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현 사회문화부장
이소현 사회문화부장

삶은 기름기가 덜 빠진 고깃덩어리처럼 메스꺼우면서도 설탕이 한 숟갈 모자란 레모네이드처럼 싱겁다. 제자리를 찾지 못한 인간은 양념을 더 넣어야 할지, 말지를 끊임없이 고민하면서 매번 주변부를 헤매기만 한다. 어느 쪽에 노력을 확실하게 쏟아야 내 인생에 장기적으로 도움이 될지를 확실하게 몰라서 매번 이것은 어떨까, 저것은 어떨까, 애매한 저울질만 반복할 뿐이다. 학보사에서 부장으로 있었던 지난 3개월은 유독 그런 순간들로 가득했다. 

기획 담당이자 사회자로 참여했던 한미일 국제 토론회도 내게 그 순간 중 하나였다. 거창한 학술적 성과를 내기 위해 야심 가득하게 준비한 토론회는 아니었다. 외교학을 전문적으로 공부하지도 않은 학부생인 내가 그런 거대한 담론의 주체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 단지 새로운 행정부가 들어선 미국이 어떤 꿈을 꾸고 있을지 궁금했을 뿐이었다. 유럽지역학을 공부하면서 현재 전염병이 창궐한 이래 유럽의 외교와 행정 체제가 위기를 겪고 있다는 상황은 대략 알고 있었다. 하지만 미국은 어떨지 직감하기 어려웠다. 국제사회에서 유럽연합과 마찬가지로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미국을 대상으로는 어떤 이야기가 오가고 있을까. 특히 새로운 미국 대통령이 탄생한 지금의 상황에서 한국을 포함한 동북아시아 국가들은 어떤 전략을 고민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나만의 생각으로 결론을 내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던 만큼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다. 

처음에는 한미일 각국의 대학에서 관련 분야를 연구하고 계시는 교수님들을 모셔서 초청 강연을 준비할까, 했다. 그런데 판을 더 키우자는 김규희 뉴미디어부장의 말에, 서울대 학생들과 미국·일본 대학에 재학 중인 학생들을 패널로 섭외해 교수진과 학생들이 함께 모여 동북아 무역의 정세를 논하는 토론회를 준비하기로 했다. 현실성이 매우 떨어진다는 것 말고는 흠결이 없는 계획이었다. 패널 섭외부터 시작해 토론회 주제와 형식을 확정하고, 관련 자료를 만드는 일들은 완전히 우리들의 몫이었다. 미중 문제와 무역 분쟁을 주제로 국제 토론회를 준비하는 중이라고, 내가 사회를 맡았다고 주변 지인들에게 말했을 때 내게 돌아오는 대답은 한결같았다. ‘그걸 어떻게 해?’

실현이 가능한 일인지 모두가 의문을 품었던 과업이 끝났다. 두 달 전, 생전 처음 영어로 ‘Dear professor’로 시작하는 컨택 메일을 작성하기 시작했을 때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막연하게 생각했던 일이 현실로 옮겨졌을 때 메일을 쓰면서도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는 순간들이 많았다. 마치 구름으로 만들어진 다리를 걷는 기분이었다. 그만큼 현실감이 없었다. 신성호 교수님이 메일로 조지워싱턴대랑 협업을 해보면 어떻겠냐고 물어보셨을 때도, 토론회에 참가하겠다는 교수님들과 학생분들에게 메일을 보내고 줌으로 미팅을 할 때도, 토론회 주제를 정리하고 관련 자료를 열심히 찾아봤을 때도 내 머릿속을 가득 채웠던 것은 단 하나의 문장이었다. ‘이게 된다고?’

토론회를 준비하면서, 나처럼 애매한 수준에 그치지 않고 건설적인 불꽃을 내면에 키우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한미일 각국 학생들이 눈을 반짝이며 토론회 의제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발제하던 순간이, 수차례의 사전 미팅에서 서로의 관점을 면밀하게 분석하던 순간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사회자로 참여하며 교수님들의 발제를 경청하는 동안, 그간 미처 깊게 고민하지 못했던 미중 관계의 관전 포인트를 알게 됐던 순간도 떠오른다. 신기했다. 이렇게 또 어정쩡한 의문에서 시작된 일이 덩치가 불어난 채로 매듭지어지다니. 토론회가 끝난 후 편집국 안에서 한동안 그런 생각을 했다. 어쩌면 내 불꽃의 크기가 역설적이게도 애매했기 때문에 일을 이 정도까지 끌고 올 수 있던 게 아니었을까. 기억에 오래 남을 추억이 하나 생겼다. 토론회를 무사히 마칠 수 있도록 도와주신 모든 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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