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문화부 최지원 차장
사회문화부 최지원 차장

며칠 전 생일을 핑계로 오랜만에 호텔에서 친구들과 모였다. 20대 대학생들이 모이면 으레 그렇듯, 술을 마시다 한 친구와 말싸움이 붙었다. 나이지리아의 수도가 니제르냐 차드냐 하는 별것도 아닌 문제로 서로를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다며 비난했다. 말싸움은 결국 주식을 건 내기로 이어졌다. 삼성전자 주식을 꽁으로 먹겠다는 생각에 희희낙락하며 나이지리아 수도를 검색해보니 어이가 없게도 둘 다 틀렸었다. 최근 한국은 마치 며칠 전 취기로 싸운 나와 친구의 모습 같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정치적 사건에서 사람들은 각자 한 편씩을 차지하고서 상대를 비난한다. 양측 모두 다른 편에 선 상대방을 희화화하고 자신들의 주장은 진리라고 한다. “배우지 못해서 야당을 지지한다”라든가 “여당 지지를 철회하는 것은 지능 순서다”라는 말이 돌아다닐 지경이다. 

영국의 철학자 로크는 최근의 한국보다 몇 배는 더 파란만장한 정치적 격동의 시대를 살았다. 그가 살던 시대의 영국에서는 박해받던 청교도들이 청교도 혁명을 일으켜 왕을 처형하고 크롬웰 독재 시대를 열었고, 20여 년 후에는 왕정이 복고돼 청교도들이 다시 박해받았다. 이분법적으로 서로를 나누고 상대를 말살하려 드는 정치적 분란이 이어지는 과정에서 소중한 이들을 잃은 그는 정치적 분란이 일어나는 원인을 탐구했다.

정치적 분란은 결국 대립하는 정치 집단들이 각자 자기 진영의 말은 옳고, 다른 진영의 말은 틀리다고 주장해 일어난다. 그런데 사람들이 ‘자신의 말이 옳다’, 즉 ‘자신의 말이 진리다’라고 주장하는 근거는 어디서 올까? 로크는 사람들이 자신이 ‘생득 관념’을 가지고 있다고 믿기에 대립이 발생한다고 생각했다. 생득 관념이란 선천적으로 사람들이 가지고 태어나는 관념을 뜻하며, 흔히 진리를 탐구할 수 있는 능력을 뜻한다. 즉, 사람들은 자신이 진리를 볼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대립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로크는 생득 관념이란 것은 실존하지 않는다고 봤다. 로크의 학설은 사람들의 관념, 즉 ‘무언가를 안다’라는 것은 경험에서 비롯된다는 경험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다. 예를 들어, ‘영희가 철수를 좋아한다’라는 주장은 영희에 대한 관념, 철수에 대한 관념, 좋음에 대한 관념이 합쳐진 것이며 이 세 관념은 오로지 경험을 통해서만 알 수 있는 성질의 것이다. 그런데 경험은 주관적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으므로 다수가 동일한 사건을 겪는다고 하더라고 그것에 대한 관념은 개별적으로 형성된다. 따라서 로크의 입장에서 ‘어떤 주장이 진리다’라는 것은 허구에 불과했고, 정치적 분란은 공허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로크의 경험주의는 단순히 진리를 부정하는 사상은 아니었다. 그가 비판한 것은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을 진리라고 여기는 것’이었다. 이는 그가 1689년에 친구에게 보낸 『관용에 관한 서한』에서도 드러난다. 그는 이 편지에서 “자신과 다르게 생각하는 자들에게는 잔인하고 무자비하게 대한다면 그들의 양심이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로크의 경험주의는 관용의 경험주의이다. 절대적인 진리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으니 자신의 생각을 광신하지 말고, 사람마다 개별적인 경험이 있으니 관용의 정신을 가지라는 것이다.

나이지리아의 수도는 니제르도 아니고 차드도 아니고 아부자라는 도시였다. 니제르와 차드는 어떤 도시의 이름이기는커녕 나이지리아의 옆에 있는 나라 이름이었다. 친구와는 서로 바보 같았다며 웃음을 터뜨렸다. 우리 사회도 상대방의 개별적인 경험을 인정하는 관용의 정신과 자신의 생각을 진리라고 생각하지 않는 경험주의적 태도를 갖고, 서로를 향한 무분별한 비난을 멈출 수 있었으면 한다.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