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의영 사회문화부 기자
이의영 사회문화부 기자

어릴 때부터 이상한 영화랑 소설을 너무 많이 보고 읽은 탓인지, 나에게 있어 사랑과 연애는 참 어려운 것이었다. 어쩌면 여고를 나왔다는 사실 역시 한몫했을지도 모른다. 모든 사랑은 격정적이고 아프고 정신을 차리지 못하게 만드는 것으로 생각했다. 가뜩이나 조금 오글거리는 감성과 낭만을 즐기는 편인지라 ‘기형적 사랑의 형태’에 대한 동경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그리고 그 탓에 건조한 현실이 제공하는 평범한 연애에는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대학에 오고 남들 다 하는 연애 나도 해보고 싶어서 많은 시도를 했지만 전부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경험으로 남았다. 나는 그냥 나 좋다는 평범한 사람이 약속했던, 아프지 않은 사랑이 싫었다.

나는 영화 <박쥐>에 나오는 태주와 상현의 관계야말로 가장 완벽한 사랑의 형태가 아닐까 생각했다. 흡혈귀가 된 신부 상현은 친구의 아내인 태주에게 끌리게 되면서 수많은 죄악을 범한다. 상대를 욕망하면서도 미워하고, 서로에게 상처를 입힐지언정 곁을 떠나지 않고. 그 과정에서 함께 써 내려간 모든 죄악은 다음 날 떠오르는 태양의 빛 아래에서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질 것이니 서로에게 가장 극단적인 방식으로 충실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가장 아픈 상처를 남기고 서로를 처절하게 미워해도 결국 서로에게 돌아오게 되는 것이야말로 사랑이라고.

이런 생각을 바꾼 계기가 있다. 사랑에 정말 처절하게 실패하고 말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첫사랑이었던 것 같다. 그는 예상치도 못한, 그러나 기댈 수 있는 누군가가 가장 절실하게 필요했던 시기에 뿅 하고 나타났다. 내 인생의 주연 자리를 꿰차고 내 낭만이 돼 준 그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그러나 내 마음의 크기는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컸나 보다. 내 일상은 그와 함께하는 순간과 그렇지 않은 순간으로 나뉘었고, 나는 그의 모든 말과 행동 하나하나에 휘둘리고 있었다. 내 삶을 완전히 무너뜨린 그가 사무치게 미웠다. 그러나 함께하는 순간만큼은 모든 아픔과 증오가 존재하긴 했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졌고, 나는 딱 그 순간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면 그를 만나는 그날이 될 때까지 그를 미친 듯이 그리워하면서도 저주했다. 그렇게 나를 뒤흔들었던 내 사랑은 예상치 못하게 들어왔던 그대로, 예상치 못하게 사라져버렸다. 그를 그리워하고 기다리는 것이 지독한 습관이 되고 말았기 때문인지 그에 대한 생각을 끊어낼 수 없었다.

미쳐버릴 것 같은 심정으로 “나는 왜 이렇게 힘들어야 하는 것일까?” 하는 명쾌한 답변 하나 돌아오지 않는 물음을 품은 채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런데 문득 이것은 전부 내가 이런 사랑을 동경했기에 선택했던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를 떠날 수 있는 기회는 많았다. 그러나 괴로움에 몸부림치면서도 몇 번이고 그에게 돌아갔던 것 역시 내 선택이었다. 평범한 사랑을 거부했기에 평범하지 않고 기형적인 사랑이 나에게 온 것이니, 이 고통은 전부 내 업보라는 생각에 도달하게 됐다. 사랑이 아플 수 있다. 그런데 아픈 것도 정도가 있지, 일상을 무너뜨리는 것이 어떻게 사랑일 수 있겠나. 사랑에 증오와 아픔이 필수적으로 수반되는 것이 아니구나, 하는 것을 이 먼 길 돌아옴으로써 깨달았다.

물론 그렇다고 그에 대한 사랑 자체가 거짓이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나는 잘못된 방향으로 마음을 키우고 있었을 뿐이다. 진심을 다해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었기에 분명히 배운 점도 많았던 것은 사실이니, 잃고 고생만 한 경험은 아니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니 마음을 다 쏟아부을 수 있는 새로운 상대를 만나게 된다면, 그때는 조금 덜 아픈 방식으로, 사랑 그 자체에 집중하는 방식으로 상대를 대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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