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봄에 ‘자하연’에 봄의 ‘ㅁ’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다. 올 봄에는 자음 ㅁ만큼  소중한 우리의 모음 으에 대해 쓰고 싶다. ‘으’는 영어로 옮겨지지 않는 소리이다. 으 모음은 영어에 없을 뿐더러, 사실 이를 지닌 언어를 찾기도 쉽지 않다. 그런데 유독 우리말에는 희귀한 으 모음을 어디에서든 찾아볼 수 있다. 내가 좋아하는 단어에는 으레 으 모음이 들어있다. 어쩌면 우리말은 으 모음에 뿌리를 내린 언어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으 모음의 특징은 무엇인가? 한 마디로 말해, ‘으’는 소리를 몸으로 느끼기 위한 모음이다. 다른 모음과 달리 으 모음은 소리를 밖으로 내보내지 않고, 몸 안에 머무르게 한다.
횡격막을 천천히 늘리면서 몸으로 소리를 느끼게 하는 으 모음은 소리를 몸 안에 돌려 몸의 울림으로 대상을 느끼게 한다. ‘으’는 몸의 소리이자 울림과 느낌의 모음인 것이다.

우리가 힘을 낼 때 ‘으차차’ 하고, 놀랐을 때 ‘으아악’ 하는 것은 몸에서 소리를 내면 으 모음이 절로 나오기 때문이다. 어떤 모음이든 가늘게 늘리면 결국 으 소리로 마감하게 된다. 모든 소리는 숨이 떨어져 몸 안으로 돌아오면 몸의 소리인 ‘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으’는 가장 짧은 소리이면서 가장 긴 소리이다. 으 모음은 소리 이전에 몸에서 이는 소리이며, 소리 이후에 몸에 남는 소리인 것이다.

이는 ‘으’를 한번 길게 읊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으 모음이 담아내는 것은 바로 우리 존재가 몸으로 겪어내는 세상이다. 들의 ‘으’를 소리내보라. ‘으’를 살려 드으을로 읊으면 으 소리로 몸이 울리며, 우리 존재가 끝없는 공간과 마주함을 느낄 수 있다. ‘으’ 위에 아늑하게 얹힌 공간을 느끼게 된다. 늘의 ‘으’는 어떤가. 느으을의 ‘으’ 소리와 함께 지금 이 순간이 더 없이 늘어난다. 우리 몸은 지긋이 영원의 시간을 맞이한다. 또 하느을의 ‘으’는 어떤가. ‘으’ 소리가 부드럽게 이어지며 하늘이 포근하게 몸 안에 든다. 봄 하늘에 뜬 저 구름의 느긋함이 으 모음 없이 표현될 수 있었을까.

 우리말의 으 모음은 이 느긋함을 누리라는 소리이다. 먹기에 바쁜 우리에게 머금어야 한다고 말하는 소리이다. 아니, 느낌으로 세상과 함께하라는 소리이다. 슬픔은 슬픔답게, 기쁨은 기쁨답게, 아픔은 아프게 느껴야 한다는 소리이다. 또한 시간을 두고 멀리 생각하라는 소리이다. 눈앞에서 사라지는 것에 매달리지 말고, 눈 밖에서 스러지는 것을 돌보라는 소리이다. 부드럽게 흐르며 가없는 듯 늘어나는 으 모음은 본래 인간이 그저 한 순간, 그냥 한 구석에 갇혀 숨차게 허덕이는 존재일 수는 없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소리이다.

 우리말의 ‘으’가 그린 세상은 그윽한 세상이다. ‘가득함’은 꽉 찬 상태이다. 이것을 ‘그득함’으로 바꾸면 그 꽉 찬 상태에 느낌이 더해진다. 여기서 ㄷ마저 밀어내고 ‘으’ 소리를 이어가면, 그득함은 ‘그윽함’으로 바뀐다. 그윽함은 꽉 채울 수 없음이다. 채움의 경계에서 노닐며 한없이 그 경계를 늘리려는 말이다. 그윽함은 측량할 수도 소유할 수도 없음이다. 물감으로 가득 채워서는 형용할 수 없는 ‘들’의 그윽함, 아무리 아름다운 가락으로도 잡을 수 없는 ‘늘’의 그윽함, 저 봄빛 하늘의 그윽함이다. 바로 우리말 ‘으’가 그린 세상이다.

신광현
인문대 교수ㆍ영어영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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