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보성(기계항공공학부 석사과정)
전보성(기계항공공학부 박사과정)

우리 주변에는 ‘오타쿠’라고 불리는 특이한 사람들이 있다. 오타쿠는 사전적으로는 특정 대상에 집착적 관심을 두는 사람들이다. 일본의 아키하바라에서 실용적 가치가 없는 피규어나 각종 굿즈에 막대한 금액과 시간을 쓰는 그런 사람들 말이다. 보통 오타쿠에 대해 사람들이 갖는 편견은 간단하다. 대부분 사회성이 부족하고 정신이 ‘이세계’(異世界)에 존재하는 듯 자신만의 세상에 빠져 조금 불편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들은 이미 다른 세계에 있는 무엇인가에 홀려 집착하고 있다. 아마 주변에서 무시당하고 이성을 만나지 못해도 상관없을 수도 있다. (그들은 당신보다 이세계의 마법사를 더 좋아할 수도 있다. 물론 필자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이들에 대해 내키지 않더라도 조금만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자. 그들은 일단 자신들이 형성하고 있는 세계관에 관한 한 모든 것에 ‘진심’이다. 어디서 일본어를 배우지 않더라도 들으려고 노력해서 대충이나마 해석할 줄 알고, 주인공들이 사용하는 기술의 이름을 일본어로 구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캐릭터들의 헤어스타일만 보고도 성격과 포지션을 예측할 수도 있다. 어쩌면 거대한 세계관을 가진 애니메이션의 경우 시대순으로 그 세계의 역사서를 작성하는 경우도 있다. (진격의 거인과 같은 명작들을 나무위키에서 검색해보자.) 또한 시간상 꼬인 전개와 열린 결말의 경우 성경 및 철학서에 대조해서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다. 평소에 친구들과 모임을 그렇게 귀찮아하던 사람도 피규어 및 굿즈 가게 성지순례를 위해 다른 나라까지 찾아가기도 한다. 정말 좋아하다 보니, 안타깝지만 자기도 모르게 높은 수준의 전문가가 돼 있다.

오타쿠들은 왜 그럴까? 친구들이 그만 좀 하라고 해도 말이다. 단순히 그게 좋아서? 그렇게 답하기엔 너무 간단하다. 필자는 그 이유를 ‘자신이 사랑하는 세계관을 형성했고 거기서 주인공으로 살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현실에서 받는 스트레스와 박해가 없고 주인공과 함께 떠나는 박진감 넘치는 세계에서 비로소 살아 있음을 느끼는 것이다. 이에 당신은 어떤 의견인가? 딱하다고 생각하는가? 거기에도 동의한다. 어쨌든 그들은 실제 현실에 몰입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주말 동안 애니메이션을 보거나 피규어를 모으다 보면 현실에서 말하는 성공(좋은 직장, 좋은 사업, 좋은 배우자)과 멀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당신이 어떤 면에서는 더 딱할 수도 있다. 당신은 당신이 주체가 되는 세계를 가지고 그것에 몰입할 수 있는 사람인가? 직장에서 한시라도 일찍 퇴근하고 싶고, 근로소득은 단순히 비트코인과 주식을 위한 그다지 큰 의미 없는 투자 자금 정도인가? 자신이 하는 작업은 단순 노동일 뿐, 자신의 꿈꾸는 세계 주인공의 모험과 같은 느낌은 나지 않는 것은 아닌가? 퇴근 후 SNS에서 사진 편집으로 점철된 셀카들을 동경하고 한편으로는 자신을 초라하다고 느끼며 그냥 침대에 누워 있다면, 어쩌면 당신은 직장에서도, 그리고 집에서도 조차도 자신이 주인공인 세계에 있는 시간이 ‘진심’인 채로 진격의 거인 세계관 역사서를 쓰는 오타쿠보다 없을 수도 있다.

일단 필자는 2D 미소녀들과 이세계로 모험을 떠나고 싶지도, 자기 일을 단순 근로라고 생각하며 그 어느 곳에서도 주인공이지 못한 ‘루저’로 살 마음은 추호도 없다. 다만 필자는 자신의 일에 오타쿠가 돼가고 있고, 그렇게 되는 나 자신을 주인공으로 생각하고 있다. 내가 만들고 디자인하고 있는 드론 알고리즘의 코드 한 줄 한 줄에 집착하며 그 순간 아이언맨 같은 천재 공학자인 것 마냥 ‘나만의 세계’, 그리고 ‘나의 일이 존재하는 현실 세계’를 동기화시켜 그 두 세계 모두의 주인공이 되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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