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 연구에 경종 울린 ‘램지어 쇼크’
일본군 ‘위안부’ 연구에 경종 울린 ‘램지어 쇼크’
  • 김무성 기자
  • 승인 2021.04.04 0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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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 램지어 교수 사태 이후 역사학계가 나아갈 길

올해 초 일본군 ‘위안부’는 전쟁 범죄가 아닌 매춘 행위였으며, ‘위안부’ 피해자들이 자발적 성 노동자였다고 주장한 존 마크 램지어 교수(미국 하버드대)의 논문이 학술지 『법경제학국제리뷰』(IRLE)에 게재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전 세계적으로 큰 논란이 일었다. 학계는 그간의 ‘위안부’ 연구 성과를 전면 부정한 이 논문에 수많은 반박을 제기했다. 그 결과 논문 출판을 강행하려던 해당 학회가 출판을 보류한 가운데, 램지어 교수가 발표한 또 다른 논문에도 역사 왜곡 의혹이 불거지며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대학신문』은 램지어 교수의 논문을 둘러싼 공방을 되짚어보고 앞으로의 연구가 나아가야 할 길을 살펴봤다.

퇴행적인 ‘역사 부정론’의 실체

국내외 학자들은 램지어 교수의 「태평양 전쟁의 성 계약」 논문이 치명적인 논리적 결함과 수많은 연구 윤리상의 문제를 내포한다고 지적한다. 동북아역사재단 박정애 연구위원은 “램지어 교수는 일본의 공창제(公娼制) 사례를 조선의 ‘위안부’ 문제에 그대로 대입하는 등 연결할 수 없는 논거를 무리하게 이어 붙였다”라며 “학술지에 등재할 논문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논리 구조가 허술하다”라고 비판했다. 연구 윤리상의 문제에 대해 이진희 교수(미국 이스턴일리노이대 사학과)는 “램지어 교수는 ‘위안부’ 관련 사료를 왜곡 및 오용했다”라며 “심지어 유령 인터넷 블로그에 나온 잘못된 내용까지 논거로 인용하는 등 기초적인 연구 윤리를 심각하게 위반했다”라고 지적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런 문제가 의도적인 ‘역사 부정론’의 맥락에서 발생했다는 점이다. 고태우 교수(국사학과)는 “램지어 교수의 논문은 엄연한 역사적 사실인 ‘위안부’ 피해를 부정하고 있다”라며 “이는 이 논문이 역사 부정론자의 시각에서 쓰였다는 것을 보여준다”라고 강조했다. 램지어 교수의 ‘역사 부정론’은 오랜 노력 끝에 진전을 이룬 ‘위안부’ 연구의 문제의식에 역행하는 것이기도 하다. 양현아 교수(법학전문대학원)는 “램지어 교수의 논문 내용은 ‘위안부’ 문제를 대하는 현재 일본 정부의 관점보다도 후퇴했다”라며 “이토록 반 인권적인 주장을 담은 논문이 버젓이 등장했다는 것이 가장 심각한 문제”라고 평가했다. 

‘학문의 자유’라는 방패

램지어 교수의 논문이 숱한 결함을 드러냈음에도 일각에서는 학문의 자유를 거론하며 램지어 교수에게 가해진 비판의 강도가 과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하버드대 로렌스 바카우 총장은 “램지어 교수가 논쟁의 여지가 많은 견해를 표현한 것은 학문의 자유 영역에 포함된다”라며 램지어 교수를 두둔하는 발언을 했고, 일본의 극우 인사들과 소수의 국내 학자들이 이에 동조하며 논란이 더욱 커졌다. 

하지만 관련 분야의 세계적 전문가들을 포함한 다수의 학자는 램지어 교수의 논문이 학문의 자유와 무관하게 기본 요건을 갖추지 못해 비판받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이진희 교수는 “학문의 자유는 개인의 정치·경제적 이익을 위한 의견을 ‘학문’으로 포장하기 위해 세워진 원칙이 아니다”라며 “학문의 자유는 탐구의 의도, 방법, 그리고 논거가 학문이 되기 위한 기본적인 자격을 갖춰야 정당한 학문적 주장으로 보호됨을 의미하는데, 학문의 기본 요건도 갖추지 않은 램지어 교수 개인의 의견이 학술적 주장으로 보호받으면 안 된다”라고 말했다. 비슷한 맥락에서 고태우 교수는 “학술에서 표현의 자유는 연구 윤리가 뒷받침돼야 성립한다”라며 “램지어 교수의 논문은 학문의 자유와 무관하게 학문의 성실성과 진실성을 훼손하는 사례”라고 설명했다. ‘위안부’ 문제를 해석할 때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고 싶다면 램지어 교수의 논문과 달리 정당한 논거와 논증에 기초해야 한다는 것이다. 

램지어 이후의 위안부 연구

이번 논란은 작지 않은 파장을 남겼다. 전 세계의 수많은 학자가 램지어 교수의 논문을 비판하는 모습으로부터 오랜 시간 노력을 기울여온 끝에 ‘위안부’와 관련한 문제의식이 국제적 차원에서 공유되고 있음이 확인됐다. 하지만 동시에 반지성주의가 세계적으로 창궐하는 상황에서 학문의 자유라는 탈을 쓴 채 일본의 극우적 주장에 동조하는 일부 역사 부정론자들이 미국 학계에 포진해 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한편 외국 학계와 비교해 한국 학계의 대응이 소극적이라는 지적도 있다. 고태우 교수는 이에 대해 “이번 논란은 미국 대학 소속의 연구자가 발표한 논문 내용에 관한 것”이라며 “당사자가 소속된 학계를 중심으로 문제 제기가 먼저 이뤄질 수밖에 없었다”라고 설명했다. 다만 이례적으로 논란이 커지자 국내 시민단체에 이어 학계에서도 규탄 성명을 발표하는 등 대응에 나섰고, ‘위안부’ 연구 및 역사 왜곡과 관련한 학술적 공론장 역시 활발하게 열리고 있다. 

중요한 사실은 앞으로도 이번 사태와 유사한 문제가 반복될 수 있다는 것이다. 양현아 교수는 “이번 논란은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학계 논쟁의 주 무대가 미국으로 이동했다는 신호탄으로 해석할 수 있다”라며 “한국은 ‘위안부’ 문제를 포함해 식민지 시기의 역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어떻게 힘을 실어줄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라고 짚었다.

무엇보다도 국내 학계의 연구 성과를 적극적으로 해외에 알리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최근에는 여성가족부가 ‘위안부’ 피해자 증언집의 영문 번역본을 완성한 후 2년이 지나도록 공개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일기도 했다. 양현아 교수는 “‘위안부’ 문제에 관한 연구가 깊이 있게 이뤄지고 있는데도 언어적 장벽이 커서 해외 학계의 담론에 적극 참여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이진희 교수도 “사료를 발굴하고 정리해 국내외에 공유할 연구 환경을 만들고 국제적인 학술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일본의 양심적 학자와 시민단체와 협력해 사실에 근거한 역사 인식이 형성되도록 돕고, 민간 외교를 통해 진실에 기반을 둔 상호 이해와 신뢰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라고 짚었다. 

램지어 교수 사태는 국내외 지식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다. 역사 문제에 계속해서 관심을 기울임으로써 학계와 정부, 그리고 시민사회가 연대해 일각의 역사 왜곡 시도에 공동으로 대응할 때 비로소 바람직한 미래를 상상할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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