는 언론을 조작하고 있다.

Q. 학생회는 어떤 방식으로 시위를 조직하고 민주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지.

A씨: 8888 항쟁과 비슷하게 학생들이 군부를 향한 투쟁에 제일 앞장섰다. 전체학생회연합인 ‘바카싸(Ba Ka Tha) 중앙회’가 흩어진 학생들을 모아 조직적으로 민주화 운동을 할 수 있도록 보조한다. 우리 ABFSU는 민주화 운동을 체계적으로 지도할 수 있게끔 최전선 시위대를 보호하는 역할이다.

ABFSU는 전국의 학생회가 연합 형태로 모인 단체지만 ABFSU에 가입하지 않은 학생회도 있다. 이들 중 일부는 도시 단위에서 시민들이 시위를 조직할 수 있게 돕는다. ABFSU를 비롯한 단체들은 분산된 목소리를 하나로 뭉칠 수 있게끔 노력한다. 동시에 ‘연방의회 대표위원회’(CRPH) 하부조직의 정치인이나 다른 정치 단체와 논의하면서 국민들이 원하는 정책이 나올 수 있도록 활동한다.

B씨: 인터넷이 끊겨 군부의 실시간 동태 파악이 어렵기 때문에 학생회에서 협력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전국적으로 시위를 진행하면서 휴대 전화로 군부의 움직임을 서로 공유하는 방식이다. 학생회 내부에서는 시위 현장 전략을 짜고 외교 활동 등에 관해 논의한다. 

내가 속한 동양곤대 학생회가 CRPH에게 직접적으로 지시를 받는 것은 아직 없다. 2020년의 선거가 무의미해지지 않도록 나온 임시 정부 의회인 CRPH는 대외적인 부분을 담당한다. CRPH의 사사 특사가 국제 사회를 향한 법적·외교적 역할을 맡아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학생회는 이들과 다르게 현장 활동을 중심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CPRH의 방향성과 움직임을 지켜보고 이에 상응하는 활동을 계획한다. 

Q. 쿠데타가 일어난 2월 1일부터의 현지 상황을 이야기해줄 수 있나.

A씨: 2월 1일 쿠데타가 발생할 당시에 나와 ABFSU의 부회장이 같이 있었다. 뉴스를 통해 무슨 상황인지 파악하려 했지만 새벽 2시쯤부터 인터넷이 끊겨 기사를 확인할 수 없었다. 텔레비전 채널도 국영 방송인 MRTV와 군부 채널인 MWD을 제외하고는 방송이 송출되지 않았다. 아침 6시가 돼서야 쿠데타가 발생한 것을 알았다. 우리는 민 아웅 흘라잉 군 총사령관이 쿠데타를 일으켰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소식을 접하자마자 매우 놀랐다. ‘2008년 헌법’에 따라 군부에 정식으로 주어지는 정치적·경제적 권력이 충분히 컸다. 이미 군부가 많은 이익을 누리고 있음에도 끝없는 욕심으로 쿠데타를 일으켰다는 사실은 온 국민이 2008년 헌법의 비민주성을 다시 깨닫게 했다.

2월 1일 오후 1시쯤 인터넷이 다시 연결됐지만 안정적이지는 않았다. 우리는 학생들을 모아 회의를 시작했고, ABFSU 위원회를 소집해 전국적인 반대 운동을 개시하기로 결정했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인해 학교가 문을 모두 닫은 상태였기 때문에 학생들은 ABFSU의 지시에 따라 지역별로 반대 시위를 진행했다. 2월 말까지는 군부가 시위대를 해산할 때 지금처럼 폭력적이지는 않았던 것 같다. 물론 그때도 고무탄과 실탄을 발포하는 등 폭력을 사용하기는 했지만, 지금 우리가 겪는 것만큼 무자비하지는 않았다. 2월 중순부터 시위가 전국으로 확산되기 시작하자 군부에서도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폭력 진압을 자행했다.

원칙대로라면 군부는 국민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법으로 시위대를 해산해야 하지만, 군부는 이를 전혀 지키지 않고 있다. 시위 참여자를 길거리에 앉혀 그의 어깨 위에 자신들의 다리를 올리고 비웃는 방식으로 인권을 침해하고 있었다. 인세인 감옥에 잡혀간 사람들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군부는 뜨거운 날씨에 무릎을 꿇게 하고 학생들의 부모님 이름을 물어봤다. 묻는 것에 답하지 않으면 폭력을 가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목숨을 위협받았다. 

Q. 시위를 하면서 힘든 순간들이 많았을 것 같다.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순간은?

A씨: 3월 13일은 8888 항쟁에서 희생당한 코폰마우를 기리는 기념일이었다. 그날 만달레이의 시위를 마무리하던 중 군부의 총에 맞아 시위대 방어를 담당하던 동료 사뻬나잉이 희생됐다. 다른 학생들도 바로 가까운 곳에 숨었어야 했는데 시민들의 도움을 받아 무사히 도망칠 수 있었다. 모두가 위험에 처할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우리를 도와주는 시민들의 모습에 눈물이 났고 동기부여도 됐다. 

B씨: 3월 3일의 따뭬에서의 시위가 가장 안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도로에서 시위하던 중 시위대가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양쪽에서 군경이 진압을 해왔다. 사람이 2,000명이 넘게 있었는데 미처 군경을 피하지 못한 학생 389명이 잡혀갔고 인세인 감옥에 감금됐다. 군부는 선동죄를 규정한 형법 505조에 문구를 신설해 시위대를 고소했다. 미성년자 몇 명은 풀려난 상태지만 아직 300명 정도가 감금돼 있다. 

Q. 어떤 민주주의를 원하나.

A씨: ABFSU는 가장 기본적이고 ‘깨끗한’ 민주주의를 원한다.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 결사의 자유 등 국민의 자유를 보장하는 민주주의를 구축하고 싶다. 우리는 정치적으로 ‘연방 민주주의’를 원한다. 미얀마 본토는 버마족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산간 지역에는 카친족, 샨족 등의 소수민족이 산다. 많은 민족과 군대 사이의 끊임없는 갈등 때문에 미얀마인들은 서로 간에 신뢰를 많이 잃었다. 민주주의가 정착되더라도 소수민족과의 전쟁이 계속되는 형태는 원하지 않는다. 이전에는 많은 국민들이 소수민족들에 반감을 가졌다. 그러나 지금은 소수민족 조직과 무장한 민족 연합 단체들이 협력하며 하나로 뭉치는 상황이다. 모두가 같은 마음과 목적이 있기 때문에 미얀마에 민주주의가 이룩되리라 믿는다.

B씨: 연방 민주주의를 갖는 것이 국민들의 동일한 목표다. 소수민족까지 아우르는 자유로운 민주주의를 원한다. 

Q. 국제사회가 적극적으로 미얀마 사태에 개입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A씨: 많은 학생이 도움을 요청하면 UN이 ‘보호책임원칙’에 따라 미얀마 사태에 개입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지금 UN과 미국의 행동이 적극적이지 않기 때문에 ‘사람이 얼마나 더 죽어야 국제사회가 들어올까’라는 심란함도 생기고 힘이 빠진다. 물론 다른 나라에 도움을 요청해서 쟁취한 승리보다 자신의 힘으로 이룩한 민주주의가 더 의미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다른 나라들이 쿠데타 정권을 합법적인 정부로 인정하지 않고 외교 관계를 단절해 압박을 가할 의무가 있다.

B씨: 쿠데타 발생 이후 국민들이 국제 사회와 UN의 도움을 기대했던 것이 맞다. 이제는 상황이 더 심각해졌는데도 도움을 주지 않으니 기대를 하지 않는 편이다. 다른 나라의 역사를 봐도 UN에서 도와준 경우가 없었기 때문에 직접 개입할 가능성이 매우 작다고 본다. 그러나 현 상황이 시민의 힘만으로 타개하기 힘든 만큼 국제 사회에서 전략을 세우고 무기를 지원해주면 민주화 세력은 끝까지 싸울 수 있을 것이다. 

Q. 마지막으로 한국과 『대학신문』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A씨: 미얀마의 소리에 귀 기울여 달라. 우리 미얀마에 일어나고 있는 상황들을 지켜봐 달라. 진실을 위해 더 큰 목소리를 내달라. 한국을 포함한 국제사회가 민주화 운동을 응원하는 것이 큰 힘이 됐고 앞으로도 많은 응원을 보내주길 바란다. 이 폭력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힘써주길 부탁한다.

B씨: 미얀마의 민주화 운동에 많은 관심을 가져줘서 감사하다. 한국에서의 미얀마 사태를 알리려는 운동, 기도회 덕분에 미얀마 국민들이 많은 힘을 얻고 있다. 앞으로도 미얀마 상황을 주시하고 민주화를 위해 기도해 주길 바란다.

민주화의 길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민주주의의 문턱에서=시위에 나선 시민들은 대체로 ‘연방 민주주의’를 외쳤다. 미얀마 전역에 걸쳐 주권이 동등하게 배분되길 원하고 있는 것이다. 박현용 교수는 “연방 민주주의란 모든 민족에게 동등한 자치권을 부여해 평등한 연합체를 구성하는 것을 뜻한다”라며 “현재 많은 소수민족이 시위에 참여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군부 정권에서 수 찌 정권으로의 전환이 민주주의 사회로 나아갈 발판을 마련했다는 시각도 있다. 배도찬 연구원은 “수 찌 정부 때부터 민주주의는 제도적, 사회적으로나 체계적으로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라며 “개정된 헌법에 따라 군부가 일정 부분 권력을 갖고 있긴 하나 민주 정부가 대부분의 권한을 갖고 있던 만큼 쿠데타가 진압되면 체계를 재정비해 민주주의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사회의 동향과 역할은=전반적으로 국제사회가 미얀마 내부 사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지 않다는 의견이 많다. 유럽연합과 미국은 미얀마에 대한 개발 협력 지원을 중단하겠다는 성명문을 발표했지만 군부 정권에 압력을 가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장준영 교수는 “미국의 바이든 행정부는 미약하게나마 군 인사와 군부 기업에 표적 제재*를 가하고 있다”라면서도 “미얀마 최대 원조국이었던 일본을 포함한 주변국은 원조 중단 이외의 조치를 취하지 않는 등 이른바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겠다는 태도하에서 다소 미온적인 대응을 보이는 상태”라고 짚었다. 그 중 특히 주목해야 할 국가는 중국이다. 중국은 현재 미얀마의 상황을 주시하면서도 시위 진압을 내정 문제로 분류하는 등 사태를 방관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최영준 교수는 “외교는 국익을 최우선으로 진행되기에 어느 나라건 섣불리 군부의 편에 서거나 시민 세력의 편에 서는 쪽으로 결단하기 쉽지 않다”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군사적 개입이 어려운 것과 별개로 국제사회가 연대해 인도적 지원을 늘려 시민들의 안전을 비호해야 한다고 말한다. 전략적 모호성과 같은 외교 원칙을 준수하기에 앞서 인도적 지원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배도찬 연구원은 “현재 쿠데타로 미얀마에서는 정상적인 경제 활동이 불가능하다”라며 “의약품·식료품 지원 등 시민의 생활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라고 역설했다. 최영준 교수 역시 “국익을 고려한 전략적 외교와 인권 유린에 반대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일”이라며 “불법적인 방법으로 정권을 잡아 시민들을 탄압하는 군부를 제재하고, 저항 세력에게 구호품을 계속 전달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국제 협의체를 가동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된다. 박현용 교수는 “UN이나 다른 국제기구를 통해 제재 결의를 발표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라며 “국제사회 전역에 걸쳐 다양한 협의 채널을 가동해 군부와 시민 세력 간 타협점을 찾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라고 짚었다.

미얀마의 학생과 시민들은 항쟁의 현장에서 치열하게 싸우고 있을 뿐 아니라, 미디어를 통해서도 자국의 위기를 알리며 민주주의를 되찾기 위한 투쟁을 이어나가고 있다. 장준영 교수는 “미얀마 속담에 ‘방금 판 우물에서는 깨끗한 물을 기대하지 말라’라는 말이 있다”라며 “시간이 걸리겠지만 미얀마는 현재 진정한 민주주의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진통을 겪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혹독한 진통을 겪고 있는 미얀마가 진정한 민주화의 길목에 들어설 수 있기를 소망한다. 

*치킨게임: 한쪽이 양보하지 않을 경우 양쪽이 모두 파국으로 치닫는 상태

*표적 제재: 특정 국가나 인물, 기업을 표적으로 삼아 집중적으로 가하는 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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